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9-1 [2019년 제10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박상영, 김희선 작가 소설.
대상- 박상영 <우럭 한 점 우주의 맛>
* 요상한 고백말고!
암이 재발한 엄마를 간병하는 아들에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아들은 편지를 통해 과거 자신을 뒤흔들었던 남자와의 연애를 떠올린다.
이 소설은 제목이 주는 힘이 있다. 호기심은 물론이고 단번에 책에 손이 가게 하는 흡입력이랄까.
<우럭 한 점 우주의 맛>. 궁금하잖아? 우럭 한 점에서 우주의 맛을 느낀다는 건 뭘까. 그렇게 거대한 소속감을 느끼면서 우주의 위대함과 광활함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은?
아들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잊어버린 인간이다. 암에 걸린 엄마에게서 그는 죽을 때까지 간병인으로 살아야 할 운명임을 일찍이 받아들인다. 아들의 손길이 익숙해진 엄마는 이젠 그가 없으면 화장실 변기에서 일어나지도 않았지만, 그는 엄마에게 헌신적 사랑을 베풀 수가 없다. 오히려 자신이 엄마보다 먼저 정신병으로 죽지 않을까 걱정까지 한다.
아들은 자신이 깨닫기도 전부터 남자를 사랑했다. 아들의 눈이 여자가 아닌 남자에게 간 것을 본 엄마는 그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킨다. 그녀의 세계관에서 사랑은 남녀의 결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들의 사랑은 불순하고 정신착란을 일으키는 병으로 각인되고 만다. 그래서 그녀는 아들의 헌신적인 간병에도 자신의 결단을 유별난 행위라 생각하지 않는다. 아들도 엄마도 이젠 서로에게 무심할 뿐이다.
그런 아들에게 사랑이 찾아왔다. 같은 수업을 들은 남자에게서 그는 불꽃을 감지했다. 띠동갑 차이가 나는 건 물론이고, 자신을 마지막 학생운동권이라고 말하며 국가의 감시를 받는다는 허무맹랑한 소리와 타인의 시선에 천당을 오가면서도 오로지 자기 할 말만 하는 요상한 성격을 가진 사람임에도 말이다. 아들은 남자가 사준 달랑 우럭 한 점으로. 그동안 얽매였던 본능을, 자아를 분출한다.
자아 해방이라 해도 될 것 같다.
12살이나 어린 애인에게 정치적 얘기를 늘어놓는 남자는 집안에서만 거대한 사람이었다. 아들은 세상 밖에서도 사는 법을 터득 중인데 말이다. 결국 아들의 사랑은 짝사랑으로 변했갔다. 열렬하게 사랑했던 마음은 남자에게 부담이 되었고, 결코 되돌려 줄 수 있는 사랑이 아니었다.
남자는 떠났고 아들은 버려졌다.
그런 그 남자에게 편지가 온 것이다. 그것도 아들이 쓴 연애일기에 빨간펜으로 맞춤법을 표시해서.
아들은 남자의 품에서 돌연 엄마에게 사과를 받고 싶었다.
남자를 엄마에게 소개해주고 싶었고, 아무 조건 없이 당신을 사랑할 수 있음을 남자에게 보여주고자 했다.
그러나 아들은 모두 실패한 채 다시 살아가야 하기에 일을 시작했다.
일기를 퇴고해 보낸 편지는 아들에게 강하게 자신의 존재를 어필한다.
'이제 너 어떡할래?'라고.
아들은 생각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나의 인생이 이토록 한기가 가득한 이유는 뭘까.
내가 우유부단했던 걸까. 용기가 없던 걸까.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채, 엄마에게 당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며 툭 털어놓을 때,
드디어 그는 과거에 먹었던 우럭 한 점을 목구멍으로 내뱉는다.
그 우주와 같던 맛을 토해낼 수 있게 되었을 때, 아들은 남자가 보낸 추잡한 수신호를 침몰시킬 수 있게 되었다.
부디 이제부터라도 아들이 사랑할 때 망할 우럭 한 점과 같은 맛과는 차원이 다른 맛을 느꼈으면 한다.
"꽁치 말고 당신이라는 우주를요."(37쪽)
이 요상한 고백 말고.
