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래
뉴스를 틀어놓고 삶이 만드는 나를 조금 들여다본다
티브이를 보는 일보다 티브이를 듣는 일이 익숙하다는 걸 깨닫는다
내가 삶을 만들고 있는 중이란 사실보다
빠른 인식이라 조금 머뭇거리기도 하고.
'기를 수 없는 것을 기르려면'
도전일까
도전을 부추기는 용기일까
용기를 갖게 하는 두려움?
두려움을 용인하는 마음인가
또 가만히 생각하다 보니
'미래는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는 걸 인정해 버리고
'인간의 체온'을 빌미로 괜찮아, 괜찮아 되뇌고
나는 안전한 사람이 되었다고 말도 해보고
다시, 삶이 만드는 나를 떠올리고.
쫓기고 있는 중이구나 싶을,
그때와 지금, 앞으로의 나를 그려보니
꽤 '이국적인 화면이 방송되고' 있었다.
이것이 낯설음인지 아닌지 아직 판단하진 않았고.
마음의 온도를 높이는 일.
두려움의 층계를 높이는 일.
어떻게든 한 계단 위로 올라가려는 일.
나의 투쟁이라 부르고,
나의 투쟁이라 하고.
이렇게 이어지는 거겠지.
나아간다 반복하면서
계속 같은 그래프를 그리고 또 그리고
나도, 그렇다.
그래도 동시에 그러해서,
어쩔 수 없이 또 당연히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