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 조건은 '당신의 현재입니다.'

가족같이 일할 사람을 뽑습니다. 다만, 당신의 현재를 들려줘야만 합니다.

by 우란

#1. 자기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Q


Q: 여기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가족같이 일할 사람을 뽑는다고 해서... 사실 제가 가족같이 일할 사람을 구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앤: 그전에 당신의 현재가 궁금해요. 먼저 들어보고, 다시 얘기를 나누죠.

Q: 앤, 저는 그를 결국 만나야 했습니다. 정말 모든 이야기를 다 들어줄 수 있습니까?

앤: 그럼요. 이야기해줄래요?






일주일 전, 작은 이모를 만났습니다. 그녀와 함께 커피를 한 잔 마셨습니다. 뜨거운 커피가 흙탕물로 보였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가장 더러운 물이었습니다. 얼굴에 뿌리고 싶었으나, 그녀가 울고 있어서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습니다. 여전히 자신을 탓하고 있었습니다.

전 '참 다행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너만 생각하면, 내 억장이 무너진다."

"...... 저는 그렇지 않아요."


아버지는 세상 평범한 아버지였습니다. 전 그 평범함에 질식할 뻔했던 아들이었습니다.


그날 새벽, 어머니는 요구르트 아줌마가 오기 전까지 제 방에 가만히 숨죽여 계셨습니다. 요구르트가 대문에 걸린 비닐봉지에 담겨야만, 집 대문을 평범하게 열 수 있었기 때문이었죠. 저는 어머니가 신발도 신지 않은 채 요구르트를 제 손에 쥐어준 후 도망가는 걸 지켜보았습니다. 작은 이모의 손을 잡고 말이죠. 저는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진실을 말할 수 없었습니다. 차라리 그날 깨어있지 않았었다면,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겠다는 아버지를 말리지 않았을 겁니다. 어머니에게 버려진 것은 아버지가 아니었음에도, 그 문제는 반드시 아버지의 탓이었어야 했습니다.


"너희 엄마는 나를 버리고 도망갔어. 다른 남자랑!"

"네, 다 아버지 탓입니다. 이제 와서 뭘 어쩌라는 거예요?"


회사원이었던 아버지의 유일한 말동무는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의 친구는 옆 집 개새끼였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항상 아버지는 주인 없는 옆 집에 가서 개새끼에게 온갖 욕을 해댔습니다. 차마 그 집 개를 발로 걷어차거나, 때리지는 못했죠. 그도 어머니처럼 손을 물리고 싶진 않았으니까요. 그녀는 저에게 흔한 강아지의 애정표현이라고 했습니다.


"강아지 이빨이 꼭 내 이빨 자국 같아. 엄마"

"아니란다. 강아지 머리 한 번 쓰다듬고 싶었는데, 이 아이는 그게 싫었나 봐."


네, 저희 아버지는 정말 평범하게 술을 마시는 날엔 꼭 어머니를 물어뜯었습니다. 그가 말하는 개새끼는 사실 술주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참 아이러니하지 않나요?


앤. 왜 어머니는 나를 버렸을까요? 전 그게 참 궁금합니다.


이상한 건, 전 아버지를 버릴 수 없었습니다. 대신 대학교 진학을 명목으로 그를 홀로 내팽개치고 서울로 도망갔습니다. 하지만 단 한순간도 그를 잊은 적이 없습니다.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가 생각날수록 개새끼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누군갈 물어뜯지 않으면, 외로워서 살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부름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그날 결말을 맺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죠. 그에게 할 말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병원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피해자가 되어있었습니다. 온몸에 붕대를 감고 계셨고, 처음엔 누군지도 몰라 병실 안에서 잊혀있던 그의 이름 석자를 찾느라 땀을 한 바가지 흘렸죠. 참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모습보다 그 이름 석자가 말이죠. 그리고 그의 옆에 숨죽인 여성이 있다는 사실이요.

그 여성은 작은 이모였습니다.


"오랜만이구나. 잘 지냈니?"

"뭐라고요? 지금 저한테 말한 건가요?"


난생처음으로 여자의 멱살을 잡았습니다. 순간 깨달았습니다.

'나는 도대체 누구에게 화가 나있는 것일까.'

