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이 뒤바뀌는 건 시간 문제,
<악어의 거리>

'퀘이 형제: 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 전시회 <악어의 거리> 후기

by 우란

<악어의 거리> Street Of Crocodiles (1986)

감독: 스티븐 퀘이, 티모시 퀘이

출처: 전주국제영화제 홈페이지(해당전시회안내사이트) http://www.jiff.or.kr/event/brother.asp

'퀘이 형제: 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 전시회 <악어의 거리>관련 작품

1. <악어의 거리> 속 의상실


전시회 입구를 들어가면, 바로 처음 만나는 작품이 바로 영화 <악어의 거리> 속 촬영장(세트)이자 퀘이형제가 창조한 인형의 집(공간, 방)이다. 시작은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공식 포스터와 특별전시회 도록에 활용된 '의상실'이다. 사진을 보면 정말 크고 거대하게 느껴지지만, 직접 눈으로 보면 작은 공간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괴함이 느껴진다. 테이블 위에 꽂혀있는 바늘 하나 하나를 집중해서 보게 되고, 인형들의 뚫린 눈들과 텅빈 머리를 보는 것도 허투루 지나칠 수가 없다. 그들이 그런 모습을 한 이유가 무척이나 궁금하기 때문이다.

퀘이 형제 감독에 대해 아는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도 그들이 얼마나 세밀하면서 창조적인 작업을 했는지가 보이는 신기한 경험이랄까.
실제로 전시회 내내 관람객은 그들의 작고 정형화된 세트장(작품)을 거대한 거인이 되어 얼굴을 이리저리 들이밀고 봐야한다. 그렇게 보지 않으면 퀘이 형제가 만든 세계에 들어갈 수가 없다.

초대장을 공짜로 준 이유가 분명 있던 거다.


# 애니메이션 <악어의 거리>

<악어의 거리>는 폴란드 작가 브루노 슐츠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20분 가량의 애니메이션으로 짧은 단편이지만, 실제 체감은 한 시간 정도다. 전시회 초입에 마련된 별도의 공간에서 이 영화를 무료로 볼 수 있는데, 꼭 보는 걸 추천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애니메이션을 보고 나오는 순간, 앞으로 펼쳐질 전시회의 주제가 단번에 머릿속에 정립된다. 그들이 구현해 보여주고 싶었던 시간의 허무와 실패, 나아가 죽음과 탄생이 주는 외로움과 무력감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 시작, 큐레이터의 침

영화는 박물관 큐레이터가 작은 인형 집 안에 침 한 방울을 떨어트리면서 시작된다. 그 속에서 신체가 줄에 묶인 채 잠을 자던 인형, 재단사는 큐레이터의 침으로 자유를 얻게 된다. 이후부터 재단사에게 일어나는 모든 과정은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의 연속으로 발생한다. 애니메이션에 빠져드는 내내 물론 난 미친듯이 질문했지만, 명쾌한 답은 단 하나도 얻지 못했다. 애초에 그런 질문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이 사건이 왜 이렇게 이어지지?'란 질문이 나오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곳이 바로 '악어의 거리'였음을 깨달은 것도 한참 뒤의 일이었다.) 난 그저 재단사의 꿈인지 환상인지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는 삶을 보는 방관자였을 뿐이었다.
감정이입이 참 잘되는 방관자. 주인공이 바뀌는 건 시간 문제였다.

큐레이터의 침으로 인해 움직일 수 있었던 재단사의 운명은 기구하다.
그의 공간이 음침하게만 보이는 이유는 재단사의 자유가 권력자, 지배자의 침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형제 감독이 말한 현대사회의 어둠이 이런 느낌이란 점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재단사가 활동할 공간 역시 지배자의 장난감 성일 뿐이지 않은가. 영화 <트루먼 쇼>가 떠오르기도 한 장면이었다.

단사의 목적은 무엇일까. 자유? 최고의 재단사가 되는 것? 현실로부터의 도피?


난 자유를 택했다. 상자 속에 갇힌 인형이라면 응당 바깥세계로 탈출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지 않은가.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그들이 표현한 주된 세계가 대도시가 주는 패배주의와 무력감, 죽음에 대한 공포과 허무감이라 말하는 작품설명서를 봤음에도, 재단사의 다급한 뜀박질에서 느꼈던 것은 오로지 완벽한 탈출, 자유였다.


# 지하세계 '악어의 거리'에 흐르는 시간
[2. <악어의 거리> 속 악어의 거리]

신체의 자유를 얻은 재단사는 끊임없이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찾는다. 마치 그것을 찾아야만 하는 중요한 목적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마침내 건물 뒤로 떠 있는 '물체'를 보고 손을 뻗지만 닿지 않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매듭이 진 실과 그 실을 연결하고 있는 장치를 보게 된다. 바로 지하세계로 향하는 문이자 통로.

단사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 물체는 무엇이었을까. 전시회를 보면서 <악어의 거리> 속 '의상실'로 향하는 '악어의 거리' 작품(세트)에 얼굴을 가까이 들이민 이유도 바로 이 '물체' 때문이었다. 물체의 정체는 팔꿈치까지 오는 긴 흰 장갑. (아, 그의 목적은 마법 장갑으로 세계 최고의 단사가 되는 것인가?)

