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13. 하루를 보내는 법
단상#13. 열심히 산 척을 한 하루
어김없이 오늘 하루를 또 그냥 흘러 보냈다. 그날의 하루가 다시 찾아온 날이었다.
그리고 저녁과 새벽의 경계에서 간신히 안희연 시인의 <업힌> 시를 접했다.
그의 시구절 전부가 나의 24시간을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특히 마지막 구절.
나무를 깎아 만든 부엉이, 퀼트로 된 새 인형, 엽서 속 검은 고양이, 한 쌍의 천사 조각상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는 순간이 있다
나는 자주 그게 끔찍해 보인다
- <업힌> 中 / 안희연
난잡하게 걸어놓은 엽서들과 예술가들의 그림들, 분위기를 먹고사는 아크릴 그림 세 작품, 다 쓰이지 못한 소설책, 먼지를 머금은 달력, 몰래카메라를 눈에 달고 있는 커다란 곰인형까지 방에서 편안히 좀먹는 나를 바라보는 그것들. 자주 끔찍해 보여서 문제일까 싶다가도 제대로 현실을 인식하고 있다는 또 다른 반증이라 그렇게 또, 적당한 합리화를 하게 하는 대단하신 분들.
이를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싶은데, '결국'으로 시작해 '오늘도'로 끝맺게 되는 그날의 하루.
시인의 말처럼 나는 별 볼 일 없는 24시간을 사용하면서 부단히 '산 척'을 했다.
일어났고, 씻고 밥을 먹었으며,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걷었으며, 동생의 밥을 챙겨줬고, 열심히 미드를 시청했으며 그다음 간신히 글 몇 줄을 썼다.
글을 어렵게나마 토해내고 나니 또 어깨가 한 껏 올라가 금세 집중력을 잃었다.
그리고 감기를 얻었다.
이것을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참을 고민했다는 것이 '아직 실패지 않은 내가 남아있다고 믿는 것과 같음'을 깨달았다. 착각 같은 아니 착각이었다. 그것도 아주 어리석은 감정이 뭉친 그림이었다.
그런데 후련했다.
살아있음,
나는 최선을 다해 산 척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실패하지 않은 내가 남아 있다고 믿는 것 같다
- <업힌> 中 / 안희연
슬픔을 인정하기가 너무 쉬워 오히려 위로를 받았다.
덕분이었다.
그저 그런 하루가 아니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