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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란 Dec 24. 2019

영화가 영화로 보이지 않을 때,
<미안해요 리키>

우리가 켄 로치 감독에게 찬사를 보내는 이유

미안해요 리키 Sorry We Missed You , 2019 제작  

영국 외 |  드라마 |  2019.12.19 개봉 |  12세이상관람가 |  101분

감독: 켄 로치


영화가 영화로 보이지 않을 때, <미안해요 리키>



<미안해요 리키>를 본 후, 나는 이른 시일 내에 부모님과 함께 다시 영화관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갈 때까지만 해도 '부모님께는 절대 보여주지 말아야지.'가 머릿속을 지배직후였다. 영화가 영화로 보이지 않았다. 배우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찍은 긴 영상물이 너무나도 영화 같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그 이유 말고는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리키를 보고 있지만, 서울에서 회사원을 그만두고 택배기사로 변신한 삼촌과 30년을 넘게 한 개인 자영업자로 일하는 아빠가 생각났으며 그를 뒷받침하는 엄마, 전문직으로 수없이 직장을 바꾸며 살아온 이모까지 떠올랐다. 나아가 리키와 애비가 서로에게 고된 삶의 쳇바퀴를 감당하기 힘들다고 말할 때는 내가 존경하는 모든 가족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러니까, 나는 영화가 아닌 내 삶을 보고 있었다. 내 삶을 지탱하고,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며, 살아가게 하는 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그들은 수없이 얼굴을 바꾸며 출연했다. 결국 <미안해요, 리키>는 그저 영화로 볼 수 없었다. 

출처: 영화 <미안해요, 리키> 스틸컷

그들 모두에겐 무시무시한 공통점이 있었다. '어떤 고난이 와도 멈추지 않는 성실함.'


첫 장면에 등장하는 리키가 택배회사에서 면접을 볼 때 가장 먼저 나온 말도 '성실'이었다. 리키는 지금까지 살면서 하지 않은 일이 없다고 말하며, 전 직장에서 동료들이 성실하지 않아 그만두었다고 말한다. 자신은 무슨 일이든 꾸준히 성실하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까지도 함께 내비친다. 그러나 현실은 마음먹는 대로 되지 않는다. 살얼음판은 기본이고, 서늘한 냉기까지 겪어야 한다. 상사는 리키에게 개인 자영업자로 일한다고 하지만, 정작 그는 현장 노동직과 서비스직을 동시에 수행하는 회사 직원이다. 사실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자신의 몸값보다 비싼 택배 스캔 장비를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고, 밥 거르기 일쑤고, 오줌은 페트병으로 해결해야 한다. 
시간은 곧 돈이니까.
  

엄마 애비는 간병인으로 일한다. 초과수당을 받지 못하지만, 자신의 엄마를 돌본다는 마음으로 환자들을 정성스레 케어한다. 리키의 새 직장에 쓸 차를 사기 위해 자신의 차를 팔아 온종일 버스정류장과 씨름하지만, 버텨야 하기에 꿋꿋이 버틴다. 사춘기가 온 아들(세브)도 챙겨야 하고, 불면증에 시달리는 어린 딸(리사)에게도 애정을 쏟아야 한다. 그러나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환자들의 집을 이동할 때마다 아이들에게 전화해 일일이 지시하는 것뿐이다. 직접 눈앞에서 품으로 보듬어가며 함께 아이들의 미래를 고민하거나, 그들의 속마음을 들어줄 여유는 그녀에겐 없다.

그래서 애비는 "난 최선을 다하는데 시간이 없어요."라고, 리키는 "사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 모든 게 엉망진창이야."라고 토로한다. 안정적인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온몸을 바쳐 일하고 또 일하는데, 어째 가정은 점점 더 불안정하게 변해가니까.

누구나 알겠지만 두 사람이 간절히 바라는 바람은, 우리가 익숙하게 아는 부모의 마음이다. 그건 익숙하다 못해 당연해서 가끔은 잊어버리고 마는 그들의 희생을 뜻하기도 한다.  