하지만 재단사가 묶인 실을 풀려하는 순간 시간이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땅 속에 박혀 있던 나사들이 저절로 풀려 나오는 장면을 시작으로 시간은 과거를 향해 빠르게 흐른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면 그가 언제 지하세계로 가서 미스터리한 사건을 겪었는지 전혀 가늠할 수가 없다. 과거인지, 현재인지, 미래인지 알 수가 없다. 인간이 유일하게 정복할 수 없는 '시간'의 횡포가 가여운 인형 단사에게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순간들을 우린 끊임없이 봐야하는 것이다. 언제 끝이 날지, 또 어떻게 시작되는지도 모른 채.

큐레이터의 침 한 방울이 불러온 기분 더럽고 찝찝한 파장 그대로 지하세계가 만들어진게 틀림없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 다른 점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만 빼고 말이다.


# '의상실' 속 재단사의 세계

지하세계로 들어간 재단사. 그런데 그 공간에는 다른 이들이 살고 있었다. 제일 먼저 등장한 아기 인형. 혼자 놀고 있던 아기는 재단사를 발견하자 거울로 빛을 반사시켜 그를 유인한다. 재단사는 짜여진 각본 그대로 의상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제부터 그에게 벌어지는 일들은 전부 '계획된 일'이다. 머리가 없는 마네킹들이 제단사를 반기고, 숨어버린 아기 대신 상체는 사람, 하체는 서랍인 인형들이 등장한다. 시간은 여전히 자기 마음대로 흐르는데, 재단사는 나사가 조이고 풀리는 걸 반복하는 동안 무엇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는 세계를 탐구한다.


재단사를 환영하는 인형들, 그들은 가위와 바늘로 그에게 직접 옷을 지어준다. 심지어 머리를 쑥 뽑아 자신들과 같은 인형 머리(눈이 뚫려있고 머리는 텅 비고, 그 안에 하얀 실들이 뭉쳐있는)를 마치 새로운 의상의 악세사리처럼 재단사의 얼굴로 만든다. 재단사를 위해 동물의 생간(정확하진 않지만 핏빛 살점은 확실하다) 위에 천을 덧대면서 옷 만들이게 열을 올린다. 그 생간의 주인은 재단사가 분명하다.

재단사는 허무감과 패배감에 유일한 '생'을 빼앗겨 기계로 숨을 쉬는 인형들에게 마음대로 조작당하는 동시에, 직접 자기의 '삶의 의지'를 내놓고 기괴한 상상 속에 빠져 있는 주인공이란 얘기다.
그가 인형사들에게서 도망쳐 의상실을 돌아다니는 행위 자체에도 혼란과 혼돈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가 그 공간에 갇힌 것인지, 아님 갇히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마치 현실을 살아가는 데 순간적으로 마음과 신체의 제동을 경험하는 우리처럼 말이다.
아기 인형은 혼란스러워 하는 재단사를 보며 슬픔을 느낀다. 마치 자신이 의도한 건 비극이 아니였다는 것처럼. 이미 만들어진 공간에서 정해진 이야기가 흘러가는 게 얼마나 소름끼치는 지 모른다.

이후 재단사는 다시 지하세계로 향하는 문 앞에 서 있게 된다.
의상실에서 있었던 일이 전부 꿈었는지 현실이었는지 데자뷔였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또다시 매듭이 묶여진 실을 보고 만다. 이 얼마나 기구한 운명인가. 그는 또 그 매듭을 풀려고 손을 갖다 댈 것이고, 마치 처음 지하세계를 발견한 것처럼 악어의 거리를 배회할 것이다. 자신이 무슨 행위를 하고 있는지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말이다.
나사로 움직이는 인형들과 다를 바없는 존재임을 스스로 반복하며 같은 기계적 인간이 되어버리고 말겠지.

아, 그는 원래 인형이었지. 하지만 분명 그는 인간이었다.

햇볕이 전혀 들지 않는 공간에. 이미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채 자유를 쫓는 인간


# 마무리


이상으로 애니메이션 <악어의 거리>(1986)와 전시회 작품을 함께 관람했던 나의 후기였다.


사실 그들의 영화를 보지 않고 작품만을 봤다면 일차원적인 감정만 느꼈을 것이다.

날것의 감정 속에는 기괴함과 우울함이 가득했다.


그러나 영화와 결합된 순간, '악어의 거리'는 내가 사는 '도시'가 되었다.

재단사는 곧 나였다. 우리로 보여졌다.


끝없는 실패와 좌절이 응집되버린 차가운 도시에 사는 우리.

속절없이 죽음을 향해 흐르는 시간의 잔인함이 더 맹렬하게 다가왔다.

큐레이터의 침방울까지 전부.


정말 힘든 공간에서 우린 참 치열하게만 살고 있었고, 이를 퀘이 형제가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당신의 삶이 이렇게 보인다고..


재단사가 갖고자 했던 장갑은 욕망이었다. 무엇을 위한 욕망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욕망은 곧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가장 자극적인 본능이다. 그가 시간에 굴복해버린 삶이 필연일 수밖에 없는 이유겠지.


난 그 욕망을 자유로 보았다.




ps. 전시회 도록에 실린 '도미도리움 작품 설명'부분에는 재단사를 과대망상증 환자로 설명한다.

재단사는 과대망상증 환자로 숨겨진 비밀스런 방에서 거대한 인형을 만들며 자신만의 기괴한 세계에 빠져있다
-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특별 전시, 퀘이 형제: 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 도록 2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