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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란 Nov 29. 2024

물의 말 / 이병률 시인

 물의 말 / 이병률



    새벽 네시나 됐을까

    아마 한가운데로 한 방울 물이 떨어져 잠에서 깬다

    며칠째 계속되는 비 탓에

    기와도 빗물을 다 막아내지는 못하겠나보다

    자리를 옮기고 냄비를 가져다놓으니

    똑 똑

    

    잠들 만하면 떨어지고

    잠들 만하면 떨어지는 빗소리가

    앓는 소리를 낸다

    소리를 줄이려 마른 수건을 가져다 담그자

    냄비 가득 증명할 수 없는 냄새가 나고

    거꾸로 누워 천장에 눈을 맞추니

    꼭 내 얼굴을 닮은 얼굴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한숨 자고 일어나도 여전히 시린 이마

    안 풀리는 일들이 꿈으로 닥쳐온다 했는가


    돌아다보고 돌아다보고 늦게 일어나

    늦은 약속에 나갔다 돌아와도

    여전히 시린 이마

    내가 나에게 뭐라 말을 거느라

    이마 위로 떨어뜨린 그 서느런 최초의 한 방울


  


(주)창비

창비시선 270

이병률 시집,『바람의 사생활』2006

70-71쪽



나는 그래


오늘 내게 가장 괴로운 일은, '물의 말'이다.
일방적이면서도 복잡한 마음이
툭 내놓은 잡념이라 치부하기엔, 
잠을 모조리 빼앗은 것들이다.

꿈은 반대라는 말을 예전엔 믿었다.
믿었다고, 믿었었다고, 
과거형으로 또 사건 소거법으로 빚어 과거라 말하는 연유는
꿈은 반대라는 믿음이 실은 믿음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그렇다. 

계속된 장마에 
한결같이 천장에 달려 있는, 
전등의 형태를 훔친 그것들이
다른 침대 위로 가겠단 여지를 주지 않기에 그러하다.

'시린 이마'는 고통스럽지 않다.
진정 가혹한 건, 길몽도 악몽도 멈추지 않는 일.

다시 눈을 뜬다
어둠 속, 별 하나 없는 밤.
내가 보고 있는 빛은
빛 한 줌 품지 않고도 빛을 내는 것들. 
 
'내가 나에게 뭐라 말을 거느라 
이마 위로 떨어뜨린 그 서느런 최초의 한 방울'

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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