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진우, 2006,『새벽 세 시의 사자 한 마리』
우기 지나
민달팽이 기어가는 연립주택 계단과 벽면에
축축하게 돋아나는 버섯들
은밀히 어둠을 밀어올리고
지난밤 꾸다 만 악몽처럼 소리 없이 부풀어 오르며
작은 틈새로 이마를 내미는
버섯들
벗지 못한 몸들이 뒤척이며 돌아누울 때
땅 위로 한 움큼
식인종의 머리처럼 솟아나는
저들이 좁은 땅을 먹어치우며
집 안으로 쳐들어온다 바닥에서 천장까지
여기저기 종기를 퍼트리고
축축한 진물을 흘리며
버섯이
거대한 버섯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른다
지하철이 굉음을 울리고 지나간 다음의
텅 빈 적막 속
버려진 연립주택 단지 위 하늘로
자욱하게 번져가는 버섯들
(주)문학과지성사
문학과지성 시인선 321
©남진우, 2006,『새벽 세 시의 사자 한 마리』
36-37쪽
나는 그래
거실 천장이 가라앉고 있다
조금씩 틈이 벌어지더니 꼭 벌어져야만 하는 특정한 이유라고 있듯,
계속, 아주 조금씩, 꾸준히 벌어지고 있다
살면서 침입을 기다리는 포식자에게
친절을 베풀 줄은 몰랐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리라 생각하니
저녁잠이 더욱 짧아진다
원래 사는 게 그런 건가
축축하고 찝찝하지만 벌어지는 틈을 놔둔다
잠시 딴생각을 하고
잠깐 바보 같은 웃음을 지으며
온갖 나쁜 상상을 한다
가령, 새벽 코골이도 들리지 않는 그때
벌어진 틈과 꼭 맞는
무언가가 들어와 집구석구석을
헤집어 놓는데도 조금도 대응하지 못하고
숨죽이기만 하는.
저녁잠이 짧아진다 '버섯들'이 퍼진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