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이 얼 때 남한강은 흐른다
도시 탈출
2011년, 오랫동안 살았던 일산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호수 공원이 있는 일산은 참으로 살기 좋았다. 가로수로 심어 놓은 느티나무가 초록색 잎을 달기 시작하면 도시 전체가 공원 같았다. 다양한 편의시설은 그 안에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다. 새벽 두 시에도 광화문에서 일산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덤이었다.
그런데도 일산을 떠나기로 했다. 더 늦기 전에 전원주택 생활을 해보고 싶었고, 너무 추웠기 때문이다. 한강 하구에 있는 일산은 너무 추웠다. 겨울이면 남극처럼 강이 꽁꽁 얼어붙었다. 한 번 얼면 2월 중순까지 녹지도 않았다. 북쪽에서 불어보는 칼바람은 반갑지 않는 덤이었다.
우리가 원한 탈출 지는 제주였다. 전원주택 생활과 따뜻함을 한꺼번에 맛볼 수 있는 곳이었다. 저가 항공의 확대로 가끔 9,900원이란 말도 안 되는 값의 비행기 표를 구할 수 있다는 사실도 제주행을 부채질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제주는 시기상조라는 결론을 내렸다. 집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아직은 급할 때 서울을 가야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제주보다 양평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비교적 서울이 가깝고, 큰 돈 들이지 않고 집을 구할 수 있으며, 따뜻한 곳이 어딘지 찾았다. 그러다가 발견한 곳이 양평이었다. 전철이 있어 1시간 30분이면 광화문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무궁화 호를 타면 30분 만에 청량리에 닿았다(KTX 개통으로 지금은 청량리 20분, 서울역은 50분에 끊을 수 있다). 상수원 보호 구역이라 공장이나 축사가 적어 전원생활을 하기에도 좋았다.
한 가지 문제가 추위였다. 지금도 서울 친구들을 만나면 "그 추운데 어떻게 살아?“하면서 몸을 떤다. 우리도 그렇게 생각했다. 양평 하면 춥다는 생각이 먼저 떠올라 일산 탈출 계획 초기에 양평은 후보지에 들지도 않았다. 하지만 조사를 거듭할수록 양평이 일산이나 서울보다 덜 춥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말하면 “무슨 헛소리?” 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맞다. 양평은 춥다. 그 이유는 양평이 워낙 넓기 때문이다. 경기도에 있는 군 단위 지자체 중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곳이 양평이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양수리에서 시작해 북동쪽으로 강원도와 맞붙어 있어 단월면과 청운면 끝자락은 강원도나 마찬가지다. 그곳 사람들은 양평이 따뜻하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양서면과 서종면도 춥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차가운 북한강 때문이다. 북한강 역시 겨울이면 꽁꽁 얼어버린다.
남한강 주변이 따뜻하다
양평이 따듯하다는 것은 양평 읍내를 중심으로 강상면과 강하면, 옥천면처럼 남한강 주변을 두고 하는 말이다. 편리한 교통시설 또한 이곳 기준이다. 당연히 우리가 이사를 결정한 곳도 양평읍 건너편에 있는 강상면이었다.
양평에 산 지 10년. 여전히 양평이 일산은 물론이고 서울보다 따뜻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몸으로 느끼는 것이 그렇고, 객관적인 근거를 대라고 하면 양평 읍내를 가로지르는 남한강이 언 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서울 한강이 몇 번 얼었다 녹아야 겨울이 지나가지만 양평의 남한강은 언 적이 없다. 연일 계속되는 강추위에 강 가장자리가 제법 언 적은 있지만 일산대교 밑을 흐르는 한강처럼 전체가 꽁꽁 언 적은 없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 볼 때 적어도 우리 처지에서는 제주보다 양평이 나은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