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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의 음악 Apr 04. 2022

팽형과 신용불량자와  예수의 상관관계

예수는 정말 우리를 대신해서 죽었나?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가톨릭 평화방송에서 멈췄다. 낯익은 분이 강의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신학생 시절 학장 신부님이었던 분이었다. 신학생 시절, 학장 신부님은 50대 후반이었다. 신학자로서 전성기 때였다. 그래서였을까, 강의는 군더더기 없이 늘 명료했다. 학장 신부님의 강의를 듣는 동안 지루하다거나 재미가 없다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다. 언제나 너무 빨리 끝나 아쉬웠을 뿐이다.


학장 신부님을 실로 오랜만에 텔레비전에서 뵙자, 한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두 사람이 죽어 저승에 갔다. 한 사람은 평생 도둑질을 업삼아 살다가 죽었고, 한 사람은 평생 착하게 살다가 죽었다. 두 사람 중에 누가 천국에 들어갈 확률이 더 높을까? 아차, 조건이 하나 있다. 평생 도둑질을 일삼다가 죽은 사람은 세례를 받은 '믿는 자'였고, 평생 정직하게 살다가 죽은 사람은 세례를 받지 않은 '안 믿는 자'였다. 그렇다면 두 사람 중에 누가 천국에 들어갈 확률이 더 높을까? 질문에 답을 생각할 여유를 갖기 위해 다른 이야기를 조금 해 보자.


팽형과 신용불량자


조선 시대 형벌 가운데 '팽형()'이라는 것이 있다. 글자 그대로 하면 죄인을 가마솥넣어 삶아(烹) 죽이는 형벌을 뜻한다. 하지만 실제로 삶지는 않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솥에 넣어 삶아 죽이는 시늉을 하는 것으로 벌주었다(참고로 조선왕조실록에는 실제 집행한 사례로 기록된 건수가 한 건도 없다고 한다).


이 형벌은 대개 탐관오리처럼 백성들을 대상으로 못된 짓을 많이 한 중죄인에게 내리던 형벌이었다. 문제는 시늉만 했을 뿐이지만 팽형을 당한 사람은 실제로 죽은 사람으로 간주당했다는 사실이다. 죽었으니 가족들은 그 사람의 장례도 치렀다. 자연히 그 사람은 산 사람으로서 누리던 모든 권한을 박탈당했다. 목숨만 붙어 있었을 뿐 현실적으로는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어느 정도까지 죽은 사람으로 취급되었을까? 그 사람이 누군가에게 폭행을 당하거나, 심지어 살해를 당해도 그 사람에게 해를 입힌 사람은 처벌받지 않았다. 왜? 죽은 사람이었으니까. 사정이 이 정도였으니 팽형을 당한 사람은 일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다. 방 안에 갇혀 살다시피 하면서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살아야 했다. 말 그대로 '산송장'이었다.




팽형만큼은 아니지만 요즘도 이와 비슷한 것을 경험할 수 있다. 바로 신용불량자다. 요즘 시대에 신용불량자가 되면 목숨은 붙어 있겠지만 사는데 참 불편하다. 우선 신용불량자는 통장을 개설해서 사용하는데 제약이 따른다. 물론 통장 자체는 개설할 수 있다. 하지만 채권자가 언제든지 압류할 수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통장 거래는 불가능하다.


취업도 힘들다. 취업 자체는 있겠지만 월급을 통장으로 받으면 압류될 가능성이 많다. 자연히 현금으로 임금을 지급받는 단순 일용할 수 있다. 신용카드 사용도 할 수 없으니 현금 생활만 해야 한다. 몇만 원이라면 모를까, 몇 십만 원 단위의 결제를 현금으로 한다? 그것도 상습적으로? 글쎄, 모르긴 해도 국가관이 투철한 사람이라면 신고할지도 모른다. 요즘에는 아예 카드로만 결제되는 무인 주차장도 많다. 이런 것을 감안하면 신용카드를 사용 못하는 사회생활, 상상하기 쉽지 않다.  


