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연 Jul 09. 2022

죽음의 자리는 낭떠러지가 아니라 고향

김지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2022.06.21 (화)


조금 은밀한 독서모임 2회가 끝났습니다.


오늘은 어쩌다 보니 4명이라는 적은 인원으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독서모임에 처음 참가할  희망했듯, 책으로써 아는 것을 확인하는 것보다 모르는 것을 함께 발견해 나가는 시간이 되었길 바라 봅니다.


스토리텔링이 곧 삶의 럭셔리라면, 오늘 모임 역시 제 삶에 부내(?)를 더한 것 같습니다. 행복한 삶에 대한 고민, 좋은 만화 추천, 여행 에피소드, 그리고 관습에 저항했던 경험까지 여러 이야기들이 모여서 죽음보다는 삶에 가까운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아버지의 도보 여행처럼 저도 내일 식탁에서 할 이야기가 한두 개 더 생긴 것도 같아요.


어쩌면 삶을 실감하는 때는, 거창한 행위의 현장이 아니라 의외로 작은 의미와 순간들일지도 모릅니다. 이어령에게는 글쓰기가 '마지막 희망'이었지만, 우리가 죽기 전까지 하고 싶은, 죽음을 망각할 정도로 몰두하는, 삶과 가장 맞닿아 있는 일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과 무언가를 공유하는 것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여행이든 만화든 글이든 말이죠. 그래서 어느 철저한 J는 죽기 전 계획을 세워서 사람들을 모조리 만날 거라고 합니다. 친구의 '그럴 수 있지'라는 주문 한 마디, 예상치 못했던 동료들의 격려, 뭐 그런 것들을 찾아서요.


물론 인생은 참 모순적입니다. 나와는 맞지 않는 팀장, 축하할 일도 뒤에서 욕하는 동료, 퇴사해버린 사수... 고난 또한 사람에게서 올 때가 많으니까요. '평범한' 사람이나 관계는 생각보다 어려운 것 같습니다. 좋은 사람이 되는 건 더 어렵고요. 그럴 땐 가끔 그냥 누가 정해주는 대로 휩쓸리고 싶기도 합니다. 이어령은 반대할지 모르지만, 어느 곳에서 부품이 되고 순응하는 것 또한 삶의 방식이지 않나요. 다행히도 사회에 순종하는 사람과 저항하는 사람이 공존하는 것이 오히려 민주주의에 적합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저, 우리가 순종과 저항을 인지하고 선택할 수 있는 자기 의지를 가지고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점점, 이런 인생의 여러 모순과 내 안의 모순을 타개하기보단, 그것을 받아들이고 성숙해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해서 첫 번째보다 '두 번째'에서 여유를 찾을 수 있으면 된 거 아닌가, 싶습니다. 입원의 패닉도 겪어보고, 시험 결과도 부정해보고, 회사에 비관도 해보고- 그런 네거티브에 빠져본 후 다음번엔 포지티브를 강화할 수 있다면... 오히려 네거티브도 좋지 않은가요. 사실 세상도 네거티브 동지들 투성이일 겁니다.


죽음의 자리는 낭떠러지가 아니라 고향이라고 합니다. 귀향길에 왠지 모를 아늑한 마음이 들듯이, 우리도 바지런한 삶을 마무리할 때 좋은 사람들과 추억을 다시금 곱씹을 수 있길 바랍니다. 또 수많은 '한 번쯤 해봐야지'에서 얻어걸린 행복한 기억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다음 여행과 만남들을 더 소중히 여기는 제가 될 것 같네요.


그럼 이번 한 주도 눈 잘끈 감고 가보자고!



*위 글은 김지수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서 발췌한 구절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언젠가 다가올 죽음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