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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란 Nov 07. 2017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여야 한다.

<<그리다>> 3편의 작품, 특히 <림동미>


≪그리다≫ / 드라마 / 75분 / 3편

<평양냉면> / 감독: 장호준

<관계의 가나다에 있는 우리는> / 감독: 이인의

<림동미> / 감독: 박재영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여야 한다

     

     

  첫 번째, 어렵지도 어지럽지도 거북스럽지도 않다.

  통일이나 이산가족, 실향민, 혹은 새터민을 복잡한 문제로만 생각해 <그리다>를 보기가 꺼려진다면, 전혀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세 편 모두 어렵거나 복잡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관객에게 단 하나의 주제를 갖고 다양한 방식으로 담담하게 다가간다.   

  <평양냉면>엔 북에 남겨둔 가족만을 그리워하는 아버지를 원망만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아들의 사무치는 그리움이, <관계의 가나다에 있는 우리는> 속엔 그리워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남편을 찾는 할머니의 슬픔이 진하게 퍼져있다. <림동미>는 어떤 것도 쉽게 묻을 수 없었던 사랑과 그로 인해 받은 상처를 직면하고야 마는 딸을 그리고 있다.  

  결국, 우리가 스스로 <그리다>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들의 이야기가 주는 의미는 달라진다. ‘어쩔 수 없는 그들의 이야기’인지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나의 이야기’인지.

     

  두 번째,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나의 이야기들

  <평양냉면>

출처: 영화 <평양냉면> 중

  이별을 완벽하게 준비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평양냉면> 속 상범에게도 아버지의 죽음은 더더욱 예고 없는 이별이었다. 다 말하지 못해 억울하기도 하고, 다 표현해버린 것 같아 후회하기도 한다. 자신의 슬픔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 엄마에게 툴툴거리지만, 결국 떠난 아버지를 잊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여기서 평양냉면은 바로 그에게 강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매개체다. 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데려갔던 허름한 평양냉면집에서 그는 혼자 앉아 아버지를 마주한다. 과거와 현재를 번갈아 가며 보여주는 감독의 의도에 관객은 상범이 느끼는 원초적인 그리움에 녹아든다. 과거의 아버지가 건네준 평양냉면을 받아들고 울음을 터트리는 상범의 모습을 통해 관객은 어쩌면 그의 행동이 처음은 아닐 거란 생각을 하게 된다.

     

  <관계의 가나다에 있는 우리는>

                                                스틸컷 출처: 영화 <관계의 가나다에 있는 우리는> 중

 

  상경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이산가족 찾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그러나 그의 몸과 마음은 지연(전 여자친구)과의 기억에 사로잡혀있다. 그녀의 이름으로 빌린 책 한 권만이 그와 함께 있어줄 뿐이다. 그는 1.4 후퇴로 헤어진 남편을 찾는 할머니를 인터뷰하면서 그녀의 사랑 이야기를 듣게 된다. 카메라는 상경을 뒤로 한 채 할머니와 그의 연애 시절을 툭 풀어놓는다. 상경의 연애는 할머니의 말처럼 정말 가나다 단계였을까. 오로지 서로만을 보지 않을 수 없었던 그런 시기 속에서 그가 놓쳐버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후회 섞인 그리움은 지연 역시 느끼고 있었다.

  <관계의 가나다에 있는 우리는>의 묘미는 후반부에 등장한다. 상경과 지연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는 남편을 찾는 할머니의 이야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상경은 우연히 자신이 인터뷰를 위해 연락했던 할아버지가 사실 그 할머니의 남편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상경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늦은 저녁에 할아버지를 찾아간다. 어두컴컴한 건물 안에서도 그의 눈은 빛이 가득하다. 할아버지를 찾던 상경은 건물 다리에 있는 그를 보고 웃으며 뛰어간다. 그 뜀박질만 봐도 알 것 같았다. 상경과 지연의 관계는 설렘과 희망이 가득했던 가나다 단계에 있었고, 상경의 뜀박질은 지연에게 다시 다가갈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된 기쁨의 춤사위였다.

 

  <림동미>

출처: 영화 <림동미> 중

  동미는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탈북했다. 그러나 그녀에게 탈북자 신분은 불편하기만 하다. 그 당시 있었던 일 역시 기억하고 싶지 않아 한다. 결혼을 앞둔 그녀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희망찬 미래뿐이니까.

  그러나 그녀의 이름은 ‘임’동미가 아니라 ‘림’동미다. 외면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는 아픔은 없다. 누구나 직접 아픔을 대면해야 한다. 그렇게 아프고, 좌절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고로 그녀는 자신이 지워버린 것 같은 기억 때문에 하루의 반 이상을 공허하게 지낸다. 그런 동미에게 한 사람이 찾아온다. 아버지의 동영상을 들고, 북에 있는 그를 탈북시켜주겠다고 한다. 이에 그녀는 사시나무처럼 흔들린다.

  아버지를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결혼도 미루고 아버지를 간절히 기다린다. 이제 동미의 하루는 온통 아버지 생각뿐이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거친 숨을 내쉬었던 그 날의 기억이 가시처럼 그녀의 가슴 속에 박혀있었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동미의 기억은 점차 진실을 찾아간다. 그리고 마주한 진실 앞에서 그녀는 드디어 입 밖으로 소리친다.

  “나 이제 혼자 안 갈래요!”

  <림동미>는 앞선 두 작품과 달리 반전 있는 사건이 등장한다. 그 사건을 통해 관객은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어 씁쓸해한다. 동시에 웨딩드레스를 입고 미소를 짓는 동미와 그녀와 맞잡은 손을 보고 안도한다. 그 끝을 정확히 알 수 없음에도 말이다.

     

  세 번째, 결국 나와 같은 한 사람의 이야기다.

  세 편의 에피소드는 관객에게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과도한 힘을 쏟지 않는다. 그저 담담히 보여줄 뿐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을 아픔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 보내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어주는 조각들이다. 엄청난 위로를 바라는 것도, 대단한 이해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인간이라면 느낄 수밖에 없는 그리움, 사랑, 아픔에 관해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얼버무리기 딱 좋은 ‘우리’가 아니라 ‘나’란 한 개인에 집중한다. 그들의 이야기가 강한 주체의식 가진 개개인의 ‘나’의 이야기와 전혀 다르지 않음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그들의 삶이 지금의 ‘나’와 동떨어진 삶이 아님을 각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됐다면, <그리다>를 만든 모든 이들의 염원은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가볍게 보고 나와도 좋다. 마냥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누군가에게만 절실한 이야기가 아님을 환기해주는 작품임엔 틀림없다.

     

  덧붙여, 나에겐 <림동미> 속 몇몇 장면들이 참 인상 깊었다.

  횡단보도, 아이들과 아버지가 함께 찍은 사진, 결혼식, 맞잡은 두 손, 동미의 감출 수 없는 환한 미소….  

     



  글, 관객동아리 씨네몽 회원 김진실



P.S 

  이 글은 페이스북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에도 게시된 글입니다.

  전주독립영화관 관객동아리 '씨네몽'회원으로 개봉작을 본 후 짧은 리뷰를 올리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습니다.

  ***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 페이스북에 매주 씨네몽 회원의 개봉작 리뷰가 매주 개제될 예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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