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지성 시인선 351 ©진은영, 2008,『우리는 매일매일』
가만히 어둠 속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
내가 모르는 일이 흘러와서 내가 아는 일들로 흘러갈 때까지
잠시 떨고 있는 일
나는 잠시 떨고 있을 뿐
물살의 흐름은 바뀌지 않는 일
물속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
푸르던 것이 흘러와서 다시 푸르른 것으로 흘러갈 때까지
잠시 투명해져 나를 비출 뿐
물의 색은 바뀌지 않는 일
(그런 일이 너무 춥고 지루할 때
내 몸에 구멍이 났다고 상상해볼까?)
모르는 일들이 흘러와서 조금씩 젖어드는 일
내 안의 딱딱한 활자들이 젖어가며 점점 부드러워지게
점점 부풀어오르게
잠시 잠처럼 풀리고
집이 집만큼 커지고 바다가 바다처럼 깊어지는 일
내가 모르는 일들이 흘러와서
내 안의 붉은 물감 풀어놓고 흘러가는 일
그 물빛에 나도 잠시 따스해지는
그런 상상 속에서 물속에 있는 걸 잠시 잊어버리는 일
(주)문학과지성사
문학과지성 시인선 351
©진은영, 2008,『우리는 매일매일』
52-53쪽
나는 그래
자, 모두 잘 들어주길 바라요.
절대 각목처럼 둥둥 떠 있으면 안 돼요.
뭐든 튕겨낼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 보호를 위해 단단한 외피를 두른 동식물들처럼
우리도 젖지 않는 잠수복이 필요해요.
사실 잠수복 갖고는 어림도 없다는 걸 아실 거예요.
더 단단하고 더 질척거리는 그런 방패가 필요해요.
좋든 싫든 유익하든 쓸모없든
답하기도 전에 거부할 권리는 있잖아요?
무조건 받아들임을 당연한 흐름이라 여기지 말자는 거예요.
어디에 있는지도 잊지 말아야 해요.
마당에 설치한 작은 풀장에 들어갔는데
나올 땐 수영장 풀이면,
수영장 풀에 갇혔는데
알고 보니 고작 길거리에 고인 물웅덩이면,
설마 싶지만, 그 작은 웅덩이에서 허우적댔는데
눈을 떠보니 망망대해에 있다면요?
이따금 따뜻함이 몰려오겠지만
자, 모두 속으시면 안 돼요.
온기는 온기대로 어지러울 뿐이에요.
세상은 온통 차가워요. 물속이 아닌 곳이 없죠.
알아서 자신 돌봐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