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쿠스틱 방 / 이제야 시인

by 우란

어쿠스틱 방 / 이제야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방이 있지

가장 큰 방이 있지


얼마나 커질 수 있는지 알 수 없어서 더 사랑해보고 싶기도 했지


바람 부는 언덕에서도 방에 볕을 가득 넣어 화분을 키우듯

모든 계절에도 볕을 줄 수 있는 아무것이 아닌 방이 있지

지팡이를 든 노인이 문을 두드리는 사랑의 신호 같은

누구나 존재가 되는 방이 있지

누구나의 방이 있지


가진 것 없는 누구도 온갖 언어로 노래할 수 있는 의자가 있지


바라본다는 것이 오후를 닮은 일이라는 것을

습도 높은 방에서도 온갖 사계절이 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누구나 지나가는 방이 있지 스칠 뻔한 그들의 귓속말이

기나긴 동화가 되어 그럴듯한 이야기와 그럴 뻔한 마음들로 돌아가는


돌아간다는 것이 일출 일몰 같은 떨림의 끝이라도

한때라는 날에 또다시 누구나의 방으로 들어갈 것임을 알지


내가 누구의 방이 되든 누구의 방으로 가든 찰나라는 시가 된다는


누구에게나 방이 있지 아무나의 방이 되는 누구나의 방들이




문학의전당

시인동네 시인선 205

이제야 시집,『일종의 마음』(초판 1쇄 발행 2023년 5월 29일)

90-91쪽


나는 그래


모두에게 있는 방이지만, '아무나의 방이 되는 누구나의 방들'이지만,
명확하게 하자, 제아무리 누구나의 방이라 할지라도
나의 방을 나의 방이라 할 수 있는 자는 나뿐이다.

어렸을 땐, 나의 방이 있다는 비밀을 만천하에 알리는 동시에
아무도 나의 방 안을 들여다볼 수 없도록 자물쇠를 채웠다.
채웠었고, 나는 이 일에 깊은 흥미와 재미, 불안을 함께 느꼈다.
당시 느낀 모든, 얽히기 쉬운 감정들이 나를 대체로 긍정적인 의미에서
즐겁게 했으므로 친구들은 물론 부모님에게도,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도
그들만의 방이 있고, 나는 궁금하지만 함부로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안도하기도 했다.

모두 같은 방을 갖고 있지만 다 다른 방을 지키고 서 있는
붉은 깃털을 단 투구를 쓴 로마 병사들 같았달까.
왜 로마 병사들을 문 앞에 세웠는지는 모른다.
그냥, 로마 병사들이 서 있었을 뿐.

비밀 안에 든 비밀.
추억 안에 든 추억.
사람과의 기억 안에 든 기억들.
"일종의 마음" 같은 조각들.

시간이 약이 된다는 말처럼 차츰, 결론을 내렸다.
방 안에 뭐가 뭉쳐져 있든, 상관없이 결말은
위로.

이번만큼은 과정보다 결과에 눈을 번쩍 떠야 한달까.
안도만으로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는.

비밀의 방이 만들어지는 과정보다
비밀의 방에서 도출되는 값들을 따져보는 일.
그 값들이 내게 얼마나 가치 있는지,
또 얼마나 가치 없는지 헤아려보는 일.

그런 얽히기 쉬운 것들을 섞어놓고 나면,
가만히 그것들을 방 안에 두고 밖에서 보고 있노라면,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누구에게나 방이 있'고
그 방은 곧 '아무나의 방이 되는 누구나의 방'이란
퍽 다행스러운 진실을.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블랙홀 / 이제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