신과 인터넷


조선시대의 팽형, 현대 사회의 신용불량자, 그렇다면 고대 사회는 어땠을까? 고대 사회에도 이와 비슷한 것이 있었다. 바로 '신과 단절된 삶'이었다. 고대 사회는 신 중심의 사회였다(특히 서양). 마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손안에 스마트 폰을 쥐고 다니며 온갖 즐거움과 위안과 시시콜콜한 정보까지 얻는 것과 비슷하게 고대 사람들은 거의 모든 것을 신에게 의지했다. 사람들은 즐거운 일이 있어도, 슬픈 일이 있어도, 궁금한 것이 있어도 신부터 찾았다. 신에게 감사하고, 신에게 하소연하고, 신에게 갈구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모든 궁금증과 불안도 신에게 위탁해 해결했다. 이런 사회에서 신과 단절된 인간이란 상상하기 쉽지 않다.


세월이 흐르면서 과학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자연히 신이 맡아 처리했던 많은 것들을 과학이 대신하기 시작했다. 아주 간단한 예로, 고대 사회에서는 먼바다로 고기잡이를 떠나기 전에 제사장을 불러 신에게 제사를 지내며 신의 의향을 묻고 복을 빌었다. 폭풍우가 불지 않게 해 주시기를, 사고 없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게 해 주시기를, 더불어 고기도 많이 잡게 해 주시기. 하지만 과학이 발달하면서 제사를 지내기보다 기상청에 문의 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고대 사회에서는 오늘날 과학이 하던 일을 거의 대부분 신이 도맡아 했다. 그래서 우리는 고대 사회를 두고  '신 중심의 사회'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문제는, 사회 자체는 신 중심으로 돌아가는데, 정작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에게서 소외당한 체 살았다는 점이다. 신의 역할이 절대적인 사회에서 어떻게 사람이 신에게서 소외당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일까? 근본적인 이유는 신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신의 목소리도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신의 특성을 이용해 자기들만이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제사장들이었다.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 신전이었다. 한 마디로 독점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신에게 뭔가를 문의하고 빌기 위해 신전으로 뛰어간다고 해도 마음대로 신을 만날 수 없었다. 제사장이 신전 입구를 막고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내게 이야기하면 신에게 잘 전달해 주겠네.'라고 했다.   


사람들은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제사장의 권위와 자신의 딱한 사정의 긴급성 때문에 제사장에게 굽신거리며 자신들의 필요 사항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제사장은 신전 안으로 들어가 신과 대면한 뒤 신의 뜻이라며 내용을 전해 주었다. 이것을 우리는 '신탁'이라 한다. 물론 신전 안에서 제사장과 신 사이에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신탁이 그렇게 이뤄지다 보니 사람들은 신에게 무릎 꿇기 전에 제사장에게 무릎을 꿇었다. 자연히 제사장의 힘은 거의 신과 동급 수준이었다.     





신은 언제라도 사람들에게 축복과 은혜를 베풀 준비가 되어 있는데, 불행히도 제사장은 그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사람이었다. 제사장은 신과 인간의 중개자라 주장했지만 실제로 하는 행위를 보면 그가 가진 권한을 남용하면서 중개가 아니라 훼방을 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제사장을 어찌하지 못했다. 제사장에게 밉보이면 신과 단절된 삶을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고대 사회에서 신과 단절된 삶이란, 조선시대에 팽형을 당한 사람이나 요즘 시대의 신용불량자처럼 사회생활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다. 제사장은 이를 이용해 막강한 힘을 휘둘렀고, 그 힘은 세습이 되면서 하나의 계급이 되었다. 그것도 최상위 계급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서양의 사제 계급이다. 이 사제 계급이 휘두르는 권한의 남용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심각할 즈음 그 폐해를 지적하며 전면에 나선 사람이 바로 예수다.


예수의 출현


계급화된 제사장이 신전 문 앞에 서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신과 인간 사이를 훼방 놓을 때, 예수는 신전으로 달려가 제사장들을 향해 소리쳤다.


"비켜나시오. 사람들이 당신네들을 통해 신에게 은총을 구하지 않고 직접 신에게 은총을 구하도록 비켜나시오. 신이 당신들을 통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직접 은총을 내릴 수 있도록 신전에서 물러나시오. 당신들은 신의 중개자가 아니라 훼방꾼일 뿐이오."


예수의 말을 들은 제사장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았던 그 시대에 제사장들은 거대한 계급 집단의 한 축을 이루며 정치권력화 되어 있었다. 당연히 예수의 말은 그들 입장에서는 '헛소리'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헛소리로 치부하기에는 문제가 간단치 않았다. 예수는 갈릴레아 호숫가에서 제자들을 규합한 뒤 여기저기 다니면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병자들을 고쳐주고, 빵 다섯 개로 5천 명씩이나 먹이고, 심지어 죽은 사람을 살려 내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나돌았다).  예수의 소문은 삽시간에 온 이스라엘에 퍼졌다. 예수가 한 번 나타나면 수 천 명이나 되는 군중이 그를 따랐다.  


