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덕
하루에도 몇번씩 거울을 보며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입 끝을 집어올린다
자, 웃어야지, 살이 굳어버리기 전에
새벽 자갈치시장, 돼지머리들을
찜통에서 꺼내 진열대 위에 앉힌 주인은
웃는 표정을 만들고 있었다
그래, 이렇게 웃어야지, 김이 가시기 전에
몸에서 잘린 줄도 모르고
목구멍으로 피가 하염없이 흘러간 줄도 모르고
아침 햇살에 활짝 웃던 돼지머리들
그렇게 웃지 않았더라면
사람들은 적당히 벌어진 입과 콧구멍 속에
만원짜리 지폐를 쑤셔넣지 않았으리라
하루에도 몇번씩 진열대 위에 얹혀 있다는 생각,
웃어, 웃어봐, 웃는 척이라도 해봐,
시들어가는 입술을 손가락으로 집어올린다
아- 에- 이- 오- 우-
얼굴을 괄약근처럼 쥐었다 폈다 불러보아도
흘러내린 피는 돌아오지 않는다
출근길 룸미러 속에서 발견한
누군가의 머리 하나
(주) 창비
창비시선 301
나희덕 시집 『야생사과』 중
나는 그래
요즘 이 세상 속에 살면서 그런 돼지머리같은 얼굴을 단 한면이라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꼭 주변 눈치를 봐야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견디고 버틴 오늘이 남들과 다 똑같은 하루가 아닌데도, 그날 내 거울 속에 돼지머리가 보이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그런 느낌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