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내가 무엇을 했는지 알고자 호랑이굴로 들어갔다
드레스메이커 The Dressmaker (2015)
오스트레일리아 | 드라마 | 2016.02.11 개봉 | 15세이상관람가 | 118분
감독: 조슬린 무어하우스
내가 바로 미친 몰리의 딸, <드레스메이커>
어린 시절, 나는 이유 없이 친구들에게 맞았다. 그들과 놀고 싶어 수없이 다가갔지만, 결과는 매번 똑같았다. 그들은 내 이름 앞에 '거지'를 붙여 '거지 더니지'라 불렀고, 틈만 나면 나를 걷어차느라 바빴다. 학교에 딸려있는 공터에서 내게 허용된 공간은 없었다. 그렇게 난 내 유년시절 전부를 보낼 줄 알았다. 맞고 또 따돌림당해도 그들에게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들은 완벽한 하나였고, 나는 혼자였다. 엄마, 그녀와 나와 같았다. 엄마와 마을 사람들의 관계는 나와 친구들의 관계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쉬웠다. 매일 두려움 가득한 얼굴로, 화난 얼굴로 그 마을에서 엄마와 난 살아남아야 했다.
살인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나는 나를 괴롭히던 동급생이 죽을 때 함께 있었다는 이유로 살인자로 몰렸다. 작은 마을 던가타에서 시장의 아들이 목이 부러져 죽은 사건. 나는 그의 죽였다는 이유로 엄마와 생이별을 했다. 그러나 난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
도저히 기억나지 않는 그날의 진실. 정말 내가 죽였을까. 그래서 내가 저주받은 걸까.
던가타를 떠난 이후 내가 가보지 않은 나라가 없었다. 이리저리 떠돌며 생활했다. 어린 시절부터 엄마에게 배운 바느질이 유일한 장기였기에 드레스 메이커로 최고의 반열에 올라서는 건 어렵지 않았다. 살아남기 위해선 뭐든 할 수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내겐 성공해야만 할 이유가 있었다. 반드시 해결할 일이 있었다.
나는 그날의 진실을 전혀 모른다.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래서 더욱 알아야 한다. 내가 정말 살인자 인지.
<드레스메이커>를 봐야 할 이유는 단 두 가지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단번에 눈을 사로잡는 드레스와 군중을 압도하는 틸리(케이트 윈슬렛)의 아우라.
굳이 한 가지 이유를 더 덧붙인다면, 작고 한정된 장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영화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 될까 싶다.
황폐한 사막 위에 작은 집들이 모여 사는 던가타. 명색이 한 지역으로서 역 호텔이 있지만, 누가 봐도 판자촌 같다. 이 마을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적 매개체가 되는 까닭은 마을 주민이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적고, 폐쇄성이 짙은 아담한 마을이기 때문이다. 한 집에서 부부싸움을 하면, 1시간도 되지 않아 마을 전체에 그 부부싸움 시나리오가 열 편 이상 신랄하게 찍혀 나오는 게 일상인 마을이란 것이다. 즉, <드레스메이커>에서 가장 중요한 살인사건이 작은 마을 던가타가 아니면 안 되는 것이다.
던가타에서 수십 년 전에 일어난 살인사건이 이 영화의 시작과 끝을 동시에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드레스 메이커>는 이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고'가 마을 사람들로 인해 어떻게 '살인자가 있는 살인사건'으로 바뀌어 오랜 시간 통용되었는지, 이를 얼마나 당연한 진실로 매도하며 살아갔는지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따라사 보는 내내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지?'란 의문이 들다가도, 이내 자신도 모르게 소름이 돋는다. 단순히 범인을 찾아 복수를 성공시키는 이상적인 명제가 이 영화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 그 일부만을 보기 위해, 미친 몰리의 딸 틸리에게 화려하고 아름다운 새빨간 드레스를 입혔을까? 결코 안될 말이다.
틸리는 드레스 메이커로 성공한 후, 엄마를 보기 위해 고향(던가타)로 향한다. 그런데 던가타에 도착한 그녀의 표정이 심상치 않은데, 거기에 엄마가 사는 집은 사람이 살지 않은 폐가와 다름없다. 쥐와 함께 살고 있는 엄마(몰리)는 미친년을 틸리가 떠난 후로 지금까지 연기 중었고, 찾아온 틸리에게도 똑같은 행동으로 일관한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언덕 위에 있는 몰리의 집에서 피운 연기를 보고 몰려든다.
"죽은 몰리네 집에 산 사람이 있어요, 불을 피우고 있잖아요!"
틸리는 엄마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정말 자신이 살인자냐고 묻는다. 그런데 그 이후 모녀의 대화가 흥미롭다. 아니 이미 사건의 진실은 다 나온 셈이다. 명확한 진실이라고 누가 인정만 해주지 않을 뿐이다.
몰리는 살인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틸리에게 단호하게 말한다.
"살인은 잊을 법한 일이 아니야." 그리고 그녀의 말은 명백한 진실이었다.
물론 나 역시 영화를 다 본 후에야 완벽한 진실이라 믿었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이미 영화는 진실을 진작에 알려줬다. 진실도 영화가 끝날 때까지는 끊임없이 의심할 거란 관객의 특성을 잘 알고, 마을 사람들의 인식 속에 있는 '미친 몰리'와 '살인자 틸리'를 미리 보여준 후 모녀의 대화 속에 교묘하게 노출한 것이다. 다수에게 비정상적인 사람이라 정의 내려진 이들의 입에서 나온 말에 진실이란 보이지 않는 법이니까.
