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려줄 수 없겠지
몇 글자가 빠졌다. <구름 속에 담긴 우리의 노래는 영영 들려줄 수 없겠지>다.
'영영'이란 말이 꼭 필요하다. 그는 들을 생각이 없기 때문에.
그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의 언어가 아니다.
오로지 자신만의 언어에 파묻혀 무서운 착각을 하고 있다.
나는 그게 걱정되지 않는다.
솔직히 걱정할 수 있는 자격이 나에겐 없음을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괜히 마음고생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억울하기도 했으나, 이제라도 깨달은 내가 참 다행이다 싶다.
우리의 노래를 들려줄 수 없음에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조금이라도 귀를 열어준다면, 그는 보다 더 성장할 수 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