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과 포기는 곧 채무

단상#3 그곳에서 난 채무만을 갖고 나왔다.

by 우란

단상#3 외면과 포기는 곧 채무.



한창 일을 할 때였다. 그래 봤자 학부생 때 조금씩 돕던 일을 직접 전담으로 맡아하는 일이었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는 일을 했다.

어렵지 않았다. 이미 짜인 계획들이었고, 내가 할 일은 계획대로 차질 없이 실행하면 되는 일이었다.

단지 그 완벽한 진행상황은 절대 쉽게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 언제나 변수는 생긴다는 것, 그리고 새로운 직원이 왔다는 것, 사실상 그게 가장 큰 흠이자 빈틈이었다.


작은 문을 스스로 열고 들어간 내가 더 좁은 세상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후였다.

직원 역시 나와 같은 세계에 있었으나 자신이 이 뻔한 구조를 바꿀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어려워서, 관행이라서, 새내기라서, 터무니없어서 란 이유로 진작 고개를 숙였었다.

새로운 행위와 마음가짐으로 사무실의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바꾸겠다는 속내도 없었지만, 그런 일련의 행위들이 이미 자리를 갖고 있었던 이들에게 전혀 통하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의미 없는 행위는 학부생 때도 많이 봐왔었으니까.

그래서 난 금세 익숙해졌다. 오히려 일하기는 편했다.

발전을 기대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할 수 없는 일에 매달리지 않아도 됐었다


그러나 직원은 달랐다.

나를 포함한 몇 명의 진행자를 통솔하는 업무를 맡은 그는 사업 계획에 자신(진행자)의 의견을 넣어 사업에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자고 했다.

그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사무실에서 아무리 새로운 제안들이 올라와도, 그 이상을 경험할 수 없었다.

기발한 제안은 사무실 밖으로 번번이 뛰쳐나가지 못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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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권력자.

자신이 담고 있는 사무실에는 몸만 늙어가는 절대 권력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강압적인 눈빛 한 번으로 수없이 사업을 틀어야 했던 우리였다.

이에, 너무나 쉽게 직원의 안건은 권력자의 눈빛 몇 번에 배를 까고 뒤집어졌다.


그래서 직원은 공식적으로 포기했다.

자신도 할 수 없다는 한계를 인정한 듯했고, 며칠은 아프다며 기침을 해댔고, 결국 하루를 쉬었다.

자신보다 위에 있는 실무자의 계획에 난데없이 무지개 색 점을 찍을 수 없다는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걸까.

그다음 날 직원은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출근했다.

난 그를 보며 이젠 그가 아니라 나를 걱정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직원은 난데없이 비공식적으로 꾸준히 요구하기 시작했다.

한 번은 기발한 수라 생각했는지.

일대일 면담에서, 사적인 공간과 톡방에서 꾸준히 진행자의 발전을 위해 새롭고 기발한 자신의 의견을 직원인 나에게 피력하라고 했다.

우린 누구의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몰라 방황했고, 이는 금세 탄로 났다.

사업을 진행하면서 예산을 늘려 기존의 강사가 아닌 다른 강사를 섭외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매일 포스터 작업을 맡겼던 업체와도 책을 제본했던 업체도 사업기획안에서 사라졌다.

하필 모든 기획안은 직원을 거쳐 절대 권력자의 도장을 끝으로 통과가 되었기에, 우리의 비공식적 움직임은 당연히 무참히 짓밟혔다.

결국 진행자들이 백기를 들자, 직원은 또 포기했다.

"포기는 배추나 썰 때 하는 말이지."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채 일주일도 넘기지 못했다.

checkmate-1511866_1920.jpg 바뀌지 않는 현실에 직원은 두 손을 들었다.

그 요인은 내가 퇴사를 한 이유 중 하나기도 했다.

직원의 용기를 보면서도 한숨을 쉬었던 내가 부끄러웠고,

포기하고 행복한 미소로 출근을 했던 직원이 안쓰러웠다.


그래서 "거기 이상한 집단이에요. 선생님, 그걸 왜 모르세요?"란 다른 동료 선생님의 말에 가슴이 철렁했고 쓰라렸다.

그 일을 사랑한 것도 아닌데 저릿했다. 뒤통수가 아픈 게 아니라 가슴이 참 답답했다.

그래서 어차피 더 다닐 수 없는 이유도 있었기에 퇴사를 결정했다.

퇴사를 결정하고 나니 직원에게 더 많은 미안함이 쏟아졌고, 권력자에겐 반항심이 불타올랐다.

사람이 얼마나 웃긴 지. 그때 또 새삼 깨달았다.

문제는 이미 직원마저도 모든 걸 포기해버린 후였다는 거다.

이젠 다니지 않는다고 그들의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질 수 없었다.

그 책임을 내가 질 수도 없었다. 난 이미 그들에게서 버려졌으니까.


후폭풍은 어마어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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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새로운 일에 용기를 내야 할 때마다, 그 사무실에서 내가 포기한 것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내가 그때 포기한 일은 무엇일까.

내가 포기한 사람은 누구일까.

내가 포기한 것은 어떤 것인가.


나는 모른 척, 매번 같은 일을 같은 방식으로 같은 사람들과 진행했다.

직원의 포기와 우리의 일상은 몇 평도 안 되는 작은 세계에서 익숙하게 해왔던 외면의 결과였다.


외면이 결코 취미는 아니었지만, 고치기 힘든 습관이었다는 것.

그것이 내게 어마어마한 채무로 와버렸다.

아, 이 쓸모없는 버릇을 버리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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