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18, 변화된 관점에 대해
단상#18. 요즘 나는 좀 변덕스럽다
1. 변덕 하나.
20대에서 30대로 향하고 있는 기분은 정말 롤러코스터다.
나는 곧 죽어도 번지점프나 롤러코스터와 같이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놀이기구는 타지 않겠다는 것을 신념으로 삼은 사람이었다. '왜 굳이 죽을 수도 있는 놀이기구와 스포츠를 하는가?'가 평생 의문이었으니까.
그런데 반 오십을 훌쩍 넘긴 나를 맞이하고 나니 '아, 그냥 뛰어내리고 싶은 게 이런 걸까.' 싶은 순간이 불쑥 왔다 갔다 한다. 가끔은 정말 하늘에서 뛰어내리는 그 기분이 궁금해 미칠 것 같다.
후련할까.
정말 내 모든 걱정 근심이 다 떨어져 나갈까.
그 짧은 순간 온몸을 휘감는 강렬한 '무'의 상태가 주는 완벽한 안정감을 나도 느낄 수 있을까.
언제 죽을지도 모르니 하고 싶은 거 하고 살겠다는 친구의 말에 감추지 못한 한심한 내 표정이 생각났다.
매사에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았던 내가 평생 그렇게 살 줄 알았던 거다.
지금의 나를 만든 수많은 생각이, 고정관념으로 똘똘 뭉친 내 신념이 변화란 새로운 고개를 만난 이 기분.
일이 내 마음대로 풀리지 않아 답답한 와중에도, 하고자 하는 일을 놓을 수 없는 이 현실.
긍정의 진정한 의미는 현재의 나를 좋게 아름답게 포장하고 이미지화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난 감정만큼은 수백 번 번지 점프하며 사는 사람인지라 매일 그럴 수 없어 슬프고 외롭다.
가끔은 충동적인 사람이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런 사람들에게서 전해지는 날것의 감정이 묘한 위로가 된다.
변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뛰어내릴 줄도 알아야지.
그래서 요즘 난 좀 후련하다.
꿈에서도 롤러코스터를 탔는데, 현실이라고 못 탈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나, 나의 마음이 조금은 느리게 뛰고 있음을 확인했다.
2. 변덕 둘.
예전에는 일관성 있는 사람이 좋았다.
말 그대로 어떤 일을 평생, 어떤 습관을 한결같이 하는 사람.
시간이 지나도 절대 변하지 않을 거란 확신을 주는 사람.
나에게 변심은 곧 죽음이었다.
그 사람에게서 다른 면을 보는 순간 그렇게 징그럽고 실망스러웠고 나아가 재수까지 없었으니까.
아이돌 그룹, 배우, 친한 친구들은 물론이고 가까운 친인척들에게도 해당되었다.
말 그대로 만난 사람들은 전부 내 기준에서 하나 둘 탈락되는 게 당연한 절차였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수가 열 손가락을 채우지 못한 날이 허다했다.
'어떻게 저렇게 얘기할 수 있어? 네가?'
'방금 한 행동, 그게 뭐야? 너가?'
반면 항상 내 열 손가락 안에 들어있는 사람들이 있다.
부모님. 뭐, 내가 세운 '일관성'이란 기준이 어디서 왔겠는가.
그들은 정말 일관성 있는 사람의 표본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달라 보이기 전까지는 대쪽 같은 내 기준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저렇게 한결같은 사람들이 내 눈 앞에 나와 매일 함께 하며 증명했었으니까.
하지만, 시간은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다.
나이를 한 살씩 먹어가며 느끼는 과거가 이렇게 사람 마음을 괴롭힐 줄은 몰랐다.
하나 둘, 내 공식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첫 번째 내가 그렇게 주장하고 강조했던 '일관성'을 의심했다.
두 번째론 '일관성' 앞에 다양한 수식어를 붙었다.
아빠 엄마는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 자유로워졌다.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서운함과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고, 기쁨과 행복을 더 크고 거대하게 표출했다.
슬픔과 공허함에 자주 침묵을 유지하기도 했다.
"마음만은 아빠도 청춘이야'란 말에,
"엄마란 직업 너무 힘들어."란 선언에.
"내가 맨날 자식 눈치 보면서 말을 해야 돼?"란 꾸짖음에,
"너도 나중에 딱 너 같은 딸 낳아라!"란 마지막 항변에,
나는 조금씩 그들이 다르게 느껴졌다.
내 관점이 완벽한 인간상이라 믿었는데, 그 아래에 숨어있던 착각과 오만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렇게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인간다움엔 가장 중요한 '타인을 이해하는 유연함'은 없었다.
난 충분히 다를 수 있는 부분에 틀림을 갖다 붙였던 거다.
내 일관성은 사방이 벽으로 막힌 방에만 숨어있으면서 많이도 활동했다.
부모님에게서 낯선 부분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자연스럽게 나의 열 손가락은 부끄러워졌다.
이런 한결같음을 원한 게 아니었는데, 그런 걸 말한 게 아니었는데.
난 내 과거의 나에게서 벗어나야 했다. 무엇보다 앞으로 살 나를 위해서 말이다.
아는 이상 모른 척할 수 있는 대범함(?)도 내겐 없었다.
난 그동안 속으로 무시하고 거절했던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먼저 다가가고, 질문했다. 매번 자연스럽진 않았으나 그들과 어울렸다.
물론 나의 변화한 관점으로도 맺을 수 없는 인연은 있었다.
다만, 다름은 이렇게 인정하는 것이구나를 배웠다.
이후 터득한 일관성에 수식어를 붙이기 시작한 건, 정말 삶의 태도가 멋진 사람들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수시로 하고 싶은 일이 변하는 사람도, 좋아하는 걸 매번 바꾸는 사람도, 가치관이 변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도 전부 자신의 본질을 잃지 않고 사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전부 '일관성을 위한 열정'을 꾸준히 유지하며 삶을 가치 있게 살고 있었다.
대단했다.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 타인과 함께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사는 사람들.
쉽게 오해하고 단정하지 않고, 한 번 더 생각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수고를 하는 사람들.
유연한 사고가 유연한 태도와 만나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었다.
나도 나의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고도, 다양한 방법으로 일관성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사실 글을 쓰는 내내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이런 내 마음을 이해하기 쉽게 표현할 수 있을까.
결국 긴 글을 쓰고 수정하기를 반복했는데, 밤 예능 프로를 보다 무릎을 딱! 쳤다.
정말 딱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왜 내 머릿속에선 나오지 않았을까.)
유퀴즈에서 나영석 피디가 등장했다.
그리고 그가 피디 지망생들을 향해 남긴 말이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하나와 그 생각을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는 각오 하나를 들고 오셨으면 좋겠어요."
그의 말에 도움을 받아 끝맺음을 하련다.
우리가 타인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방식에도, 삶에 변곡점을 맞이할 때도, 꿈을 끝까지 좇고 있는 방식에도 모두 적용된다. 삶을 살아가는 데 그 다짐 하나면 된다.
모든 건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나'의 태도에서 시작되니까.
그에 따른 결과가 어떻든 반드시 마지막 맛은 달콤할 거다.
요즘 나는 변덕스럽다.
이젠 이런 변덕이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