예수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자 신전의 제사장들은 그들의 안위가 걱정되었을 것이다. 예수의 말대로 사람들이 직접 신에게 기도하고, 직접 신에게 은총을 받아버리면 자신들의 입지가 좁아질 것은 뻔했다. 지금까지 신과 인간을 중개한다고 주장하면서 신 못지않은 권력을 휘둘렀는데, 사람들이 신과 직접 소통해 버리면 자신들이 누리던 모든 것들을 잃고 말 것이었다. 그렇다면 예수를 가만 두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예수의 죽음과 구원


예수는 그렇게 해서 사제 계급으로 대표되던 기득권 세력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다른 큰 의미는 없다. 그렇다면 예수의 죽음이 어찌하여 '우리에게 구원이 된다'라고 현재의 그리스도인들은 주장하는 것일까?


예수의 죽음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이제 신을 만나기 위해 신전에 달려가 먼저 제사장에게 무릎 꿇을 필요가 없었다. 그냥 내 집 골방에 앉아 기도 해도 신이 다 들어주고, 은총도 내려 주셨다. 실제로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의 죽음 이후 다락방에 모여 자기들끼리 기도면서 신을 만나기도 했다. 한마디로 이제 사제를 통하지 않고도 신의 사랑과 위로를 받을 수 있고, 궁금한 것도 직접 물어볼 수 있고, 그 답도 들을 수 있고, 죽어 천국에도 갈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세상에 이런 '기쁜 소식'이 어디 있단 말인가? 성서를 다른 말로 '복음'(복된 소리, 기쁜 소리)이라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예수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과 신 사이를 막고 서서는 중개자라 주장하며 훼방을 일삼던 사제들을 신전에서 몰아낸 공로, 인간이 직접 신에게 기도하고, 신이 직접 인간에게 은총을 내려줄 수 있게 역사적 대 전환을 이룬 공로. 이것이 예수가 인류에게 주고 간 선물이다. 이 선물을 주기 위해 그는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았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는 동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분명 구원자였다(다른 나라,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기도 하다).  


그런데 오늘날, 신과 인간 사이에 다시 훼방꾼이 나타나고 말았다. 예수가 자신의 목숨과 바꾸면서까지 없애자고 했던 그 훼방꾼이 다시 등장한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예수의 말씀을 따르고, 예수를 믿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 훼방꾼 노릇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칠성사七聖事


가톨릭 교리의 핵심은 일곱 가지 성사다. 세례성사, 성체성사, 병자성사, 견진성사, 고백성사, 혼인성사, 신품 성사. 이를 '칠성사'라 한다. '성사聖事'를 한마디로 쉽게 설명하면, '신의 은총을 눈에 보이는 행위로 고정시켜 놓은 것'쯤 된다. 그러니까 7성사는 모두 눈에 보이는 어떤 '행위'들로 이루어진다. 이 행위들을 통해 신이 사람들에게 은총을 내린다는 뜻이다. 이것은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베풀어지는 절대적 신의 은총 이기도하다. 쉽게 말하면, 받을 의지가 별로 없다고 해도 '행위'를 하기만 하면(형식적으로라도) 절로 신의 은총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마치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밖에 나가는 '행위'만 하면 맞을 수 있는 것처럼.  


자, 이제 앞에서 제시했던 질문, '세례 받은 도둑놈과 정직하게 살았지만 세례를 받지 않은 자 중 누가 천국에 들어갈 확률이 높을까?'와 나의 신학생 시절 학장 신부님을 떠 올려보자. 내가 1, 2학년 때는 저학년이라 학장 신부님의 강의를 들을 수 없었다. 대신 특별한 날 강론이나 1주일에 한 시간씩 있었던 '학장 영성 강화 시간'에 그분의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3학년으로 복학을 하자 학장 신부님은 임기를 끝내고 평교수로 학교에 남아 강의를 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3, 4학년 때 그분의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신부님이 어느 날 강의 시간에 앞서 내가 던진 그 질문을 우리에게 던졌다. 공식적으로 한 강의 내용은 아니었고, 강의 도중 지나가는 이야기로 한 것이었다.


