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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란 Jul 19. 2016

단추를 잃어버리고

박소란 시인



   단추를 잃어버리고 / 박소란



  거울 앞에 서서 보니 셔츠 앞단추가 없다

  가슴 옷자락 사이 벌어진 틈이 휑하다 동굴처럼 검다

  이 어두운 속

  낯익은 상여 한채 지나간다, 까닭도 없이

  드리워진 죽음의 행렬


  상복을 입은 한떼의 적막이 나를 노려본다

  비늘처럼 돋아난 적의를 온몸에 휘감은 채

  포효하는 침묵의 괴물

  언젠가 울고 웃던

  노래들 모두 어디로 흘러갔는지

  스산한 장송의 메아리만 우죽우죽 돋아난다


  단추 하나 잃어버렸을 뿐인데


  거울 밖으로 흉측한 손들이 튀어나와

  빈 몸뚱이를 사정없이 낚아챈다 동굴 마른 바닥 위

  깡그리 뭉개지는 지난날의 뼈와 살


  단추 하나 잃어버렸을 뿐인데

  버렸을 뿐인데



(주) 창비

창비시선 386

박소란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중





나는 그래

하루를 마감하는 방식은 모두 다르겠지.
그래도 이것 하나만은 같을거야.
힘들었거나 즐거웠던 기억들이 겨우 사소한 단추들 덕분에 생각나고
결국 그렇게 각자의 표정과 몸짓으로 복잡한 하루를 마무리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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