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1. 웅변학원
단상#1. 웅변학원을 다닌 적은 없지만.
웅변학원을 다닌 적은 없다. 하지만 웅변학원을 생각하면 이창동의 <밀양>이 떠오른다.
그리고 무지개.
어린 준이가 아닌 집 앞마당에서 널브러져 있는 신애 옆에 핀 무지개가 생각난다.
<밀양>의 시작과 끝은 무지개다.
아이를 유괴한 살인범이 주님에게 용서를 받았다며 신애를 비극으로 몰고 간 이야기가 메인이 아니라, 인간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반드시 다시 일어나야만 한다는 그런 숨 막히는 진실이 <밀양>의 주제다.
그리고 그 복잡한 사실은 너무나 아름다운 무지개로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치유할 수 없는 아픔에서 희망을 봤다.
솔직히 불편했는데, 또 그만큼 기분 나쁘지도 않았다. 뭐랄까.
반드시 누군가는 해야 할 말처럼 느껴졌다.
때론 듣고 싶지 않은 말이 가장 절실하게 듣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
죽음에 익숙해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세상엔 나처럼 죽음을 친근한 현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건 무기력과는 다르다. 섣불리 비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엎어져 쓰러져 있을 수도 없다.
그래서 혼란스럽다.
한 가지. 확신하는 것은,
친구가, 할아버지 두 분 모두가 떠난 곳에는 굳이 무지개가 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무심하고도 따뜻한 위로는 영화도 천국도 아닌 현실에 가장 먼저 존재해야 한다. 신애 옆에 핀 무지개는 모든 이의 옆에 깊게 뿌리내려야 한다.
사실 내가 사는 곳에선 웅변학원을 찾기 힘들다.
요즘 세상에 누가 아이를 웅변학원에 보낼까. 수학학원이나 피아노 학원이면 모를까.
그러나 하필 <밀양>에는 꼬박꼬박 나온다.
결국 영화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나에게 웅변학원의 이미지는 무지개로 정의되고 말았다.
웅변학원을 다닌 적도 없는데, 다녀야 할 것 같다.
어떤 학원이든 반드시 무지개가 함께 할 것만 같은 웃긴 생각, 어처구니없는 생각, 그러면서도 꽤 애정 어린 생각인 것 같은데..
영화에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탓이라, 그렇게 생각하려 한다.
내가 본 무지개는 비가 온 뒤 맑은 하늘에 펼쳐진, 뻥 뚫린, 그저 흔한 무지개는 아니었으니까.
가끔 무지개를 간절히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상상이 아닌 직접 눈으로 보고 마음 깊숙이 담고 싶을 때.
하늘이 아니다.
아무도 관심주지 않는 저 밑바닥.
그곳에서 매일 피고 지는 무지개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