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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작은 위로 / 이제야 시인

by 우란

가장 작은 위로 / 이제야



걷다 보면 만들어지는 길이 있었다 새겨진다는 것

누구에게 정직하고 싶었던 날에 매일 길을 걸었다

작은 사소함으로 지키고 싶던 날들 마음의 묵묵함으로

애쓰는 만큼 다정해지고 쓸쓸해지는 만큼 깊어진다고

때로는 내가 위로할 수 없는 나의 시간 속에 있다

익숙함이 만들어낸 시간들이 녹아내리는 계절에는

매일 걸어도 한 걸음도 가지 못한 낯선 내가 있었다

가장 뜨거웠던 시간에서 담담한 혼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아주 작은 의자에 앉은 내게 가장 작은 위로를 건네고

무엇이 되고 싶던 시간들은 오후 어디쯤에 걸어두고 걸었다

노래를 불렀다 시간을 엮어서 라임나무에 걸었다

바람도 그리운 쪽으로 분다는 오후의 습관처럼

어린 아이도 사랑을 하면 주름이 생기는 동화를 믿었다

마음을 모음이라고 잘못 쓴 밤이 있었다




문학의전당

시인동네 시인선 205

이제야 시집,『일종의 마음』(초판 1쇄 발행 2023년 5월 29일)

87쪽



나는 그래

요즘 생각,
내가 나를 위해 위로함을 결심하는 일.

결심의 문을 열고, 닫고
계속 조금씩 영역을 넓혀가며
마음을 드나드는 일.

나를 주인공으로 한 위로가 마음 한편에 새겨지고
길이 만들어지고
품이 들 때마다 양쪽에 꽃봉오리가 터지는,
그렇게 안전한 안도와 약간의 기쁨을 누리는 일.

작은 위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했을까 싶은 날들.
얼마나 적은 시간에 매몰됐을까 싶은 날들.

'때로는 내가 위로할 수 없는 나의 시간 속에'서,
나는 그렇게 한참, 또 한참 걷고
'낯선 내가 있'는 길을 걸으며
의연하게 괜찮다 속삭이기 위해

아주 작고
아주 짧고
아주 느린
보폭으로, 걸음으로

세상의 이치에 맞지 않아도
내겐 한없이 유해지는 일들을 믿으며

습관처럼 흙을 다지고
그가 믿는 '동화'를 벗 삼아

'잘못 쓴 밤'도 무탈하게 흘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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