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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란 Dec 04. 2019

결혼도 이혼도 종용하지 않는 영화 <결혼 이야기>

감독 노아 바움백, 이 영화는 명확하다.

결혼 이야기 Marriage Story, 2019 제작  

미국 |  코미디 외 |  2019.11.27 개봉 |  15세 이상 관람가 |  137분

감독: 노아 바움백



결혼도 이혼도 종용하지 않는 영화, <결혼 이야기>



남편 찰리와 아내 니콜은 이혼을 앞두고 있다. 서로 얼굴 붉히지 않고, 어린 아들을 위해서 최선의 방법으로 결혼생활의 종지부를 찍기로 한다. 마치 신사와 숙녀처럼 교양 있고, 기품 있게 각자의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거라 믿으면서 말이다. 그러나 세상에 그런 아름다운 이혼은 없다. 결혼과 이혼을 제외하더라도 인간은 상대의 마음을 후벼 파야만 직성이 풀리는 단면을 가진, 비열하고도 불쌍종족이다. 그건 쉽게 부인할 없는 문제다. 더구나 평생 서로 사랑하겠다는 맹세를 어린 자식 앞에 두고 손쉽게 있는 부모는 드물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의 증표가 보는 앞에서 치졸하게 서로를 비난하는 것이 이혼의 첫걸음이란 결혼도 경험하지 않은 나도 아는 내용이다.

출처: 영화 <결혼 이야기> 스틸컷

이혼을 앞둔 부부 대부분이 찰리와 니콜처럼 점잖게 시작했을 것이다. 현실 속 이별은 아름다울 수 없다는 진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동안 쌓아왔던 행복한 추억들을 모조리 쓰레기통으로 넣고 싶지는 않은 게 사람의 심리다. 그러니까 그림의 떡이라고, 노력 안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뭐든 노력하면 된다는 희망은 원래 쓴맛보다 단맛이 더 강하기에 사랑받는 것이니까.
그렇다면 <결혼 이야기>는 '어떻게 이혼을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일까. 아니다. 이 영화는 좀 많이 특별하다. 결혼과 이혼을 종용하지 않고도, 두 가지 이야기를 통해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실을 대변하고 응원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두 인물의 파탄 난 사랑을 확인하고 결정짓겠다는 목적 대신에 그들이 새로운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감내하고, 다시 힘차게 살아가는지 보여주는 것에 집중한다. 물론 이야기의 뼈대가 '이혼'을 다루기 때문에 '결혼은 현실이다!'란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결혼 이야기>가 사람들에게서 깊은 공감을 끌어내는 것은 그 진리의 한 마디로 찰리와 니콜의 이혼을 쉽게 판단하고 결론 내지 않기 때문이다.

출처: 영화 <결혼 이야기> 스틸컷

 <결혼 이야기>의 시작은 독특하면서 애절하다. 


니콜과 찰리는 서로에게 사랑에 빠진 뒤 결혼생활을 하며 느꼈던 상대의 정점을 얘기한다. 내레이션으로 시작되는 그들이 고백은 너무나 사랑스럽고 따뜻해서 '이혼'이 아닌 '사랑'을 얘기하고 있다는 착각까지 하게 한다. 하지만 부부상담사의 등장으로 모든 것이 어그러진다. 사실상 둘의 관계가 진작에 끝났음을 보여주는데, 이는 찰리와 니콜의 대화에서 충분히 드러난다. 이미 니콜은 찰리와 이혼해 새로운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고, 찰리는 이런 아내의 마음을 애초에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둘은 서로에게서 결코 타협점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좋게 이혼하기 위해 긴 시간 동안 연기하는 중이었다.


두 인물을 뜯어보면, 그들의 이혼 문제의 시작점과 끝점을 알 수 있다. 찰리는 연극 극단 단장이자 감독으로 평생을 실험적인 연극으로 예술성을 인정받아왔다. 니콜은 찰리가 기획한 연극 무대에서 배우로 성장했다. 본래 유명 드라마에 출연하여 스타 배우의 길을 걸을 수 있었지만, 찰리에게 빠져 고향을 떠나 오롯이 그를 위해 살아왔다. 짐작했겠지만, 이혼 요구는 니콜이 먼저 찌른 싸움이다.
감독 찰리와 배우 니콜이 만나 함께 오랜 시간 연극판에서 몸집을 키운 건 명백한 사실이다. 고집이 세고 단호한 그와 배려심 넘치고 용감한 그녀가 세운 '직업적 공든 탑'이 브로드웨이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극단'이 아닌 '가족'이란 형태에서 둘의 관계는 긍정적인 시너지보다 부정적인 결과를 더 많이 도출하면서 끝내 망가지고 만다. 

 



출처: 영화 <결혼 이야기> 스틸컷

온전한 나를 잃어버린 니콜에게 찰리는 더 이상 좋은 남편, 내 편이 아니다. 오직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남자일 뿐. 자신에게 좋은 기회가 왔음에도 여전히 '자신의 공간과 사상'을 중시하고 강요하는 찰리가 야속하다. 그가 성장할수록 작아지는 자신으로부터 하루빨리 벗어나기 위해 니콜은 남들이 보기 좋은 이혼을 때려치우기로 한다. 이제 그녀는 노라의 말처럼 '희망찬 행동'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하니까.   


<결혼 이야기>의 결말은 니콜이 고용한 이혼 전문 변호사 노라가 등장했을 때 이미 까발려진다. 하지만 앞서 얘기했듯이 이 작품은 결과가 아닌 과정에 무게를 두고 있다. 따라서 노라의 날 선 친절함으로 이혼의 현실판을 빠른 호흡으로 보게 되는데, 그 장면 하나하나가 정말 눈이 부시게 처절하고 비참하며 치졸하다. 그만큼 재미있다는 얘기다.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먼저 공격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 단번에 이해될 정도다. 서로를 감시하고 비난하며, 끝내 꽁꽁 싸매 왔던 감정을 저주로 퍼부어대는 둘의 모습에서 안타까움과 후련함을 동시에 느끼게 될 것이다. 혼란스럽겠지만 그게 팩트다.    


이 영화의 매력은 두 사람의 결말을 끝까지 보고도 '결혼'과 '이혼'이 아닌 '나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를 먼저 떠오르게 한다는 점에 있다. <결혼 이야기>에서 결혼과 이혼의 문제는 수단과 도구였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그 솜씨가 탁월했다. 그 모든 것들이 결국 우리의 삶의 일부임을 따뜻하고 섬세하게 보여줬기에 많은 이의 찬사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디서부터 그들이 잘못되었을까요?"라고 묻는 이는 분명 있을 것이다. 그 질문이 달갑지 않다거나,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나는 "전 그들이 하나의 독립체로서 좋은 친구로 지냈으면 좋겠어요."라고 답함으로써 <결혼 이야기>가 남긴 긴 여운을 간직하고자 한다.







PS.  이 글은 페이스북 '전주 디지털 독립영화관'에도 게시된 글입니다. 전주 독립영화관 관객동아리 '씨네몽'회원으로 개봉작(무료)을 본 후 리뷰를 올리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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