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찾는 자는 날 사랑하는 사람도, 위한 사람도 아닌 나와 같은 자다.
<로렌스 애니웨이> Laurence Anyways, 2012 제작
캐나다 외 / 로맨스, 멜로 / 15세 이상 관람가 / 168분
감독: 자비에 돌란
정말 자기 멋대로, <로렌스 애니웨이>
로렌스는 생일을 맞이한 순간 연인, 프레드에게 앞으로 남자가 아닌 여자로 살겠다고 선언한다. 프레드는 운명이라고 굳게 믿었던 짝의 고백에 혼란과 배신감을 느끼지만 이를 기꺼이 품기로 한다. 선언과 결정, 연인이 함께 또 따로 만드는 궤적에 늘 주요 꼭짓점으로 등장하는 두 가치는 로맨스 장르 영화에서 뼈대와 같은 역할을 한다. <로렌스 애니웨이>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랑이란 긴 선을 온몸에 감은 채 이리저리 방황하며 예상된 지점에서 격렬하게 부딪혀 서로에게 상흔을 남기면서도 미소를 빼놓지 않는 구조가 영화 전반에 짙게 깔려있다. 하지만 자비에 돌란은 자기만의 내밀하고 사적인 방식으로 사랑을 다르게 보이게 한다.
첫인상은 동물원 앞 가게에서 파는 풍선들이었다. 사자와 원숭이 사이에 천사와 바지와 담배가 낀 거대한 풍선 한 묶음. 전혀 어울리지 않은데 어울리고, 직관적인데 낯설고, 이상한데 맥없이 좋은 그런 느낌. 나에게 로렌스의 이야기는 어떤 풍선이 먼저 팔리느냐에 따라 바뀔 수밖에 없는 길에 놓여있었다. (묘한 미적 쾌감까지 전달하는 아이러니함은 독특함으로 변주되어 시각적‧청각적으로 쉴 틈 없이 휘몰아친다. 단순히 스토리 측면에 한정된 게 아니라 작품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모든 영화 언어가 감각적으로 잘 융합된 결과다.)
그만큼 로렌스와 프레드의 사랑은 변화무쌍하다. 폭주 기관차처럼 달리는 로렌스와 자신의 오색빛깔 날개를 고통스럽게 뜯어내는 프레드의 어리석고 애처로운 몸짓이 계속될 때마다 그들의 사랑은 끊임없이 모양을 바꾸며 요동친다. 상대의 손길에 쉽게 속살을 내보이지만, 결코 가볍게 자신을 소비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과 하고 싶었던 말들을 솎아내지 않고 다 토해내면서 악착같이 끝을 향해 간다. 마치 미래를 알 수 없는 우리처럼 불안에 휩싸인 채 말이다. 어느 순간 로렌스는 사각형 틀에 갇힌 정형화된 인물에게서 벗어나 진짜 로렌스로 우리 앞에 선다. <로렌스 애니웨이>는 그가 유일한 나로서 자기 삶의 무대를 현실로 옮기는 그때, 비로소 안개처럼 흩어져 사라져 버리는 흔한 사랑 이야기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다.
무엇보다 영화 속 모든 장면은 벽에 걸린 그림이다.
내 마음대로, 정말 자기 멋대로 작품을 선택해 시간제한 없이 음미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설렘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