그날, 이제 평교수가 된 학장 신부님은 세례 성사를 받은 도둑놈이 구원받을 확률이 더 높다고 했다. 좀 극단적인 설명이기는 했지만 그만큼 성사라는 종교적 행위를 통해 내려지는 신의 은총의 강력함을 말하기 위한 설명쯤으로 당시에 알아 들었다.


신의 은총이 집중되는 미사


가톨릭 신자들의 경우, 일요일 미사에 참여하는 것은 의무다. 평일에도 매일 성당에서는 미사가 있다. 이 미사에 참여하게 되면 '성체성사'를 행하게 된다. 여기에다 미사에 참여한 사람이라면 이미 '세례성사(신앙인으로 태어나는 성사)'를 받고, '견진성사'(신앙적으로 성인이 되는 성사)도 받았을 것이다. 좀 신실한 사람이라면 미사 전에 '고백성사'도 받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사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은 1.세례성사, 2.견진성사, 3.고백성사, 4.성체성사, 여기에다 결혼을 했다면 5.혼인성사까지 받은 셈이다. 신이 은총을 내리는 도구로 사용하는 7가지 성사 가운데 무려 5가지를 미사를 통해 받게 되는 셈이다(나머지 두 개는 죽을 때 받는 6.병자성사와 신부가 될 때 받는 7.신품성사다). 가톨릭이란 종교가 미사를 중심으로 교회가 운용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 마디로 신의 은총이 집중, 집약된 것이 미사다.   


그렇다면 7성사로 대변되는 신의 은총과 현대의 사제(신부님)와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7성사는 대개 사제가 주관할 수 있고, 7개 성사 가운데 2개는 주교만 할 수 있다. '대개'란 표현을 쓴 것은 위급한 상황에서는 평신도가 주관할 수 있는 성사가 한 가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세례성사다. 하지만 말 그대로 아주 위급한 상황(죽기 직전 같은)에서만 할 수 있고, 그 외에는 오직 사제와 주교만이 7성사를 집행할 수 있다.


7성사가 무엇이라 했는가? 신이 가시적으로 내리는 은총이라 했다. 이 은총이 언제 집중, 집약된다고 했는가? 미사 시간이라고 했다. 문제는 신의 은총이 집약, 집중화되는 미사에 대한 독점권을 갖고 있는 것이 사제란 사실이다. 그렇다 보니 가톨릭 신자가 100만 명쯤 모여 있어도 신부나 주교가 없으면 미사를 할 수 없다. 현행 교리상으로는 100만 명이 아니라 천만 명이 모여 있더라도 마찬가지다.


신을 믿고, 흠숭하고, 의지하는 신실한 신앙인들이 100만 명, 아니 천만 명이나 모여 있는데도 신부 한 사람이 없어 미사를 하지 못한다? 그로 인해 신의 은총을 받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때 사제는 신의 중개자일까 훼방꾼일까? 고대 사회의 '신탁'과 현대 사회의 '미사', 고대 사회의 제사장과 현대 사회의 사제, 이 둘은 정말 아무 관계도 없는 것일까?


왜 신은 개별 인간에게 개별적인 은총을 주지 못하는 것일까? 성사라는 형식을 통해 은총을 내리고, 그 성사를 행할 수 있는 사람은 왜 사제에게만 있을까? 그 권한은 도대체 누가 준 것일까?


아,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가 '마이' 아프다. 맞다. 결코 다루기 쉽지 않은 문제다. 간단히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 잘 안다. 하지만 그렇게 복잡한 것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편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극히 간단명료한 것을 필요 이상으로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어 놓은 것일 뿐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오늘 이야기는 좀 많이 길었다. 원래 하려고 했던 이야기도 아니었다. 텔레비전을 보다가 우연히 옛날 학장 신부님을 보았고, 그분이 했던 이야기가 생각나 해 본 이야기다.


중요한 것은 종교란 '감각적이지 않는 것'을 다루는 영역이다. 따라서 그 어떤 것도 '맞다'라고 할 수 없고 '틀리다'고도 할 수 없다. 따라서 정직한 답은 '모른다'일 것이다. '신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신이 어떤 방법으로 은총을 내리는지도 모른다'가 정직한 답일 것이다. 다만 누군가는 '믿고 싶을' 뿐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믿지 않을' 뿐이다.


나 역시 내가 하는 생각이 맞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내 생각일 뿐이다. 그저 겉으로 드러난 현상들을 보고, '그렇지 않을까'하고 짐작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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