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언어에 집중해도 모를.
*이 글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있습니다.
인트로덕션 INTRODUCTION, 2020
한국 / 66분 / 감독: 홍상수
태연한 매듭짓기, <인트로덕션>
영화는 세 개의 이야기로 구분되어 진행된다. 각 이야기마다 인물들의 관계, 주인공의 상황, 시간, 배경이 전부 다르다. 1부, 영호는 아버지(원장)의 호출에 오랜만에 한의원에 방문한다. 간호사와 반갑게 인사하고, 담배를 피우고, 쌍화탕을 마시며 아버지를 기다리지만, 끝내 아버지가 자신을 부른 이유를 듣지 못한다. 서로 어색하기만 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영호는 그동안 아버지가 아닌 간호사에게서 사랑을 느껴왔었다.
2부,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하고 독일로 패션 공부를 하러 간 여자 친구를 만나러 간 영호. 여자 친구는 대책 없이 온 영호에 당황스러워하면서도 사랑하는 그의 얼굴을 직접 만지고 껴안을 수 있다는 것에 행복을 느낀다. 영호는 여자 친구에게 자신도 독일에서 유학을 다니겠다고 약속한다. 처음부터 돈이 없는 어머니는 제외하고, 돈을 밝혔던 아버지에게서 지원을 받을 생각이지만, 그가 정말 유학길에 올랐는지는 알 수 없다. 서로를 안으며 위로와 사랑을 동시에 느끼는 순간에만 집중할 뿐이다.
3부, 시간이 흐른 뒤, 영호는 어머니의 부름으로 바다 앞 횟집에서 대배우를 만난다. 이미 1부, 한의원에서 만난 적이 있던 배우와 진로상담을 목적으로 술을 마시는 영호. 그는 여자 친구를 두고 연기로라도 키스를 할 수 없단 이유로 배우 생활을 접은 상태였다. 대배우는 영호의 말에 흥분해 그를 꾸짖는다. 잘못된 생각은 반드시 고쳐줘야 하는 게 그의 본래의 직업인 것처럼 소리지르기 바쁘다. 일방적인 비난에 영호는 도망치듯 해변으로 나가고, 그곳에서 2부에서 만났던 여자 친구를 다시 만난다. 이젠 전 여자 친구이지만, 영호는 짧은 대화로 그녀가 독일 남자와 이혼했으며, 현재 눈 한쪽이 보이지 않는 병에 걸렸음을 알아차린다. 다 괜찮을 거라고, 본인이 꼭 눈을 다시 보게 해 주겠다고 그녀를 안심시키지만, 한낮 술에 취해 뻗은 남자의 꿈일 뿐이었다. 영호는 술이 깬 뒤 바다에 뛰어들어 그동안 자신을 옥죄어왔던 현실의 고통을 씻어낸다. 그런 그를 안아주는 건, 그와 함께 서울에서 내려온 친구다. 돌고 돌아 친구의 품에서 다시 서울로 향할 힘을 얻는 영호를 끝으로 <인트로덕션>은 끝난다.
<인트로덕션>은 많은 대사량보다 적은 몸의 언어가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는 지극히 사적인데, 여기서 말하는 '사적'은 말 그대로 '관객이 기대하는 영화적'인 말이 '제거'되었단 의미다. 지금 당장이라도 지인을 만나서 할 수 있는 평이한 대화랄까. 인물들의 평범하고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영화의 엄청난 주제와 의미 있는 요소를 발견하는 건, <인트로덕션>엔 적합하지 않다.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도 당당히 사람들 앞에 서는 인물이나 반대로 어울리는 옷을 입고 쭈뼛거리며 서 있는 인물을 단 한 명도 찾을 수 없단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영화에서 우리가 매일 소비하고 다시 찾는, 현실에 있을 법하지만 명확히 현실에서 벗어나 다른 궤도에 위치한 존재는 <인트로덕션>엔 없다.
우린 두 팔을 벌리고, 뚱한 표정으로 진짜 속마음을 내비치고 있는 그들의 언어에 집중해야 한다. 사실상 긴 지루함을 이겨내고 각 에피소드 끝에 등장하는 '포옹'란 몸의 언어를 포착해야 한다. 놓치는 순간, <인트로덕션> 안에서 길을 잃은 채 극장에 불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물론 단서를 찾았다고 해도, 몸이 근질근질거릴 수 있다. 영화가 재미없다고 느끼는 건 한 순간이니까.)
영화는 특정한 공간이나 주요한 사건에서 벗어나 지극히 다를 바 없는 '현실' 속에서 의미 없이 흘러가는 인간의 '현재'를 조명한다. 간호사와의 포옹, 여자 친구와의 포옹, 친구와의 포옹. 세 번의 포옹은 영화 제목 그대로 새로운, 시작, 첫 경험, 첫 관계와 인물들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대변한다. 무엇보다 결말이라 말하기 애매한 순간마다 어김없이 나타나 '포옹'으로 구멍이 송송 뚫린 이야기에 끝이 존재했다는 듯, 태연하게 매듭짓는다.
살면서 접하는 수많은 감정을 누군가에게 안김으로써, 누군가를 안음으로써 숨죽여 해소하는 일. 거짓으로, 진심이 아닌 행위엔 처음부터 비릿하고 고약한 냄새가 난다고 믿는, 그런 고단한 현실이 늘 현재인 사람들을 위해 '자발적 포옹'은 <인트로덕션>에서 반드시 마지막에 삽입되었어야 할 결말이었다.
따라서 관객이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보는' 일이다.
영호의 말과 선택에 의미 부여할 필요가 없다. 분석은 물론 대사를 곱씹으며 음미할 이유도 없다. 줄곧 담배만 피우는 인물들의 이해되질 않는 심리나, 어딘가 미묘하게 딱딱하고 민망한 배우들의 연기도 커다란 알약을 삼키듯 억지로 목구멍을 통과하게 놔둬야 한다. "그런 행위를 가짜로 하는 게 죄스럽게 느껴졌습니다."라고 말했던 영호의 고통스러운 얼굴이 관객에게 그대로 이전되는 순간에도 <인트로덕션>은 눈길조차 주지 않으니까.
<인트로덕션>이란 흑백 깃발을 흔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오색 깃발을 들고 있는 기분이다.
'보는' 일에만 만족할 수 없는 난, 고심 끝에 깃발을 펼쳐 "전 여전히 잘 모르겠어요."라고 적었다. 영화 <그 후> 이후로 홍상수 감독의 작품을 굳이 찾아보지 않은 이유를 소리 내어 밝히지 않는 대신 조용히 흔들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