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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란 Jul 13. 2016

어디만큼 왔을라나

김주대 시인



 어디만큼 왔을라나   / 김주대



   어릴 적 어느 겨울 고함을 지르며 걷어찬 아버지의 밥상을 안고 나자빠진 어머니가 된장 뒤집어쓴 채 죽은 개처럼 끌려다니다 아이고 아봐요 한번만 봐줘요 왜 이래요 가끔 살아나 숨넘어가던 저녁이었나 형과 나는 또 아주 오제발 아부지요 아부지요 허우적거리다 죽을 줄 알았는데 무섭게 빛을 내며 장독을 깨던 아버지의 도끼는 달에서 계수나무를 찍던 것이었을라나 헛간 나무 그림자 속에 칼을 숨기던 형의 거친 숨소리를 따라다니던 무서운 달빛은 머리카락만 듬성듬성 남기고 냇물 속으로 끌려가던 어머니 느들은 여 있어라 가마이 있어라 가마이 형과 나는 가만히 서서 울다가 이상한 고요가 다 흘러가고 냇물처럼 꽁꽁 언 어둠이 깊어져 어머니는 언제 돌아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밥솥에 불을 때고 다 늦은 밥상을 다시 받은 형과 나의 숟가락에 고등어를 올려주던 아버지 품에 안겨 술 냄새 지독한 숨소리를 하나에서 열까지 헤아리다 콩닥거리는 가슴으로 취하던 그때가 밤이었나 헛간에 숨겨둔 칼이 두려워 눈치를 보다 입에 밥알을 문 채 쪼그려 잠든 형의 좁고 굽은 무릎에서 목숨의 어두운 밑바닥 같은 걸 처음으로 보았던 그 어린 날이 지금 어디를 가고 있을라나 어디만큼 왔을라나




(주) 창비

창비시선 353

김주대 시집『그리움의 넓이 』중








 "나는 그래. 넌?" 



 타인의 손짓 하나로 나의 고정적인 행동이 충분히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기억 어디쯤에서야 그의 얼굴을 다시 그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미 난 나의 한 부분을 만들어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의 손짓, 발짓 아니 그 모든 행위와 언어가 여전히 나를 쫓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과연 어디쯤 왔을까 생각해보곤 하는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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