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과거>나에게도
재편집된 과거의 내가 있다

B#10. 은희경 작가의 신작, <빛의 과거>

by 우란

B#10. <빛의 과거> 은희경 작가



나에게도 재편집된 과거의 내가 있다




요즘 들어 재편집된 과거의 내가 얼마나 많을까 생각한다. <빛의 과거> 덕분이기도 하지만, 매번 글을 쓸 때마다 다르게 기억되는 과거 이야기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내가 나 스스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그날의 감정이 생생하게 떠오르기도 한다. 중요한 점은 단 한 번도 '지난 나'를 부정해 본 적이 없다는 점이다. 사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가 경험해온 모든 시간은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과거의 내가 결정된다고 믿으니까. 심지어 그건 10초가 흐르는 사이에도 쉽게 바뀔 수 있다.


남과 다른 것이 그대로 결격사유가 되는 단체 생활에서 내가 누군지 따위를 고민할 기회는 아무에게도 주어지지 않았다. - 27쪽, <빛의 과거> 은희경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가장 나를 두려움에 떨게 한 단어는 친구도 공부도 아닌 '나'였다. 매일 일기를 쓰며 오늘의 나를 섬세하게 표현하곤 했다. 그렇게 일일이 적고 나서야 '아, 나는 오늘 이런 사람이었구나.'라고 확인하며 안정을 찾았다. 공부는 우리 시절 당연한 책임의무였다. 그러니까 머릿속에 딴생각이 들어차 있어도, 무조건 수학 정석책을 펼쳐놔야만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선생님을 포함한 어른들은 이를 자랑스러운 가르침이라 여겼다. 상담 선생님이란 직업이 드물었던 시절, 내 중학교 앞에는 남고가 담장을 사이에 두고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매년 수능이 다가올 때마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렸고, 항상 비극적 자살로 결론난 사건이 일어났다.

나는 그 사건을 '공부에 대한 압박으로 인한 자살'이라 평하는 모든 어른을 경멸했다. 모든 자살은 타살이다. 그리고 그 고등학교 오빠는 공부만이 학생의 본분이라 강요하고 억압했던 모든 이들에게서 도망치고 싶었던 것이다. 그날 일기를 쓰며 혼자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날의 나는 영어단어를 외우지 못한 멍청이였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선생님은 하나 같이 "공부는 공부야." 했다. 그것도 매년.

'나'를 탐구할 수 없는 시기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우울해진다. 그건 직접 경험해 본 내가 보증한다.


남자의 외모나 조건을 따지지 않고 지성인의 양심과 진실함에 더 가치를 두는 현명한 여성이어야 하며 그 현명함 안에는 남자들이란 타고나기를 여자의 외모를 따지도록 되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지혜로움도 포함되어야 했다. - 81쪽, <빛의 과거> 은희경

교수님이 준 술을 마시자마자 토하고, 억압에 또 마시고 토하기를 반복했던 1학년 1학기가 지나자 나는 술에 공포감을 갖게 되었다. 마시는 것은 물론이고, 술병을 보기도 싫었다. 굳이 술을 마시면서 웃음을 흘려가며 사람과 친해지는 방식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항상 동기들과의 술자리를 피했었다.


"너는 왜 즐길 줄 몰라? 동기끼리 술도 마시고 노래방도 가고 하면 대학생활에서 홀로 외롭지는 않잖아! B처럼 원샷도 하고, 분위기도 좀 살리고 그래야지."


혼자가 외롭다는 건가? '홀로'와 '외로움'이 같은 말인가? 혼자 대학교 생활을 하면 어떤가. 각자의 시간이 필요한 대학생이 얼마나 많은데.


은희경 작가가 그린 주인공의 대학생활 속 여성의 위치와 내가 경험한 대학생활 속 여성의 위치는 좀 다르기도 했지만 결국 같은 선에서 출발했다. 그 당시 B가 딱 좋은 여성의 기준에 부합했다. 예쁨은 물론이고 성격도 쾌활했으며 입도 거칠었다. 낯가림은 남자들의 당당한 전유물이었다. 모든 장소의 분위기를 띄우는 것은 B 같은 여성의 몫이었다. 술도 안주도 모두 알아서 세팅을 해야 했고, 그들은 세팅된 자리에서 낯가림을 지우고 고함을 치며 놀았다. 그리고 다음날 여자 동기의 알람 전화를 받고 학교에 왔다.

술을 마실 때도 거침없고, 야한 대화를 해도 전혀 개의치 않고, 술에 취해 여자 동기의 신체를 실수로 만져도 대수롭지 않게 여겨야 했다. 당연히 빼어난 미모를 갖고 있어야 하며, 하이힐에 짧은 치마나 바지를 입고도 당당하게 거리를 걸어 다니며 자기들과 맞담배를 피운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 시절 남자 대학생들은 자신의 외모에 스스로 높은 점수를 매기고 여자 대학생들의 외모에 학점을 매겼다. 특히 신입생들을 평가하는 것은 그들의 당연한 관례였다.

'어디서 감히 여자가.'라고 대놓고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그 말이 이미 체화되어 있었다. 오죽했으면, 연애를 하고 싶으면 남자들과 제대로 놀 줄 알아야 한다는 얼토당토않은 말을 여자 동기들에게 내뱉곤 했다. 역시나 나에게도 그 물음이 전해졌다.

그래서 나는 퉁명스럽게 답했다.

