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8_월간 <채널예스> 2018년 10월호 리뷰
오랜만에 기차 안에서 잡지 하나를 꺼내 들었다.
(시나리오를 쓰겠다면서 도통 책을 읽지 않는 나를 바꾸기 위해 1월부터 책을 들고 다니고 있다.)
하루에 책을 한 줄이라도 읽지 않으면, 불안해 했던 학부생 때로 돌아가야만 하는데,
참 그게 쉽지 않다.
매번, 내 손에는 핸드폰이 들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수집가가 꿈인 마냥, 책은 틈틈이 산다. 책을 사서 방 안에 두고 있는 행위로 스스로를 괜찮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예스 24에서 발행하는 <월간 채널예스>, 작년 10월호다.
'나의 삶을 재미있게 사는 방법'을 엿볼 수 있는 잡지다.
당신도 거창한 계획이 없어도, 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다며, 용기를 주고 있었다.
(인터뷰가 잡지의 90%를 이루고 있고, 대부분 질문이 '나'의 즐거움에 대해 묻고 있었다.)
많은 이 중에서도 나의 마음을 움직인, 그의 삶을 적어보고자 한다.
그녀는 도서관에서 20분을 타이머로 맞춰놓고 반복해서 글을 쓴다. 20분만 쓰는 게 아니라, 한 번 집중해서 쓸 때 20분이란 시간을 투자한다.
글을 한 줄도 쓰지 못하는 날도 있지만, 그녀는 그 순간에도 소설을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에게 글은 재미있는 활동을 넘어 자신의 삶을 매일 새롭게 살 수 있는 원동력이다.
도서관을 나설 때, '내일 다시 도서관에서 글을 쓸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행복감을 느낀다는 말에, 나는 부러웠다. 단순히 꾸준히 한다는 것만으로는 평생 글을 쓸 수 없겠다는, 아니 행복할 수 없겠다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면, 힘들다고 느껴지지 않는다는 예능인 노홍철의 말에, 속으로 '거짓말하네'라 우물거린 나였다.
현재 나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꾸준함과 성실함이다. 물론 내가 스스로 재미와 설렘을 느끼지 않았다면, 성실함을 무기로 '꾸준히 하자!'란 굳은 다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왠지 나의 다짐은 손보미 작가의 일상과 다른 것 같았다. 그 다름은 틀림으로 받아들여졌다.
왜 나는 하필, 틀림으로 해석했을까. 잡지에 실린, 그녀의 당당한 웃음을 보면서 말이다.
부러워서일까, 스스로 꾸준하지 않음을 자각하고 있어 그런 걸까. 결론은 모두 다였다.
작품을 행복하게 쓰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괴롭게 쓰는 소설이 아니라
내가 즐거운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서 오래 쓰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쓰지? 설득력이 있게 구성하지? 독자의 마음을 어떻게 사로잡지?'란 복잡한 고민에 스스로를 궁지로 몰아넣는 나에게서 작가의 '행복한 행위'는 이질적이었다.
하지만, '내가 행복해하는 행위이면 좋겠다'는 작가의 말은 나에게 정말 절실하게 다가왔다.
'즐거운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오래 쓰고 싶다는 것' 역시 부러웠다.
나 역시 꾸준히 오래, 재미있게 글쓰고 싶다. 어떤 형식의 글이던 상관없이, 최선을 다해 나의 사유를 모든 독자와 공유하고 싶다.
아무런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매일 조금씩 쓴다.
-아이작 디네센
손보미 작가가 좋아하는 말이다.
매일매일 조금씩 쓴다는 아이작 디네센(덴마크 작가)의 말에 나 역시 깊이 동의한다.
하지만 나의 글쓰기는 여전히 복잡한 생각들로 인해 간신히 터져 나온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한 글자, 한 문장, 한 문단, 한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이건, 단순히 웃자고, 말로만 내뱉을 수 없는 말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감정 없이 쓴 글을 보고 놀랄 때가 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썼더라? 가 아니라, 글 안에 내가 그토록 원하던 재미와, 논리가 자연스럽게 녹아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참 드문 현상이라는 것.
행복해하는 행위를 나 역시 꾸준히 하고 싶다.
역시 엄청난 노력이 필요할 듯하다.
나의 글쓰기에도 분명 규칙은 있다.
우선은 나를 먼저 면밀히 관찰해봐야겠다.
기사 링크: 채널예스_<커버스토리>, 손보미 그것도 소설 쓰는 시간
박선아(아트 디렉터)의 글은 첫 문단부터 재미있다.
그는 "아니라는 걸 알면서 굳이 그렇게 하고 싶은 일이 있다. 가령 글을 쓸 때 쉼표를 자주 쓰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쉼표를 사용하는 것과 한라산(술)을 마시는 자신의 행위를 위트 있게 섞어 이야기한다.
쉼표 없는 글을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그는 자기만의 쉼표를 귀여운 자리에 배치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당당하고도 자유로운 그 행위는 "아닌 걸 알지만 해보는 일들이 있다."에서 시작된다.
나에게도 그런 일들이 있다. 당연히 하면 안 되는 행위가 있지만, 하고 나면 얼마나 속이 시원한지 모른다. 진정한 쉼표는 그런 거다. 가끔은 억지로라도 잠깐 멈춰야 한다. 얼마든지 우린 직접 자신의 삶에 쉼표를 찍을 수 있다.
박선아의 말처럼.
"그렇게 해서 더 즐겁고 덜 심심해지면 '이거면 됐지'하고 웃어 보인다."
둘, 어떻게 혼자일 수 있겠니_마음이 급속히 나빠지지 않도록(이병률)
이 칼럼은 이병률 시인이 직접 경험한 두 사건으로 시작된다.
'동료 작가의 시상식 뒤풀이에서 벌어진 일'과 '음악 하는 남자 후배의 아내와의 만남에서 벌어진 일'이다. 시인이 겪은 두 인물은 누가 봐도 '몰상식한' 사람들이다. 자신의 남편의 책을 함부로 뒀다며, 핀잔을 준 인간과 시인도 별거 없다며 조롱한 인간이었다.
시인은 이를 두고,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이야기한다.
가족이, 결혼이 인간에게 주는 영향을 마냥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건, 그가 스스로 혼자이기를 선택한 요인이다.
시인은 타인과 감정을 '나란히' 주고받기를 원하지만, 현실 속에선 쉽지 않음을 담담히 전달한다.
그래서 그는 칼을 품고 다니는 무사처럼, 도장을 갖고 다닌다고 말한다.
그 도장으로 자기 사람을 선택하고, 자신이 멀리하고 싶은 이를 제외시킨다고.
너무나 공감되지 않는가?
시인의 철학은 나의 철학과 전혀 다르지 않다.
아마 모두에게 드러나지 않는 자신만의 도장이 있을 것이다.
이는 어쩔 수 없다. 아마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거다.
혼자임을 자처하는 시인의 마음은 모두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전혀 어렵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