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11. 추석을 보낸 후기 중 하나.
단상#11. 똑같지만, 전혀 같지 않은 추석
추석을 무난히 보냈다.
아무래도 무난하게 평범하게 지나간 하루가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내 또래 사촌을 정말 오랜만에 만났다.
그전에 추석 당일 새벽에 열심히 쓴 글이 있는데,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분명 또 그 주둥아리로 나를 걸고넘어지면서 자신의 우월함을 충족시킬 것이다.
그러니 분명히 말해야지. 단호하고 부드럽게,
"난 너와 가는 길이 달라. 그렇게 비교해서 네가 얻는 게 자존심이라면, 참 불쌍하다."
한 가지 더 덧붙여서 '인간성'을 언급하며, 쓰레기 같은 인성을 짚어주고자 했다.
그게 현재 그들이 보기에 '아무것도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준비였다.
적어도 인간성을 얘기하려면 수많은 예시를 들먹여야 했는데, 나에겐 넘쳐났기 때문이다.
그 사촌 놈은 타지에서 대학교 과정을 마치고 회사에 취업한 동갑내기였다.
그에게서 나온 첫마디는 놀라웠다.
"우리는 새벽 2시까지 일을 해야 돼. 한국인이 나 말고 없어서 후임이 들어와도 다 내가 해야 하는 거야."
이후의 대화는 지겨웠다. 3시간가량의 대화는 '힘들다.'란 말로 정리가 가능했다.
그는 너무 힘들어 타인을 생각할 겨를이 없어 보였다. 그러니까 군대에 갔다 오면 철들어 효자가 된다는, 그런 헛소리처럼 그는 직장을 가진 회사원이란 옷을 입고 벗고 하는 것 외엔 할 줄 아는 것이 없었다.
그는 자신이 그렇게 이기적인 인간이 아님을 깨달았을 때 가장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돈 많은 여자를 만나고, 돈은 무조건 내가 벌고 쓰고, 예쁜 얼굴이 아니면 진심이 우러러 나오지 않는다는-
여러 가지의 풍신 나는 말들을 주고받던 그는 그대로였다는 말이다. 본 알맹이는 변하지 않았고, 이를 바꿀 이도 없었다. 이미 그는 성인이었고, 부모는 자식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을 공들여 마련한 적도 없어 보였고, 심지어 그 가족 구성원 모두가 바라는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잘난 인물인 줄 알았겠지. 상사가 부당한 일을 시키고 요구하면 당당히 싫다고 거부하고 첨언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겠지. 후임만 들어오면 자신이 당한 모든 일을 그대로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겠지.
지금까지 힘들게 여기까지 올라온 내가 주말에도 일을 할 줄 몰랐을 것이다. 그저 자신이 얼마나 뿌듯한 일을 하는지 감상하고 누릴 수 있을 거라 믿었겠지.
누구나 느끼고 있는 삶의 무게를 혼자 느끼고 있다는 그의 말에 느낀 것 딱 하나였다.
그것도 자랑이라면, 나도 참 많이 했겠다는 이상한 감정.
그에게서 잠깐 나를 봤다. 그렇게 힘들어하던 나를.
나도 저렇게 누군가에게 했겠지. 참 웃펐다.
한껏 만들어낸 가시가 필요 없던 날이었지만, 그 사촌을 보며 괜히 웃음이 났다.
다 다른 일을 하고 사회에 속해 있지만, 결국 느끼는 감정은 다 똑같았다.
추석에 얼굴 한 번도 비추지 않았던 그가 자신이 힘들다고 토로하기 위해 할머니 집에 온 것을 보니 안쓰러웠다. 그는 말할 상대가 필요했고, 딱 하루만 보고 더 이상 보지 않을 사촌들이 생각났다. 그에게 형과 부모님이 있었지만, 사촌들에게 털어놓기 시작한 이야기는 모두 그들은 처음 듣는 얘기였을 것이다.
내가 인간성을 걸고넘어지려 한 것은 오직 그들의 가족력 때문이었으니까. (부모에게 닥쳐라는 말을 하는 자식 중 하나였다.)
결국 내가 칼처럼 품고 있던 말은 건네지 못했다.
전달할 필요도 없었지만, 그는 그럴 여유도 내어주지 않았다. '힘들다'에서 나아가는 대화를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내가 얻은 건 '연예인 걱정이 제일 쓸데없다'는 깨달음이었다.
마치 피해의식을 가진 사람처럼 굴 필요도 없고, 그렇게 나의 깊은 속을 드러낼 이유도 없는 날이었다.
그가 생각한 것처럼 우린 살가운 사촌이 아니니까.
그냥 그때 보고 마는, 인연과도 전혀 가깝지 않은 이방인이니까.
그도, 나도 각자 '나'만 잘하면 될 일이다.
나의 아빠는 슬프다고 표현하시겠지만, 그건 슬프다고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명절증후군이 사람을 미치게 하는 건, 매년 같은 스트레스를 줘서 그런 것이 아니다.
똑같지만, 전혀 같지 않은 감정으로 매번 사람의 마음을 해쳐놓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