이제 영화의 성공은 주인공 틸리조차도 기억하지 못한 그날의 진실을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 것인 가에 달려있다.
<드레스메이커>는 한 장면, 장면 전부 인상적이다. 인물이 정확히 어떤 부류의 인간인지를 10개의 씬을 활용하지 않고도 아주 간결하고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틸리가 아침 일찍 골프채로 공을 저 멀리 마을로 날리는 장면은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할 명장면이다. 틸리의 관점에서 소개하는 마을 사람들 개개인의 모습은 그녀의 아픈 과거의 기억으로 뭉쳐있다. 그러나 우린 그녀의 이야기를 편견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마을 사람 모두가 그녀를 살인자라고 하는데, 믿지 않는 것이다. 틸리의 아침 라운딩은 그들의 진면목을 모두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클립'으로 관객에게 인식된다. 틸리에게 행했던 그들의 과거의 행동이 성인이 된 그녀의 입을 통해 교차되며 표현되고, 동시에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전혀 변하지 않은 그들의 일상적인 태도가 이를 증명한다.
자신이 왕따를 당할 수 없어 틸리를 희생양으로 삼은 친구 거투르트, 여성의 옷에 깊이 심취한 나머지 이를 퍼트리겠다는 시장의 협박에 경찰임에도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길 포기했던 패럿, 시장 권력으로 마을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막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시장 페티슨, 25년 전에 아들을 잃고 결벽증에 걸린 그의 부인 마리골드, 틸리와 몰리를 사생아와 매춘부 취급한 의사, 그리고 당연하게 거짓을 믿는 마을 사람들.
틸리는 자신의 무기로 마을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단번에 마을 남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그녀의 드레스. 아름답다 못해 황홀한 환상을 시골 처녀들에게 심어준 틸리는 자연스럽게 던가타의 없어선 안 될 인물이 된다. 모두 그녀가 시장 아들을 죽인 살인자라고 믿으면서, 돈을 들고 미친 몰리의 문 앞에 줄을 서기 시작한 것이다.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 아니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맹렬한 욕구가 틸리에게 살인사건의 증거를 수집할 수 있는 최적의 발판이 되었고, 그녀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자신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그날의 기억. 시장의 아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도망쳤던 날에 틸리의 앞에 벌어진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선생님. 그녀는 처음부터 틸리를 괄시했고 무시했으며 때리기에 급급했었다. 틸리는 패럿의 취향을 간파하고 그를 통해 사건의 진술서를 받는다. 유일한 목격자가 증언한 내용은 틸리가 어떻게 시장의 아들을 죽였는 가였다. 그러나 틸리는 진술서를 읽으면서도 믿을 수가 없다.
진실이 아니니까.
유일하게 자신의 편이 돼주는 테디와 사랑에 빠지지만, 그것도 마음 편할 날이 없다. 틸리는 이미 자신의 저주를 스스로 믿으며 살아왔고, 그에 순응하면서 끊임없이 괴로워했다. 자신이 저주받았기에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없다는 얼어붙은 마음을 깨트릴 수 있는 사람은 지금까지 없었으니까. 그러니 이제 틸리에겐 테디와 미친 척하는 어머니가 있다. 틸리는 점점 진실에 가까워진다. 마침내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 <드레스메이커> 틸리에게 또 다른 비극을 선물한다. 단순히 과거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틸리를 그 오랜 시간 홀로 두었을까. 그녀는 태풍처럼 밀고 들어오는 사건에 흔들린다. 다시 또 주저앉으려 한다. 고통스러워서.
그러나 우린 알고 있다. 그 누구도 틸리의 드레스를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마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콱 박힌 틸리의 드레스와 엄마의 처음이자 마지막 선물.
틸리는 던가타에 왜 온 것일까. 이제 살인사건의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던가타'에서 일어난 사건이란 게 중요하다.
언덕 위에 사는 몰리를 '죽은 몰리'로 무시하며 살았던 그들의 전통이 산산조각 나야 할 이유를 굳이 찾아야 할까? 시장과 몰리, 그리고 틸리를 둘러싼 새로운 비밀도 그냥 넘길 수 없다.
틸리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다음 스텝이 무엇인지 정확히 안다. 개인의 복수를 넘어선 더 큰 무언가를 해낼 참이다. 그녀에겐 그 일이 이제 더는 어렵지 않다. 복수로 치부될 수 없을 정도의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자격이 충분하니까. 외부와 모든 요인을 차단하며 사는 던가타에 사는 폭력과 은폐에 익숙한 수동적이며 비윤리적인 이들에게 던지는 가장 정확하고 명확한 처벌이 틸리의 손에서 이뤄질 일만 남았다.
다른 건 몰라도 틸리의 마지막 말은 반드시 들어야 한다.
그녀의 그 마지막 한 마디가 이 영화의 대미를 장식한다.
틸리의 옷을 의심하지 않았던 것처럼, <드레스 메이커> 역시 단순 복수극이 아니다.
그녀는 복수에 눈이 먼 주인공이 아니다. 복수조차 생각할 수 없는 상처에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호랑이 굴에 들어간 어린 양이다. 이 어린 양이 어떻게 재봉틀만으로 던가타 전체를 휘어잡고 단죄하는지 궁금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