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없을 거란 얘기를 들었다. 일방적인 표현이었지만, 그는 충동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인정했다. 내가 쉽게 고개를 끄덕이니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는지 갑자기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또다시 내가 깊이를 알 수 없는 근심, 걱정에 빠진 것 같다.
2. 어젯밤에 남동생이 차 사고를 당해 응급실에 실려간 상상을 했는데, 꿈은 그를 살리지 않았다. 꿈속에서 남동생의 영정사진을 품에 안고 펑펑 눈물을 흘리던 여동생이 보였다. 쓰러진 엄마와 엄마를 안고 있는 아빠도 보였는데, 정작 나는 보이지 않았다. 외할머니와 이모가 내 이름을 부르며 찾고 있었는데, 어느새 거친 바람이 내 얼굴을 때렸다. 옥상 난간 위에 서 있는 내가 보였고, 이모의 냉정한 한 마디가 들렸다.
"세상에서 제일 나쁜 년, 네가 이러고 있으니 시간이 그냥 허송세월 흐르고 있잖아."
3. 오늘 동생이 말년 휴가를 나왔다. 여동생이 죽은 꿈을 꾼 그날처럼 가슴이 아팠다. 심장을 누가 힘주어 잡은 것처럼 숨이 턱 하고 막혔는데, 차라리 꿈이었으면 했다.
4. 그날 이후로 개꿈을 더 많이 꾸기 시작했다. 그날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이었다.
5.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생을 포기한 연예인의 소식과 생을 붙잡은 작가의 소식을 함께 들으니 고민은 더욱더 심각해졌다. 사후 세계가 궁금한 것보다 죽음을 앞둔 그 순간의 느낌이 상상되지 않았다. 우린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 그 순간을 맞이할까. 정말 즐겁게 그때를 준비할 수 있을까.
6. 나의 인간관계에 큰 회의감을 느낀다. 그들은 지금까지 모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후회보다는 화가 난다. 미안함이 지배적이었던 순간도 이해받지 못했고, 맹목적으로 판단당하고 나니 그것을 풀 의욕도 잃어버렸다. 20대의 큰 고비가 너에게도 왔을 뿐이라는 어른들의 말을 믿고 싶다.
7. 돈을 싫다고 말할 수 없어서 답답하다. 내가 한몫을 정정당당하게 요구하는 것이 힘들어 화딱지가 난다. 간단한 의뢰라 생각하는 것부터 실력이 좋지 못해 덜 주고 싶다는 본심까지 숨기지 않는 그들에게 서운하다. 당신의 처음도 이렇게 무시당하고 멸시당했었을까. 나는 다 그렇게 시작하는 것이라 말하는 꼰대가 되지 않겠다.
8. 이대로 내 삶이 계속된다는 상상은 끔찍하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내 삶이 그렇게 어처구니없다 평가해야 하나 싶어 억울하다.
9. 오랜만에 시나리오가 잘 써져서 기분이 좋다.
10. 다시 시를 읽기 시작했는데, 본성이 시와 같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시인의 시를 읽게 되었다. 악덕 교수의 시를 읽으니 정말 딴 사람 같다. 그에게 이런 감정이 정말 남아있다는 것이 신기한데, 그는 영영 모르겠지.
11. 인간관계를 시스템으로 표현하던 선생님이 갑자기 글을 쓰다가 떠올랐다. 선생님의 농담 하나로 고된 일의 스트레스를 풀던 시절이 있었다. 나에게도.
12. 또 녹음 파일을 받아 푸는 알바를 하게 되었다. 글이 써지지 않을 때는 이런 일이 반갑다. 멍하니 할 수 있는 일의 매력은 명확한 데드라인이 있다는 것이다.
13. 잘하고 싶은 일과 하고 싶은 일이 같은 일인 것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항상 짐작하는 버릇이 있어,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한 것 같다.
14. 그러고 보니 나는 한 번도 잘할 수 있을 거란 응원의 말을 들어보지 못한 것 같다. 이것이 헌신적인 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나는 두려움을 조장하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막상 나와보니 아 이게 현실이구나 싶다. 그래도 난 잘 될 거라고 수없이 입을 벌려가며 그들에게 말했었는데... 아, 또 생각이 깊어진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루에도 이렇게 몇 번이고 한다.
15. <나의 나라>에 빠져있다. 대사와 상황을 만들어내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하며 보니 더 즐겁다.
16. 은희경 작가의 <빛의 과거>를 읽는 내내, 주인공의 대학생활에 깊은 공감을 느꼈다. 내가 경험했던 사건들이 일치하지 않지만, 그 감정만큼은, 그 고민만큼은 너무나 똑같아서 말이다. 나도 나의 과거를 매일 편집하는데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