"그러니까 지금 너희들하고? 여기서 무슨... 아, 너 지금 외롭구나?"


그 뒤로 나는 잘 다녔다. 그들이 어떤 얘기를 퍼트리고 다녔는지 알지만 당시 내 관심사와는 전혀 접점이 없었다. 세상에 그런 머저리만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아, 졸업반이 되어서야 B에게 "걔들이 좀 병신들이긴 했지?"란 소릴 들었던 기억이 난다.


혼자라는 건 어떤 공간을 혼자 차지하는 게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익명으로 존재하는 시간을 뜻하는 거였다. - 84쪽, <빛의 과거> 은희경

정말 깊이 동의한다. 혼자 보내고 싶은 시간은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철저하게 익명으로 존재하는 시간'을 말하는 것이다.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과 정신의 문제다. 사색이나 명상을 좋아하는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제일 머리가 잘 돌아가는 시간과 같다. 끊임없이 나를 곱씹으며, 나를 결정하고 만드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시간이니까.


나의 약점에는 말을 한 하면 감춰진다는 작은 장점이 있었다. 약점을 어느 정도 숨길 수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 대신 숨기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하는 고통의 뒤따랐다. (...) 이야기의 효과를 위해 거짓말도 곧잘 했다. 그것이 지나친 성공을 거두는 바람에 부모와 가까운 친구마저 종종 내 약점을 잊어버릴 때가 있었다. (...) 나는 그들이 내 소질을 인정한 것보다 약점에 무신경한 데 대해 분노와 외로움, 그리고 혼란을 느꼈다. - 114쪽, <빛의 과거> 은희경

생각해보니 나 역시 약점을 숨기기 위해 거짓말을 해오고 있었다. 고통도 고통이지만, 그 거짓말이 또 다른 아킬레스건으로 작동할 때 얼마나 절망스럽던지. 내 발등을 내가 찍어놓고도 얼마나 억울하던지. 그래도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여전히 약점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 주기가 빨라지지 않아야 한다는 다짐을 매일 하면서. 가족들의 오해에 혼란을 느끼는 것도 당연한 얘기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언제나 화해가 결말이 되지 않는다. - 211쪽, <빛의 과거> 은희경

그렇게 잃은 인연이 많다. 어떤 화해든 꼭 마음에 상처를 남긴다. 그래서 결말은 쉽게 만들어지지도 않고, 또 끝나지도 않는다. 긴 시간이 필요한 결말과 그렇지 않은 결말로 나뉘는 것처럼.


비판은 가장 손쉬운 선택이다. 나쁘게 돌아가는 세상을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에너지가 적게 소모되므로 심신이 약한 사람일수록 쉽게 빠져든다. 신체의 운동이 중력을 거스르는 일인 것처럼, 낙관적이고 능동적인 생각에도 힘이 필요하다. 힘내라고 할 때 그 말은 낙관적이되라는 뜻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낙관과 비관의 차이는 쉽게 힘을 낼 수 있는지 아닌지의 차이인지도 모른다. 역설적인 점은 비관이 더 많은 희망의 증거를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어둡고 무기력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비관을 일삼는 사람이야말로 그것이 깨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자신 같은 비관론자도 설득할 만큼 강력한 긍정과 인내심을 요구하게 되고, 결국 유일하게 그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랑하는 사람을 괴롭히게 된다. - 319-320쪽, <빛의 과거> 은희경

나는 비관론자다. 그래서 작가의 말처럼 간절히 그것이 깨지기를 바란다. 강력한 긍정과 인내심을 통해서 내가 긍정의 힘을 믿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비관론자들의 특기는 쓸데없이 집요하고 섬세하다는 거다. 그래서 비판이 가장 쉬운 선택이자 행위다. 타인에게 하는 칭찬도, 스스로에게 하는 칭찬도 민망할 정도로 인색하다.
나의 그 부분이 동생을 괴롭게 하고 있는 줄 알면서도 쉽게 마음은 변하질 않는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자신의 사는 모습을 드러내 보이며 살 수 있는 사람은 소수였다. 안 보이는 대다수는 어딘가에서 각기 다양한 모습으로 자기 몫의 삶을 살아내고 있을 것이다. 오래전 국사 강사의 말을 조금 바꿔보자면 행동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불만스러운 세상에서 적응하려고 애쓰면서 말이다. 나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 331쪽, <빛의 과거> 은희경

나도 그중 하나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진실이 어디 있어. 각자의 기억은 그 사람의 사적인 문학이란 말 못 들어봤니?"- 334쪽, <빛의 과거> 은희경
기억이란 다른 사람의 기억을 만나 차이라는 새로움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한 사람의 기억도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차이 나는 것만이 반복이 되어 돌아온다"는 말처럼. - 337쪽, <빛의 과거> 은희경

대화. 내가 대화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가 서로 다른 기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억을 다룬 영화도, 책도 좋아한다. 확실하게 정의 내리고 판단할 수 없는 것에 매력을 느낀다. 위험하기도 하지만, 나는 위험보다는 '다름'에 더 중심을 둔다. 하나의 사건에서 출발하는 각자의 다양한 감정과 그들이 내린 선택과 결과를 함께 공유하는 행위가 인간다움에 빛을 불어넣어준다고 믿는다. 내 맘대로 재편집한 과거의 나와 다른 이가 편집한 과거의 나가 충돌할 때 일어나는 그 빛도 포함해서.



<빛의 과거>란 제목처럼. 이 책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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