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차갑거나 뜨겁거나

냉탕과 온탕

by 혜림

나는 아직 그곳에 머물러 있구나


철학관에서 말했다. 상극이라고.

한쪽은 차갑고,

한쪽은 뜨겁다고.




쿵쿵쿵



오랜만에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할머니께서 집 열쇠를 두고 나오셨다고

택시 타고 우리 집으로 오신 날이야.

다행히 내가 집에 있어서 여분의 키를 들고

택시를 불러서 같이 주변에서 내렸지.


할머니 한 손에는 지팡이,

다른 한 손은 내 손을 잡으셨어.

대문 쪽으로 향하는데

그대 생각에 또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


택시 안에서는 소나무 많은 카페에서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랑 우리가 찍은 사진이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가더라. 어른들과 정답게 찍은 사진.


할머니께 "또 올게요" 했던

그대의 모습이

불과 몇 주밖에 안 되어서 더 선명해.












내가 결혼하지 말자고 문자 보낸 전 날,


같이 살 집에서 문에 기댄 나를 보며 매정하게

"커튼 망가져." 정색하며 말한 그대가 별로였지만,

인테리어 비용이 저렴하지 않으니까,

그럴 수 있겠다고 받아들이면서

바로 그 자리에 떨어져서

반대쪽으로 이동해서 앉았지.




차 안에서 결혼 준비로 다투다가 해결되지 않은 채

내리기 싫었는데,

"내리라고?" 물음에 "그러면?"으로 대답했지.


내일 이야기하자면서

차 도어락 스위치를 누르고

내리라는 표현을 했던 그대가,

울면서 내린 나를 두고

그대로 가버리는 냉정한 그대가,


집에 돌아와서 연락 없이

다음 날 출근하고 내가 보낸 문자에 반응한 그대가 미웠어.


감기에 심하게 걸린 나에게

한없이 차가운 그대의 모습이 상처였나 봐.

"노력해도 안 된다는 거지?" 목소리에

어쩌면 난 물음이 아닌

"노력할게."라는 대답을 듣고 싶었을 지도 몰라.








철학관 다녀와서

그곳에서 나에 대해 들은 대로

왜 이렇게 화가 많냐고 처음으로 했던 말.


난 그래도 차갑다고 밖으로 뱉지 않았는데

아무렇지 않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말들을 하는

그대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어.

단점을 감싸주는 게 아닌 그대지만

어렵게 다시 재회했으니까

이해하려고 서운하다고

그때그때 이야기하고 싶었나 봐.


커플 메신저 바로 지우고

문자로 결혼 비용으로

나에게 준 돈 얼마 달라는 말부터 하는

냉정한 그대가 미웠지만,


그래도 난 돈을 보내준 뒤,

부모님께 감사하고 죄송하다고

전해 달라는 말을 먼저 꺼냈지.


그제야 그대도

"내가 더 미안하지, 그동안 고마웠어요."라고 말해 주더라.


고작 난 900만 원이었어.


그 생각을 하면 난,

그대가 말한 대로

화가 많은 나는 화가 더 나고 불편하고 속상하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놓아버리는 그대 때문에

힘들어하는 나 자신에게 너무 미안해.



근데 근데도 좋았던 때가 자꾸 생각나.


내가 너무 바보 같을 정도로.


그대도 조금은 아팠으면 좋겠어.

원래 이별을 말하면 뒤를 안 돌아보는데

5년 만난 사람도 이렇게까지는 힘들지 않았는데,

정이 덜 떨어져서 이번에는 힘든 걸까.

아직 제대로 안 끝난 느낌이야.


왜 난 그대를 기다릴까.

잔인하고 쌀쌀한 바람이 부는 나쁜 남자인데 말이야.

그대의 사과가 받고 싶은 걸까.

보고 싶다는 그 말 한 마디면 되는데,

미안해. 이 말 한 마디면 충분했는데,


왜 우리 이렇게까지 남이 되어야 해?


그대는 지금도 아무렇지 않게 잘 살아갈 텐데.

냉정하고 차가우니까.

자존심이 센 혼자만의 시간을 강조하던 그대였으니까.


이게 가짜 이별이라는 걸까?


그대가 떠났을 때 내가 보냈던 문자처럼

그대도 용기 내서 손을 내밀어 주면 좋겠다고

매일 밤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