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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렌더 이야기꾼 Jul 10. 2020

담배 한 개비의 기세

중학교 때의 일이었다. 나는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고, 한 학년 위의 선배 둘이서 우리 반을 찾아왔었다. 누군가를 찾았던가, 선생님의 전달사항을 전해주러 왔던가. 그 선배 둘의 용건은 기억나지 않지만 선배 둘의 기세만큼은 기억하고 있다.


선배 둘은 굉장히 착했다. 뒷 문으로 튀어나온 별 볼일 없는 나에게도 스스럼없이 말을 걸만큼 털털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당시 둘 중에 한 명의 교복 상의 주머니에는 담배 한 개비가 꽂혀 있었다.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던 나는 그 선배의 담배에 시선이 닿은 순간부터 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 담배는 필터 부분이 위를 향하게 꽂혀 있었다. 그래서 새하얀 필터와 같은 톤의 하의 셔츠와 어우러져 보호색을 형성하였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몰랐을 사실이었다.


적잖이 당황한 나는 티 안 내려 애를 쓰며 대화를 마쳤다. 그리고 곱씹으니 정말 멋있는 언니들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중학생의 흡연이 멋있다기보다는 언니들의 기세가 멋있다는 것이었다.


모름지기 학생은 조신하고, 순종적이고, 규칙을 잘 따르지만 과묵해야 하지 않는가!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고등학교 때인 것 같은데 그때에는 교칙에 대한 불합리한 상황이 참 많았다. 규칙으로 존재가 아니라 규칙을 위한 규칙이 존재했던 것 같다. 교목실이나 학주 선생님은 사사로운 것까지 제재를 가했는데 학생 대부분은 그 이유를 몰랐다.


어느 날은 깔끔하게 포니테일로 머리를 묶은 친구가 벌점을 맞았다고 하소연을 하는 것이었다. 이유는 머리끈이 투명색이라서! 검은색만을 허용하고 색이 있는 머리끈을 제재한 것인데 학주 선생님은 투명색을 색이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또 머리가 잡히면 무조건 머리를 묶어야 한다야 한다는 규칙은 필요 이상의 실삔을 사용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절정은 교복이 불편해서 더 편한 활동복으로 교복을 바꾸자는 운동이 일어났다. 디자인 투표까지 했지만 최종적으로 선생님들이 보기 좋은 교복이 선정이 되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당시 무수히 많았다. 항상 이유를 몰랐고, 몰라야만 했고, 몰라도 됐다. 입 다물고 그들이 부여한 규칙을 따르는 것이 ‘말 잘 듣는 착한 학생’으로 보이게 할지는 모르나 당시의 감정들은 지금까지 생생하다. 대부분 모멸감, 하찮음에서 비롯된 비참함 같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 기세의 언니들은 전혀 그런 것을 고려하지 않았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포켓에 담배 한 개비를 넣고, 자연스럽게 전달사항을 전하러 온 것이다. 너무 뻐대지도 않고, 진짜로 늘 해오던 것이라는 듯이 익숙한 모습은 보는 이를 하여금 편안하게 만들었다. 두 언니의 기세는 그동안 비참하게 말없이 따라야했전 지난날에 균열을 일으켰다. 두 언니는 조용하고 강력하게 규칙에 반기를 든 것이다. 언니들의 기세는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던 나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담배를 꽂고 다녔던 것은 아니다. 난 그렇게 대차지 못한다. 두 언니의 기세만 마음에 담았다. 어른들의 지시사항에 무조건적으로 따르기만 했던 내가 처음으로 생각이라는 것을 했던 것 같다. 어떠한 지시나 규칙이 주어졌을 때에 그 규칙이 가지는 목적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목적성을 벗어나는 모든 것들은 불필요한 비계덩어리로 간주했었다.


색깔 있는 머리끈을 제재하는 것은 정숙한 생활태도를 위한 것이니 투명 머리끈이 정숙함을 방해하지 않으니 불필요한 비계덩어리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이 그때부터 형성이 되었던 것 같다. 비계덩어리를 가려내는 사고는 득과 실을 모두 가져다 주지만 실이 치명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도움을 받을 때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 그날 교복 포켓에 담배 한 개비를 꽂고 기세를 펼친 그 선배에게 참 감사하다.


p.s. 대충 이런 기세의 선배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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