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조각 케이크였다

단상 #19 그 말은 분명 돌고 돌아 나에게 당도할 것이다.

by 우란


단상#19 시작은 조각 케이크였다


생일엔 미역국, 설날엔 떡국, 각종 행사엔 케이크 촛불 끄기와 꽃다발 증정식.

그 밖의 특별한 날을 더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드는 관습이 기념일을 매년 지속시키는 데 엄청난 영향력을 주고 있음을 모르는 이는 없겠지.
정해진 날과, 약속된 행동이 만나는 것.
세상에 이만큼 쉽고 당연한 명제가 있을까?


하지만 우리집은 좀 다르다.

친한 선배의 집에 놀러 가 저녁밥을 얻어먹은 날에 있었던 일이다.
'남의 집에 갈 때는 절대 빈손으로 가면 안 된다.'란 부모님의 가르침을 가슴 깊이 새기며 살고 있었기에, 난 디저트로 먹을 케이크를 준비해 갔다. 소소한 파티 음식도 함께 준비하겠다는 선배의 말에 제일 좋아하는 제과점에서 케이크를 주문했고, 당당하게 양 손 무겁게 그녀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는 집들이 겸 저녁 식사 모임을 주최했던 것 같다. 함께 초대받은 일행들이 들고 온 두루마리 휴지들이 막 선배의 집에 도착한 내 눈에만 보이지 않았던 거였다.
하지만 나에겐 맛있는 케이크를 맛 보여주고 싶은 목적이 있었다. 또 누구나 파티엔 사진 찍기 용으로도 케이크를 테이블에 올려놓지 않는가? 하여 고민도 하지 않고 딸기가 잔뜩 든 케이크를 들고 갔을 뿐이었다.

그런데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선배의 당황스러운 눈빛은 먼저 도착한 다른 일행들의 눈빛과 똑같았다.

"아, 진실이는 케이크를 자주 먹는구나...?"

그때 알았어야 했는데, 눈치를 챘었어야 했는데...!

그녀는 최대한 돌려서 말을 한 거였는데, 난 그것도 전혀 몰랐다.

"이 케이크, 커피에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지 아세요?"라고 신나게 받아쳤으니까.

그다음 이어지는 대화 속에서도 난 그들이 어색해하는 지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선배가 저녁상이 차려진 한가운데에 머뭇거리며 내가 산 케이크를 올려놓은 다음에야 나는 그들이 당황해한 이유를 알게 됐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소고기 나베와 쌈무로 만든 야채 쌈 한가운데에 새빨간 딸기 케이크가 떡하니 놓여있었다. 심지어 메인 요리는 멸치 국수였다!
나는 그제야 상황을 정확히 인지했다. 인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 요상한 조합의 저녁상이 눈 앞에 떡하니 있는데 어떻게 모를 수 있을까!

그리고, 저녁을 먹고 상을 다 치운 다음에, 케이크를 꺼내면 된다는 걸 정말 선배가 몰랐겠는가.


선배는 내 눈치를 보며, 꾹 참아왔던 속내를 털어놓았다.

"우린 케이크를 생일날에만 먹어서... 뭐 조각 케이크는 먹어도 케이크 한 판은 사실 처음이라..."

난 최대한 웃으며 말했다.

"저녁 먹고 다 먹으면 되죠! 케이크가 맛있어서~ 같이 먹고 싶어서 사 왔어요."

하지만 나의 속 마음은 전혀 다른 얘기를 하고 있었다.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든 주인공이 되었다는 억울함보다도, 케이크를 생일이 아닌 날에 먹는 게 이상하다는 인식을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케이크 한 판을 성인 4명이서 못 먹는다는 게 말이 돼? 요즘 조각 케이크가 얼마나 비싼데, 그럴 바에 한 판을 사서 먹는데 훨씬 경제적이지 않나? 물론 케이크 한 판을 살 때마다 항상 초 몇 개가 필요하냐는 질문이 이러한 인식을 당연하게 만드는 데 일조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케이크를 꼭 중요한 날에만 먹어야 해? 그럼, 짜장면은! 이사할 때와 졸업할 때만 먹어야지! 맞잖아!'


몰론 이해심과 배려심이 많은 지인들이라 충분히 즐겁게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왔다. 하지만 그날 잠드는 내내 찝찝했다. 그리고 마침내 난 그 선배 말고도 다른 사람들에게 비슷한 말을 몇 번이나 들었음을 기억해냈다. 발단은 미역국과 떡국, 그리고 꽃이었다.