수상- 김희선 <공의 기원>
* 다시 쓰여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재미있다. 축구공의 기원이 단 한 번도 궁금한 적이 없었는데도 흥미로웠다. 지루할 틈 없이 작가의 '믿거나 말거나! 축구공의 기원 찾기'에 몰입했다.
1882년 조선인 소년은 플라잉피쉬를 타고 온 한 영국 선원에게서 축구공 하나를 선물 받는다.
12개의 가죽을 이어 붙이고 그 안에 공기를 넣은 최초의 축구공이었다. 구두장인 토마스 굿맨의 발명품으로 그는 그 축구공 하나로 크게 성공한다. 그러나 성공에는 실패가 따르는 법인가. 영국의 젊은 기자 앤더슨이 토마스 굿맨의 공장에서 어린아이들이 유황 연기에 취한 채 축구공을 만드는 실체를 보고, 이를 '런던 아동 노동의 실태'로 세상에 폭로한다.
젊은 혈기를 내뿜던 앤더슨이 조선인 소년을 만난 것은 운명이었다. 사실 소년이 흘린 파라핀 종이에서 현재의 축구공의 설계도를 발견한 것도 포함해 그가 정말 그 소년을 만났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딱 한 장의 사진. 긴 역사 속에서도 살아남은, 그가 찍은 사진 한 장이 <공의 기원>을 탄생시켰다.
플라잉 피쉬 군함에서 소년이 받은 축구공은 토마스 굿맨이 만든 공이었고, 앤더슨은 토마스 굿맨의 실체를 폭로하고 대뜸 조선으로 넘어와 소년에게 축구공을 들게 한 후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 사진은 토마스 굿맨사를 인수해 세계에서 가장 큰 축구공 생산업체를 차린 박흥수에게 사업의 정당성과 깊은 역사를 제공하기에 이른다. 그 소년이 바로 박흥수의 증조부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달랑, 토마스 굿맨이 찍힌 축구공을 들고 사진 속에 선 누군지 모르는 남자 하나로 '믿거나 말거나! 축구공의 기원 찾기'는 막을 내린다.
나는 공이 가장 아름다운 구로서 완성되어온 역사에서 찝찝함과 불쾌함을 발견했다. 그러니까 마냥 오 신기한데? 란 느낌이 전혀 없었고, 그래서 너무 재미있었다.
<공의 기원>은 눈에는 흥미로우나 마음은 텁텁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소년이 진짜고, 사진이 가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솔직히 작가도 이를 알려주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지도 않다. 그저 "이런 썰도 있고 저런 썰도 있다네요?"라고 흘릴 뿐이다.
진실은 이렇다.
소년은 공을 받았지만, 축구를 할 수 없었다. "정말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114쪽) 소년은 먹고살기 바빴고, 토마스 굿맨은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기 위해 런던을 벗어나 인도로 가 공장을 세웠다. 가정집을 노동의 현장으로 만들었고 다시 아이들을 사들였다. 소비자들은 어떻게 누가 만들었는지가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획기적인 발명품에 현옥 되었다. 그런 시대였다. 앤더슨은 노동 착취를 당하는 아이들을 위해 기사를 쓰지 않았다. 나아가 자신만의 편협한 시각을 역사 속에 남기고자 부득불 거짓을 찍었다.
설상가상, 박흥수는 자신 있게 말한다. 우리 회사는 최첨단 기계가 축구공을 만든다고, 어린아이들을 착취하지 않는다고. 그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꿈이 담긴 축구공을 생산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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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평론가의 <공 역사박물관 도슨트 서비스>에선 이를 이렇게 표현한다.
(149쪽)
'정의 실현의 성취감에 도취되었던 저널리즘'
'착취당하는 대상이 제3세계 주민으로 교체되었을 뿐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생산-소비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고 믿는 시민들의 선량함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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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공의 기원 속엔 제국주의가 기생하고 있었다.
어느새 소년이 품었던 꿈이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린 이유다.
죄다 뭐가 중요한 지 모른다. 무엇을 위해 축구공을 만들었는지가 빠져있다.
내가 볼 때 공의 기원은 그 소년이 돈을 벌기 위해 배를 타기 전으로 되돌아가 다시 쓰여야 한다.
자신도 모르게 떨어트린 파라핀 종이를 얼른 줍는 게, 반드시 역사의 한 줄이 되어야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