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를 통해 "인간의 한계는 반드시 존재하며, 이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인정해야만 고독 속에서도 삶을 계속 살아갈 수 있다."라고 말한다. 이는 우주 전부를 샅샅이 들여다볼 수 없는 것과 같다. 쉽게 말해 그만큼 당연한 얘기는 없단 소리다.
주인공 로이는 일찍부터 아버지의 업적을 따라 우주 탐험에 자기 인생을 다 바치기로 선택했다. 엄마와 어린 아들을 두고 매몰차게 우주로 떠나버린 아버지를 원망하면서도, 겉으로는 세계적인 우주비행사로서 그를 존경한다. 물론 아버지를 따라 우주비행사의 길에 들어선 이유에는 어떻게든 그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로이는 이를 철저하게 비관적으로 생각한다. 삶의 주체를 잃어버린 가장 큰 원동력이 바로 오랜 세월 버리지 못한 아버지를 향한 원망과 존경 때문이었으니까.
이와 정반대로 주변 사람들은 로이를 대단한 영웅의 아들인 동시에 전문 우주비행사로 추대한다. 어떤 극한의 상황이 닥쳐도 절대 맥박수 80을 넘지 않는 강철 인간을 그들은 그저 씹고 맛보고 즐기는 데 집중한다. 다시 말하지만, 외부자들은 그가 우주 비행사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가족을 버린 아버지가 우주비행사'였기 때문이었다고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출처: 영화 <애드 아스트라> 스틸컷
사실 로이는 사랑을 할 수 없어 혼자가 익숙한 사람이며, 누군가와 함께 사는 삶은 애초에 존재할 수 없다는 얘기를 목숨을 걸만큼 믿는 그런 나약한 인간이다.
그가 전문가로 보이는 이유는 사랑하는 아내까지 제풀에 지쳐 떠나보내버린 '극강의 감정 컨트롤'이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듯 아주 기계적으로, 꾸준히 작동하기 때문이다. 정말 딱 그뿐이다. 외면과 내면의 엄청난 격차는 로이에게 차가운 표정만을 선물했고, 그는 시간이 흐를수록 아버지를 증오하는 마음이 자신을 괴롭히는 것인지, 그를 떠나보내지 못하는 자신의 답답함이 삶을 피폐하게 하는 것인지 판단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러니, 끝을 모르는 자기 자학과 비판이 로이의 독백에 내재되어있는 건 너무나 당연한 소리이다.
전기 폭풍 써지의 진원지가 아버지가 진행하고 있는 '리마 프로젝트'란 사실을 알게 된 로이는 아버지를 설득할 목적으로 다시 우주선에 몸을 구겨 넣는다. 자기를 감시하는 노인(프루이트 대령)을 데리고 말이다. 대령은 로이가 설득에 실패하면, 그의 아버지를 죽여야 한다는 1급 비밀 지령을 로이의 손에 쥐여준 후 자연스레 퇴장한다. 로이는 그렇게 리마 프로젝트가 꽁꽁 숨겨 놓은 더러운 진실을 차츰 알아가기 시작한다. 외계 생명체를 발견하기 위해 시작된 리마 프로젝트의 연구원들은 우주가 자신들의 삶을 집어삼키기 전에 지구로 송환되길 원했다. 그러나 로이의 아버지는 이를 승인하지 않았고, 나아가 폭동을 일으킨 연구원들의 생명유지장치까지 꺼버리며 프로젝트의 목적을 죽음까지 이용해 미친 듯이 강요한다. 세상 사람들에게 영웅이었던 아버지는 살인자였고, 그 살인자에겐 너무나도 강한 신념이 자리하고 있었다. '외계 생명체의 발견'이란 목적은 수많은 피를 요구했고, 살인자는 이를 주저하지 않았다. 정부의 시각처럼 아버지는 미치광이었고, 반드시 제거되어야 하는 1순위였다. 로이는 홀로 아버지가 만든 참극에 들어가 자신을 좀 먹는 어둠을 정면으로 마주해야만 하는 운명의 기로에 놓였음을 깨닫는다.
출처: 영화 <애드 아스트라> 스틸컷
평생을 냉정함으로 유지했던 로이의 외면은 폭풍을 품고 살던 내면이 몰고 온 더 큰 태풍에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의 앞에는 아니, 트라우마에 생(生)이 먹혀버린 아들 앞에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사(死)에 집착하는 아버지가 서 있었다. 아버지는 살인을 저지르고도 아주 당당히 두 발로 서서 자기가 앞으로 이룰 위대한 업적을 읊조리는 데, 고대했던 부자 만남의 시간을 모조리 허비한다.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느껴지지 않는 단호한 아버지의 눈동자 속에 아들은 자신을 좀 먹었던 어둠의 정체를 그제야 정확히 발견한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을 주저앉히는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 빛을 끌어모아야 한다. 빛이 없다면 더 깊은 어둠이라도 찾아낼 용기가 있어야 한다. 최악의 두 가지 대안 중 더 최악인 대안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은 반드시 존재하니까. 좋은 결과는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그 짓'이 터무니없이 어렵고 힘들지만. 그럼에도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로이가 풀지 못했던 분노가 오롯이 아버지의 부재로만 작동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제일 먼저 아내를 떠나보낸 것도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도 모두 자신을 더 깊은 고독 속으로 끌고 내려가고 있으며, 누구나 갖고 있는 안전지대를 단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마지막까지 아버지는 로이에게 지구로 돌아갈 수 없음을 주장한다. 우주에 달랑 줄 하나로 서로를 의지해야만 하는 긴박한 순간에도 거칠게 아들의 도움의 손길을 거부한다. 맨몸으로 지구에 갇히는 것보다 우주 속에 버려져 외계 생명체를 만날 확률이 더 크다 판단했기 때문이다. 끝까지 자신을 가로막는 한계의 벽을 인정하지 못하고 무모함과 어리석음만 표출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로이는 그 순간 자신의 한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함을 인지한다. 세상 모든 아픔과 슬픔을 자신의 몫이라 생각했던 오만함과, 외로움을 당연하게 여기며 사랑하는 사람을 버린 자신의 잘못을 시인한다. 아버지와 자신을 연결한 유일한 끈을 자르면서 스스로 옭아맸던 트라우마를 기꺼이 품에 보듬는다. 그리고 그는 지구에 도착해 자신을 구하러 온 타인의 손을 고민 없이 잡으며 말한다.
"삶에 의욕을 느낍니다. 나의 짐을 그들과 나누고, 그들의 짐을 함께 나눌 겁니다. 저는 사랑하며 계속 살아갈 겁니다."
결국 <애드 아스트라>가 향한 곳은 비극의 시작이었던 아버지가 아니었다. 자신이 불쌍한 사람인지를 알면서도 변하려 하지 않던 전형적으로 나약하고 소극적인 인물, 로이었다. 생과 사 중 '생'을 선택한 인간이며, 고독 속에서도 자기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주체적인 인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