우리집의 ‘미역국’은 ‘아내가 남편을 두고 여행을 가기 전 끓여놓는 곰국’과 같다. 물론 소고기를 미역과 같은 양으로 잔뜩 넣고 끓인 미역국이기에 외로움에 사무친 곰국과는 엄연히 다르다. 무엇보다도 엄마가 제일 자신 있는 국이 바로 미역국일 뿐이다.


우리집 ‘떡국’은 집에 먹을 반찬이 없고, 엄마가 밥을 하기 너무 싫은 날에 종종 만나는 음식이다. 남들은 설날에 수많은 의미를 두고 먹지만, 우린 굳이 그럴 필요성을 느낀 적이 없다. 이번 설날에는 떡국을 먹지도 않았으니까. 저녁이 떡국이면 가족 모두 엄마가 오늘은 만사가 귀찮은 날이니 그릇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아야 한다는 것만 알고 있으면 된다.


우리집의 '꽃'은 곧 사랑이자 위로의 선물이다. 첫 번째 우린 엄마를 위해 꽃을 산다. 퇴근길에, 놀러 나갔다가 집에 들어가는 길에, 장을 보는 와중에도, 회사 점심시간을 쪼개서라도 들리는 곳이 꽃집이다. 우리 가족은 꽃을 사는 데 익숙하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선물이니까. 따라서 우리집 꽃병엔 물이 마를 날이 없다. 두 번째 이 영향으로 난 '꽃을 사는 행위' 자체를 좋아한다. 지친 나를 위해서도 사고, 가끔 힘들어하는 동료들에게 꽃 한 송이씩 선물한다. 때론 말보다 행동이 더 큰 위로와 행복을 준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런 내 마음과 그런 나를 지켜본 사람들의 마음은 좀 달랐다. 아니 좀 이상하게 바라봤다.

"그럼 생일에 미역국 안 먹어요? 지겨워서? 시험 보는 날엔 먹어요?"
"떡국이 그렇게 맛있나? 나이 먹는 게 뭐가 좋다고..."
"고맙긴 한데, 꽃을 참 좋아하나 봐요."
"무슨 날이에요? 남친?"


그리고 언제나 "좀 특이하네요."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나만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쯤, 누군가 나서서 "나도 케이크 한 판 사서 저녁마다 커피랑 마시는데!"라고 말해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참 신기하게도 그런 조력자는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었다.

일상을 침해받는 엄청난 비극은 아니지만, 매번 이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 한편이 씁쓸하다.


"아 당신은 그렇군요?"란 말이 그렇게 어려운 말이었을까.

결국 난 선배에게 이 한 마디를 듣고 싶었다. 그 말에 담긴 따뜻한 이해와 배려를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 역시 그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이 말을 꺼내 본 적이 없었다. 사소한 사건에서 시작되었지만, 나조차도 괜한 자존심과 멋쩍음에 그 말을 가슴속 깊이 잠가놓고 다니기만 했던 것이다.

깨닫고 나니 '그럴 수 있지.'라고 듣고 싶었던 마음이 쏙 들어갔다.

어렵지 않은 말인데, 말을 꺼낼 용기만 있으면 될 일인데.

그날 이후부터 난 내가 먼저 '당신을 이해한다'는 말을 하려 노력한다.

엄밀히 말하면 연습 중이다. 시작이 반이라고, 그들의 입장에서 '조금은 신기할 것 같다'고 미리 생각하면 쉽다. 가끔은 반대로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나의 즐거운 행동을 아주 상세하게 설명하기도 한다. 말이 그렇지, 어디 떡국과 미역국, 케이크, 꽃뿐이겠는가?


'이 세상에 나와 같은 사람은 없다'는 것부터 인정하면 된다.

그리고 암묵적으로 행해온 그들의 당연한 공식을 난 언제든 실행할 수 있고, 나아가 내가 더 즐겁게 실천한다고 자부하면 된다. 나는, 우리 가족은 시도 때도 없이 기념일을 만들고, 새롭게 기억할 수 있는, 재미난 일상을 살고 있을 뿐이다. 다른 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사는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난 믿는다.
그 말은 분명 돌고 돌아 나에게 당도할 것이다.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어렵지만, 이해받고자 하는 마음 하나쯤은 모두 갖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