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열을 찾았을 때, 비로소 진정한 안정을 느꼈다

단상#17. 완벽한 가족이 아니라는 안도감.

by 우란

단상#17. 균열을 찾았을 때 비로소 진정한 안정을 느꼈다



가족에 대해 남들보다 더한 애정을 갖고 있단 사실을 처음 느낀 건 대학교 1학년 첫 학기 방학을 앞둔 때였다.
가족에 과도하게 집착한다는 눈초리를 친한 친구에게서 느꼈을 때. 첫 번째 든 감정은 당황스러움이었다. 나의 가족이 다른 친구들의 가족이란 형태보다 더 끈끈하고 정밀하게 묶여 있음을 어렴풋이 피부로 느끼고 있을 때였기에 더 당황스러웠다. 내가 갖고 있는 가족이 마치 비정상처럼 느껴졌으니까.

사실 그 친구의 가족은 한없이 불안정했다. 적어도 가족끼리 쌍욕을 하며 싸우는 건 내가 본 가족이 내뿜는 '안정성'과 전혀 부합하지 않았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꼭 가족이 생각나 한 상자 더 사가는 마음도, 양말 한 켤레를 살 때 동생이 생각나 5켤레를 더 사는 마음도 '오버'라 단정해버린 그 눈빛은 황당했고, 어이가 없었다.

가족의 일은 곧 나의 일이라 여겼던 믿음이 견고할수록 더 했다.


통학버스를 타러 가는 길이었다.
남동생이 축구를 하다 공에 얼굴을 맞아 눈꺼풀 위가 찢어졌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학교 운동장에서 엄마의 떨리는 목소리를 듣고 곧장 택시비 3만 원을 들여 동생의 학교로 뛰어갔다. 점심, 저녁으로 김밥 1,500원과 1,700원 사이를 고민하던 내가 3만 원을 그냥 지출한 순간,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고 그녀는 항변했지만, 나는 친구가 어디서 놀랐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실수로 동생에게 공을 찬 아이를 향해 내가 운동장 계단에 올라선 채로 한바탕 욕을 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동생은 피를 많이 흘리고도, 몇 바늘의 위력으로 금세 괜찮아졌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 나는 내가 속한 가족의 의미를 조금씩 다른 측면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내가 가진 가족의 형태가 많이 과한가?


나는 대학교를 진학하기 전까지 집안일을 해본 적이 없었다. 시골에서 2남 2녀를 키운 외할머니는 큰딸인 엄마에게 시집을 가기 전까지 단 한 번도 집안일은 물론이고 농사일을 손에 쥐여준 적이 없었고, 나 역시 그녀의 가르침을 물려받은 엄마의 품 안에서 똑같이 컸다. 그러니 우리의 세계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어차피 크다 보면 알아서 배우고, 또 습득하며 하는 것이 바로 집안일이었으니까.


그러나 이런 나의 당연함은 일찍이 빨래와 설거지를 하던 친구들에겐 크나큰 쇼크였다. 단번에 나는 동기들 사이에서 '좀 사는 애'로 소문이 났다. 겨우 밥통에 쌀을 한 번도 씻어본 적 없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쓴 물을 올라오게 하는 껌으로 여겨진 순간, 나는 쉽게 시기 질투를 당했다. 자신과 다르게 자라왔다는 이유로 술을 못 마시는 것도, 노래방을 싫어하는 것도, 새벽까지 술집에서 노는 것도 싫어하는 나는 별난 동기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시작이 겨우 밥통이었다니. 지금 생각해도 참 얘 같지 않은가.


뭐, 아무 생각 없이 가정환경을 말한 나의 탓이라 생각했다. 그 이상은 의미 없었다. 내가 잘못 살고 있다는 미친 망상을 할 필요 없단 사실만큼은 똑 부러지게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점차 그들이 정말 부러움을 담고 말을 함부로 뱉고 있단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친구는 되려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더는 꺼내지 않았다. 이유는 딱 하나였다.

"나는 너처럼 가족 안에서 큰딸로서 책임과 헌신을 다 하지 않아. 사실 난 그러고 싶지도 않거든."


