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 / 이제야 시인

by 우란

블랙홀 / 이제야



우리는 사랑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랑하는 것이 사라져갈 때쯤

돌아갈 수 없는 곳에 가려면 다시 사랑하는 방법뿐인데


사랑하고 싶지 않지만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있고


돌아갈 수 없는 곳에 가려면 사랑하지 않는 방법뿐인데


다시 오지 않을 흰 눈을 기다리는 길에 어떤 빛이 쏟아지면

사랑하지 않으려고

사랑하는 것을 세어보는 밤이 된다


다시 사랑하지 않는 때로 돌아가려면 사랑하는 방법뿐


여기까지, 반복될 수 없는 우리를 알아차린 마음의 말에

우리는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한다


돌이키는 모든 것에는 돌아갈 곳이 완전하지 않아서

깨진 창문 위에도 사계절 빛이 돌고 오후가 스민다


사랑하지 않기 위해 사랑하는 방법도 있다



문학의전당

시인동네 시인선 205

이제야 시집,『일종의 마음』(초판 1쇄 발행 2023년 5월 29일)

64-65쪽



나는 그래


문제를 가장 효율적으로, 극단적으로 잊을 수 있는 법을 고민한다.
문제라고 인식하고 인정하는 과정보다
길지만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바라는.

문제의 영역에 대해 고민하기도 한다.
어디까지가 문제이고 또 어디까지가 문제가 아닐까.
나는 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잊으려 하는 걸까. 아, 나에게 잊는 게 해결책인 걸까.

문제를 미워한다.
사랑을 사랑만 할 수 없듯이.

문제란 껍질 속에 숨은 사랑은 더 그렇다.

문제를 너무나 사랑해서
미워하고, 잊고 싶고, 소거하고.

다시 어디까지가 문제인지 생각한다.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일들을 떠올리면서.

사랑은
남에게 모든 걸 내어주고 고작 몸뚱이만 남은 민들레에게도,
이미 떠나왔던 길에 홀로 남겨진 내 발자국에도,
곤한 밤을 기다리다 지쳐 감겨버린 눈꺼풀에도,
불고, 부는 일 말곤 할 줄 아는 게 없는 바람에게도,
이따금 아무 이유 없이 미쳐 날뛰는 마음에도,
붙일 수 있다.

사랑과 문제는 서로를 부정할수록 서로가 같음을 시인하니까.

해서 나는 문제 속에 파묻혀 산다.
숨구멍 하나 뚫기가 얼마나 힘든지 체감하면서,
힘들게 뚫은 구멍 하나가 얼마나 빠르게
상실로 메꿔지는지 확인하면서.

어찌할 수 없는 문제와
어찌해도 결국 사랑인 걸,
'블랙홀'이라 부르는 밤.

'사랑하지 않기 위해 사랑하는 방법'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잊는 법으로
사랑을 끝낼 방법으로 사랑을 시작하는 법으로
계속 끊임없이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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