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2차 대전 영화 추천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당시 영국 의회 집권당인 보수당의 비주류 당원 윈스턴 처칠이 영국 총리에 발탁되었다. 총리에 발탁되자마자 처칠은 독일에 대한 영국의 대처를 결정해야 했다. 독일은 폴란드 침략에 성공했고 프랑스마저 집어삼키는 중이었다. 독일과 화친을 맺어야 한다는 여론을 딛고, 처칠은 독일과의 전쟁을 발표하고 프랑스 덩케르크 해안의 연합군을 구출하는 다이나모 작전을 과감히 감행한다. 다이나모 작전의 현장감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덩케르크에서 볼 수 있고, 다키스트 아워에서는 다이나모 작전을 결정하는 과정에서의 처칠의 고뇌와 결단, 그리고 뛰어난 언변으로 의회와 대중을 매료시키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처칠은 키가 작고 뚱뚱했으며 등이 굽은 대머리였다고 한다. 2차 대전에서 총리로 공을 세우기 전까지 처칠은 그리 촉망받는 정치가는 아니었다. 오히려 해군 장관으로 재직하던 1차 대전 때, 갈리폴리 전투 패배에 대한 책임으로 정계에서 멀어진 실패한 정치가에 가까웠다. 그리고 영화 초반부에도 볼 수 있듯, 비서의 작은 실수에도 불같이 화내는 등 다혈질적인 면모가 있는 고약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처칠은 전쟁광이라는 부정적인 별명도 가지고 있었는데, 왜냐하면 그는 독일과 전쟁을 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주장했기 때문이다. 당시 체임벌린 영국 총리가 1차 대전 종료 후 독일과 평화협정을 이뤄내자, 의미 없는 평화협정이라며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영국 국민들은 그를 재평가하게 되었고 처칠은 총리로 지명되기까지 했다.
어찌 됐든 총리로 임명된 처칠은 성공적으로 2차 대전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그가 세상을 떠난 후, 2002년 BBC에서 진행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국인을 뽑는 투표'에서 처칠은 1위에 뽑히게 된다. 처칠은 장관, 총리로 일하기 전엔 작가로 일을 했다고 하는데, 귀족 태생임에도 물려받은 재산 없이 인세로 자수성가했다고 한다. 성공한 작가였던 처칠은 연설의 귀재일 수밖에 없었다.
처칠은 결단력 있는 사람이었다. 영화 중반부, 독일과의 화친을 주장하는 의원들에게 "호랑이 아가리 속에 머릴 처박고 어떻게 호랑이와 대화를 해?"라고 소리치며 자신의 전쟁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피력했다. 하지만, 이렇게 자신의 판단을 확신했던 처칠도 외롭고 힘들었다. 갈리폴리 전투의 실패로 인해 수십만 명의 아군을 희생했었던 전력 때문에 그의 주장에는 항상 물음표가 따라붙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과거에 전쟁에서 실패했던 지도자를 믿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심지어 소속당인 보수당에서도 신임을 얻지 못했다고 한다. 이 상황에서 처칠이 주장을 밀고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은 오로지 호소밖엔 없었을 텐데, 이런 상황에서도 한 국가의 방향을 자신이 주장하는 바 대로 설정할 수 있었던 그는 확실히 영웅이었다.
독일과의 전쟁을 택한 것도 그렇지만, 다이나모 작전을 계획한 것 역시 그의 결단력을 볼 수 있었다. 덩케르크의 연합군 병력을 구출하기 위해 전함들은 물론 민간인 선박까지 동원하도록 명령했을 때 분명 노동당 혹은 여론의 반대에 부딪혔을 텐데 이것마저 자신의 생각대로 관철시킨 것 역시 그의 승부사 기질을 보여준다. 처칠이 아닌 다른 지도자가 당시 총리였다면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덩케르크의 30만 연합군 병력을 구출하기 위해선 프랑스 칼레에서 독일과 전투 중인니콜슨 준장 외 약 4,000명의 병력이 독일군의 시선을 덩케르크에서 돌려야 했고 이것은 곧 그들의 전멸을 의미했다. 생명의 중요성을 비교할 순 없지만, 급박한 전시에서는 과감히 소를 버리고 대를 취해야만 한다. '4,000명의 병력도 소중한 국민이기 때문에 이들을 희생시킬 순 없다'라는, 원칙적이고 아름다운 주장에 발목을 잡혔다면 순식간에 30만의 병력이 희생됐을지도 모른다. 처칠은 과감히 4,000명의 병력을 희생시키고 30만의 병력을 구하는 결정을 내렸고 예상대로 니콜슨 준장의 4,000명의 병력은 거의 몰살되었다고 한다.
정치라는 것은 결국 최선과 차선 사이의 선택이 아닌, 최악과 차악 사이의 선택이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가장 최악의 선택을 피해야 한다. 완벽한 보기가 없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 없다. 그저 가능한 보기들 중에서 가장 나은 것을 선택해야 한다. 왜냐하면 어차피 보기들 중에서 하나는 반드시 선택되기 때문이다. 선택된 보기가 만들 결과는 온전히 선택권자들에게 돌아온다. 선택권자들이 그 보기를 선택했든 선택하지 않았든 혹은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든 상관없이. '보기'를 '정치인'으로 바꿔 생각해보면, 정치인들에게 실망했다고 해서 투표장에 가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키스트 아워를 보면서 영화 남한산성이 떠올랐다. 두 영화에서 그려내는 전쟁은 비슷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 독일과 청이라는 강력한 적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고, 내부에선 화친을 주장하는 세력과 전쟁을 주장하는 세력이 치열한 토론을 한다. 결국 영국은 전쟁을 택하고 조선은 항복을 택한다. 영국과 조선의 결정엔 어떤 차이점이 있었을까?
결과론적인 이야기긴 하지만, 영국은 추후 미국이 참전할 가능성이 높으니 충분히 최종적으로는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처칠의 결단력도 한몫했을 것이다. 한편 조선은 청나라가 산악이 많은 지형에 익숙지 않기 때문에 충분히 조선이 승리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버티다가 늦은 감이 있지만 결국 항복했다. 만약 청나라와의 전쟁을 주장했던 김상헌이 처칠의 자리에 있었다면 그는 세계에 이름을 떨치는 영웅이 되었을 것이다. 선택은 참 어렵다. 더군다나 이렇게 수백, 수천만의 생사를 결정짓는 선택을 하는 자리는 압박감과 부담감이 얼마나 클지 상상조차 안된다.
영화를 보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당시 영국 국민들은 대체로 독일과 화친하고 싶어 했던 것 같은데 영화 중반부 처칠이 지하철을 타는 장면에서는 전쟁을 원하는 것으로 나왔다. 아마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처칠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드라마적인 요소를 집어넣은 것 같은데, 너무 인위적이고 오그라드는 장면이었다. 이 장면만 없었으면 완벽한 영화였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