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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란 Jul 21. 2016

더듬거리다

황규관 시인


  더듬거리다 / 황규관



  기억의 알맹이가 사라지는 일이 잦다

  바뀌기 전의 가게 이름이나

  신축공사가 끝나기 이전의 공터가

  더러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애써 관심을 갖지 않은 탓인 줄 알았다가

  그것 말고도 틈새가 너무 많아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얼마 전 만난 이름이 사라지고

  아이가 묻는 질문이 백지가 되어 내게 온다

  듬성듬성 더듬거리는 일이 잦다

  너무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는 몸이

  이제는 뭔가를 덜어내고 있는 것도 같고

  아니면 세상의 일들을 담아내기엔   

  영혼의 전압이 현저히 떨어진 것도 같지만

  그런 자학도 이제는 더듬거리기로 했다

  검은 구멍을 품기 시작하는 것

  그속으로 사라져가는 기록들을 바라보면

  어떤 훈김이 목덜미를 휘감는 느낌이 드는데

  그게 낯설지가 않은 것이다

  조금 더 더듬거리게 되는 것이다



(주) 창비

창비시선281 

황규관 시집 『패배는 나의 힘』 중



나는 그래

나는 기억을 더듬거리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더욱 순간 순간에 매달리는 습관이 내게 있다는 걸 스스로 뿌듯해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도 허공에 잔뜩 뜬 기억들이 수두룩하다.

얼마나 썩어있었는지, 또 어떻게 뭉개져 있었는지, 언제부터 날 노려보고 있었는지 전혀 감이 안올 때가 있기 때문이다.

습관마저 날 더듬거리게 하고 있다는 걸 왜 매번 모르고 지나가는지.

누구에게나 있을법한 검은 구멍이 유독 내 안엔 더 깊게 자리하고 있을 것 같은 느낌에 더 더듬거리고 있는 건지.

정말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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