답을 알 수 없었습니다. 답이 있는지도 혼란스러웠습니다.

아버지는 결국 어머니를 찾았습니다. 어머니는 작은 이모와 함께 살고 있었고, 누군가와 반드시 바람이 났어야 했던 어머니를 붙잡을 명분이 없었던 그는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습니다.

그도 분명 혼란스러웠을 겁니다.


제가 그를 저렇게 만든 것일까요.


어머니는 저와 함께 가고 싶어 했답니다. 그러나 저의 존재는 아버지에겐 매우 소중한 어머니와의 매개체였습니다. 저의 부재는 곧 어머니의 자유를 박탈했습니다. 작은 이모는 어머니에게, 아들을 두고 와야 그가 언니가 돌아올 거란 희망을 갖기 때문에, 언니를 미친 듯이 찾지 않을 거라 말했답니다.


전 어머니를 지키기 위한 진정한 개새끼였던 겁니다.


작은 이모를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어머니는 보지 못했습니다. 사실 제가 봤음에도 외면했을 수도 있습니다. 기억이 나질 않아요. 제가 장례식장 안에서 누굴 만나, 무슨 얘기를 했는지.

회사 동료가 그러더군요. 그게 원래 상을 당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과라고요. 당연함을 뭘 더 어떻게 위로를 해줘야 하냐고 반문까지 하더군요. 전 수긍했습니다. 뭘 해야 할지 몰랐거든요.




Q: 앤, 당신은 저의 평범함을 알고도 저와 함께 일할 수 있습니까?

앤: 여전히 다 풀지 못했군요. 사실 뭘 풀어야 할지도 모르고 있죠?




Q, 지금까지 자신을 단 한 번이라도 사랑한 적이 있나요? 저의 삶 역시 파란만장했습니다. 처음 마릴라를 본 후 사랑스러운 제 머리를 짧게 잘라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엉뚱하고, 어린 나이에 벌써 주근깨가 있고, 새빨간 머리색을 갖고 있다며 수군거렸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보통엔 전 속하지 않았던 거죠. 무엇보다 일을 할 수 있는 남자아이가 아니란 이유로 전 매일 아침이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전 변할 수 없었어요. 그 방법을 몰랐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방식을 찾았으나 번번이 똑같이 행동했습니다. 주근깨 없는 검은색 단발머리를 한 저를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거든요.

Q,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이만 스스로 괴롭다는 것을 똑바로 인지할 수 있습니다. 그들 중 소수만이 상처 입은 자기를 따뜻하게 품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말하는 평범함엔 잡을 수 없는 허상과 날카로운 가시만 가득할 뿐이에요. 왜 타인의 결정을 자기의 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요인으로 생각하죠? 어머니가 버린 당신은 여기 없습니다. 아버지를 외면한 당신 역시 존재하지 않아요. 그저 지금 제 앞에 서있는 면접 보는 Q, 그대만 있을 뿐이죠. 굳이 과거와 현재를 섞을 필욘 없습니다. 엄밀히 평범함으론 세상을 즐겁게 살 순 없습니다. 정말 세상에 평범한 사람이 '보통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그 바보 같은 평범함으론 당신의 화를 풀 수도 없다는 걸, 당신도 이미 알고 있잖아요.

당신의 슬픔을 비난하는 게 아니에요. 충분히 아프고 고통스러웠겠죠.

평범함, 참 쓸모없는 말이에요. 지금까지 당신의 삶은 없었죠. 본인도 인정할 거예요. 거짓말, 외면, 슬픔, 상처, 화를 놓아버릴 수 없었다기보단, 자기 자신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Q, 쉽지 않을 거예요.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을 알지 못해 방황하니까요. 그게 보통의 인간이죠.


당신에게 빨리 극복하라곤 하지 않을게요. 그건 몇 마디 말론 결코 해결될 수 없는 거라서.


참 일을 할 수 있겠냐고 물었죠.

당연하죠. 다만, 당신은 주로 개새끼들과 함께 일할 거예요.

아 강아지요. 개새끼가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면서 당신까지도 지킬 수 있는 예쁜 강아지들이요.

함께 해봐요! 분명 당신도 좋아할 거예요. 어렵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