그것은 ''의 존재를 잘못 읽어 ''의 존재를 고민하는 난독, 불면증 환자의 고뇌만큼이나 고통스럽고 답답하다. 아마 자식의 문제가 아니었다면, 두 사람은 너무나 쉽게 고민을 내려놓았을 것이다. 

출처: 영화 <미안해요, 리키> 스틸컷

리키의 가족은 안정과 불안정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지만, 특별해 보이지는 않는다. 현재에서 방황하는 세브같은 아이나 언제 가족이 깨질지 모르는 불안감에 휩싸인 리사 같은 아이를 키우지 않는 부모는 없다. 아니 그 줄타기에서 뛰어난 고수를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은 평범하다.

사춘기 소년 세브는 짝사랑하는 친구에게 고백도 못 하고, 그녀를 떠나보내야 했다. 부모님은 얼굴을 보기도 힘들고, 리사는 동생 주제에 오빠인 나의 삶을 걱정한다. 세상에 뿌린 질문은 수백 가지인데, 단 한 번도 속 시원한 대답을 들어본 적도 없다. 그래서 그는 가장 익숙하고 쉬운 부모에게 화를 낸다. 그들은 절대 자신을 떠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더 잔인하고, 더 무심하고, 더 외면할 수 있는 건 전 세계 자식들이 가진 망할 특권이니까.

"넌 똑똑한 아이야, 너한테 선택권을 주란 말이야."

"아빠처럼 커서 종놈이 되라고?"


참 흔한 부모와 자식 간의 대화다. 왜 하필 리키의 '정확 배송'은 생판 남들에게만 기가 막히게 전해질까. 남들은 쉽게 하는 일 정작 당사자에겐 왜 이렇게 힘들게 다가올까. 그러나 역시 이것도 지극히 평범한 일상 중 하나일 뿐이다.

리키의 가족을 흔들어놓는 사건은 '세브의 유기정학'으로 시작해, 심장이라곤 없는 택배 사장 말로니의 "가정이란 언젠가는 문제가 생기게 되어있어."란 말에 힘입어 끝을 향해 간다. 세브의 일에서 애비, 리사, 리키까지 한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벌어지는 사건 사고가 전부 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안타깝고, 또 안타깝지만, 뉴스 아닌 바로 주변에서 직접 귀로 전해 듣는 이야기라는 것. 그것이 <미안해요, 리키>가 그린 현실이다. 
영화적 현실이 아니라, 그냥 현실.

출처: 영화 <미안해요, 리키> 스틸컷

<미안해요, 리키>가 날카롭게 보여주는 것은 리키 가족의 위태로움이 아닌 그들을 난도질하는 사회 체제의 민낯이다. 내가, 우리가 이토록 공감하고 슬퍼하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전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훌쩍 뛰어넘었다는 느낌이 든다. 개인에서 가족으로 시선을 확대한 점도, 영화 끝에 희망이 아닌 절망감을 준 점도 전부 고마웠다. 우린 국가 도움 없이도, 언제든 절망 속에서 소소한 웃음과 행복을 찾아내는 힘을 갖고 있으니까. 

하여 <미안해요, 리키>가 더 많은 이의 눈과 입에 오르락내리락했으면 좋겠다.


"가야 해. 돈 못 벌면 우리 길바닥에 나 앉아. 나는 그런 꼴 못 봐. 그러니까 아빠 보내줘. 나 일하러 가야 해."


하필 이 대사로 영화가 끝이 날 게 뭐람. 어제 내가 들은 말도 리키의 마지막 대사와 다를 바 없었다. 이렇게 감정이입이 잘 된 영화는 오랜만이다. 분명 <미안해요, 리키>는 관객 모두의 이야기로 스며들어 더 영향력있는 영화로 재탄생될 것이다. 

그의 이야기는 처음 시작부터 나의 이야기로 들어왔으니까.

출처: 영화 <미안해요, 리키> 스틸컷






PS.  이 글은 페이스북 '전주 디지털 독립영화관'에도 게시된 글입니다. 전주 독립영화관 관객동아리 '씨네몽'회원으로 개봉작(무료)을 본 후 리뷰를 올리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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