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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의 음악 May 27. 2023

하고 싶은 이야기, 듣고 싶은 이야기

글쓰기의 방향성

인도 여행을 준비하던 15개월 전, 내가 가장 아쉬워했던 것은 부족한 정보였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여행 정보를 구할 방법은 오직 책뿐이었다. 하지만 당시 한국의 가이드북 시장은 아주 불모지였다. 지금은 나라별 가이드북을 넘어, 도시별 가이드북이 여러 출판사에서, 여러 작가가 쓴 책이 다양하게 나와 있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다.      


나라별로 나와 있던 가이드북은 《미국》과 《일본》이 유일했고, 그 외에는 《유럽 12개국》, 《동남아 7개국》처럼, 책 한 권에 나라별 정보를 묶어 놓은 것이 전부였다. 자연히 정보의 양이 무척 제한적이었다. 그런데도 우리 실정에 맞는, 한국인이 쓴 가이드북이 없다 보니 그런 책들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인도에서 무슨 책을 써야 할지는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내게 힘이 있다면, 시시콜콜한 말을 해도 사람들은 내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내가 힘이 없다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해야 사람들은 내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단 한 방에, 출판사에서 오케이 할 수 있는 책은 다른 것이 아니라 가이드북이었다.


가이드북은 여행자들에게 필요한 책이었다. 인도에 관한 다양한 정보는 인도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나는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해야 했다.


가이드북을 쓰기로 작정하고, 갖고 있던 자료를 정리해 보았다. 할 이야기는 충분했다. 사람들이 귀를 기울일만한 이야기도 많았다.


하지만 문제가 또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책 한 권 분량의 글을 써 본 적이 없었다. 가이드북이지만 그래도 책 한 권 분량을 쓰려면 양이 엄청날 것 같았다.

      

지금은 단행본 글자 크기가 11포인트가 넘지만, 당시에는 10포인트가 대부분이었고, 9포인트짜리 책도 많았다. 게다가 가이드북은 무게가 많이 나가면 좋지 않기 때문에 8포인트 되는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자연히 원고량은 더 많아질 것 같았다.     


나는 시험 삼아 인도 여행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콜카타에 대해 한 꼭지 써 보았다. 콜카타의 역사에 대해 간단히 쓰고, 콜카타 공항에서 인도 박물관까지 가는 다양한 방법과 인도 박물관 근처의 숙소와 식당에 대해 써 보았다. 당시 인도 박물관 주변은 방콕의 카오산로드처럼 전 세계 배낭여행자들의 집결지였다.      


콜카타를 가로지르는 후글리 강 위를 지나는 다리. 콜카타 역에 내려 저 다리를 걸어 건넌 적이 몇 번 있다.(출처:픽스베이)


어라! 써 보니 잘 써졌다. 어떻게 쓸까, 고민했는데 의외로 쓸 게 너무 많아 완급 조절을 해야 할 판이었다.      

자신감이 생겼다. 나는 15개월 동안 많은 한국인 여행자들을 만났다. 자연히 한국 여행자들의 여행 루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당시 인도에 들어온 사람들은 대부분 콜카타로 들어와 2, 3일 머문 뒤 저녁 8시에 출발하는 둔 익스프레스 열차를 타고 보드가야(붓다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곳)로 갔다.      


보드가야에서 2, 3일 머문 뒤 좀 오래 여행하는 사람들은(한 달 이상) 파트나를 경유해 네팔로 들어가 카트만두와 포카라를 여행했다. 그런 다음 뉴델리로 나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탔다.      


여행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은(2주 정도) 사람들은 보드가야에서 바라나시로 가서 갠지스 강가의 화장터를 구경하고, 뉴델리로 간 다음 타지마할로 유명한 아그라로 갔다. 그러다가 인도 여행에 자신이 있는 사람은 사막 도시 조드풀과 자이풀, 내친김에 자이살멜까지 갔다가 뉴델리나 콜카타로 돌아갔다. 여행 기간이 3개월 이상 되는 사람들은 뭄바이 이남으로 내려가기도 했다.      


이처럼, 많은 한국 여행자들이 인도를 왔다 갔지만 여행 루트는 뻔했다. 시간과 돈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가이드북을 쓰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다만 지금처럼 노트북이 있던 시절이 아니라 종이에 볼펜으로 써야 한다는 것이 고역이었다. 손가락이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정이 쉽지 않아 지금처럼 막 쓰고 수정을 여러 번 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생각을 많이 하면서 써야 하는 것이 힘들었다.      


나는 두문불출하며 어떻게 쓸 것인지 개요를 정리한 뒤 예상 목차를 뽑아 보았다. 제법 그럴듯했다. 정보가 부족해 다시 한번 가 봐야 할 도시도 몇 군데 되었다. 그런 곳은 몰아서 한 번 갔다 오면 될 일이었다.      


그때만 해도 젊었다. 별로 겁도 없었다. 먼저 행동하고 나중에 생각한다는 나의 강한 ENTP 성향도 단단히 한몫해 자신감이 필요 이상으로 넘쳤다.

    

나는 당장 책을 쓰고 싶었다. 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가 남아 있었다. 내가 가이드북을 쓰면, 그 글을 출판해 줄 출판사를 찾는 것이었다.      


나는 인도에 있었고,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다. 전화 통화도 쉽지 않았다. 한국에 어떤 가이드북 출판사가 있는지도 몰랐다. 15개월 사이에 한국에 어떤 가이드북이 새로 나왔는지도 몰랐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 나는 내 글을 출판해 줄 출판사를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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