그녀의 말이 나에게 위안을 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미 난 수많은 가족의 형태를 간접 경험하면서, 내 가족에 대해 불안감을 떨쳐 낼 수 없었는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부모님께 싫은 소리 한 번 들어본 적이 없었고, 내가 욕심을 내어 동생보다 더 좋은 것을 갖고 싶다 말한 적도 없었다. 항상 엄마와 하던 일을 갑자기 혼자 해야 하는 상황이 빈번해질수록 두려움은 점점 커져갔고, 친구들과 밥을 먹으며 시답지 않은 대화를 할 때마다 '넌 운 좋을 줄 알아. 그런 부모님 있어서.'란 소리를 들어야만 끝이 나는 반복도 어떻게 해야 할 줄 몰랐다. 질투와 부러움과 동경이 느껴질수록 유난 떨고 있다는 마음의 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남들이 말하고 내가 자부했던 완벽한 내 가족에게서 균열을 찾고 싶었다. 세상에 완벽한 인간이 없듯이, 완벽한 가족도 존재할 수 없었으니까. 완벽하다 칭할수록 불안했고, 그 점은 계속 나를 갉아먹었다.

완벽한 느낌도 너무나 좋았지만, 나는 눈에 보이는 상처들이 많이 필요했다.

다른 친구들처럼.


그리고 참 다행스럽게도 점차 두 눈에 엄마의 미소가 아닌 한숨이, 아빠의 알통이 아닌 발톱 빠진 발가락이 보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언성을 높이며 아빠가 형제들끼리 싸우는 모습과 아무것도 아닌 일로 서로 마음을 할퀴는 외할머니와 엄마가 눈에 들어왔다. 중요한 순간마다 뺀질거리는 큰아빠 가족과 아무 관심 없는 고모 가족이 눈에 거슬리고, 인성이라곤 내다 버린 사촌들의 안하무인 태도도 모두 한 번에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모든 것들을 그저 인내하는 동시에 무시하는 부모님까지도 전부다 말이다.


그런 모든 균열들이 보인다는 사실을 인지한 순간, 나는 집안일을 하고 있었다. 장학금을 타기 위해 매 학기 죽어라 공부했고, 좋은 딸이 되기 위해 연기가 필요하면 언제든 표정을 숨기고 또 드러냈다.
아이러니하게도 난 그게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다른 이와 다를 바 없다는 평범함도 좋았다.
오히려 평범함이 특별하게 보였으니까.

남들과 다른 가족이라 불안했던 것이 아니었

다. 나와 같은 가족도 분명 존재하고 있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내가 원한 균열은 곧 파괴를 위한 무수한 틈이 아니었다.

더 견고하게 메울 수 있는 틈, 언제든 함께 재조립할 수 있는 조각들이었다.

전혀 다른 두 남녀가 만나 하나의 가정을 만들어내는 것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 일인지 알면 알수록, 끝없이 그 발판 위에 서 있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어른이 되면 될수록 발판은 함께 지탱해야하는 것까지.

자연스럽게 '철듦'은 직접 보고 느끼는 기회를 주었고, 다행스럽게도 난 천천히 그 길을 걸어왔다. 알아서 잘 클 거란 외할머니의 말도 나중엔 큰 힘이 되었다. 나의 가족 울타리 안에서 '나만의 속도'로 성장하고 있단 확신을 갖게 되었을 때, 대학생활이 끝났다. 참 값진 시간이었고, 참 좋은 고뇌였다.

이후 더는 가족에 대해 완벽해서 불안하다 말하지 않는다.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은 과도기에 놓였을 때 많이 했다고 자부하니까. 사실 그만큼 의미부여할 것도 없다 이제는.

상엔 수많은 가족의 형태가 존재하며, 제각기 형성한 규칙과 사랑이 한 사람의 인격을 만들어 타인으로서 내 앞에 서 있게 한다. 나 역시 그렇게 자라서 누군가의 앞에 섰고 또 앞으로도 설 예정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가족 안에서 얼마나 많은 사랑과 지지를 받고 있느냐가 아닐까. 나는 그 부분에서 부족함 없이 자란 금수저다. 그리고 단언컨대 그런 금수저는 세상에 차고 넘칠 것이다. 친구가 졸업하고 나서야 자신의 가족 얘기를 꺼냈을 때, 나는 그녀 역시 금수저로 자라왔음을 느꼈다.


눈에 보이는 상처를 보듬는 마음을 갖게 되었을 때, 그런 균열을 찾았을 때 비로소 나는 완벽한 안정감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 점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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