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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연 Jan 02. 2023

인간다워지는 여러 방법들

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

2022.10.25 (화)


조금 은밀한 독서모임 10회가 끝났습니다. ※8, 9회는 각 회차 사회자가 글을 작성하였습니다.


아, 어느덧 우리가 열 번이나 (비대면으로) 만났구나. 새삼 기분이 좋아지는 숫자입니다. 사실 생각보다 모임 운영에 신경이 많이 쓰여요. 읽는 책들은 괜찮은지, 모두 원하는 이야기를 가감 없이 잘하고 있는지, 조금이라도 불편하거나 상처받지는 않는지... 그중에 요즘 새로운 고민거리는, 아무래도 '나'의 지인들로 구성했다 보니 혹시 내가 불편해서, 날 의식해서 못하는 말들이 있지 않을까. 나라는 존재를 모임 안팎에서 어떻게 감춰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다 같이 더 편하게 이야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생각이.


처음 제가 독서모임을 비대면으로 진행하게 된 건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무엇보다 소위 '광대짓'을 최소화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회사에서 가면을 쓰기도 하고, 가족에게조차 익살 서비스를 제공할 때가 있는데 즐겁자고 하는 취미까지도 그런 부분이 있다면 제가 오래는 못 버틸 것 같았거든요. 독서는 희극명사라 치면 아무래도 모임은 비극명사 같을 때가 있잖아요. 어찌 됐든 이 특이하다면 특이한 형식 안에서 매번 각자의 진솔한 이야기를 아낌없이 들려주어서 정말 많이 고맙습니다.


오늘 누군가가, 꽃게는 통 안에만 놔두어도 서로 끌어내리는 것이 마치 <인간 실격>의 주인공 요조와 그의 친구 호리키 같다고 비유를 했습니다. 다행히 일반적인 인간 사회에서는, 끌어내리는 관계만 있는 게 아니라 서로 도와서 통 밖으로 나가거나 통 속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끔 하는 (우리 모임과 같은) 관계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관계 속에서의 다양한 경험이 개인의 가치관과 자아 형성에 영향을 미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요조는 주체성을 기를 수 있는 긍정적인 경험을 많이 하지 못했습니다. 복합적인 원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유아-청소년기에 권위적인 아버지의 존재와 더불어 요조가 온전히 '자신'으로서 행동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못했던 영향이 컸습니다. 그는 익살이 성공하면 그것으로써 일말의 자존감을 회복하고, 과장된 모습이 행여 들킬까 불안에 떠는 등 자신의 행복과 기분을 대부분 타인의 반응에 기대온 것이죠.


부끄럽거나, 공포스럽고, 때로 부정당했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고 가면을 썼던 건 누구나 살면서 겪어본 일입니다. 다만 가해의 주체는 내가 받은 고통과 피해를 당연히 알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나의 편인 친구와 가족조차도 나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결국 부정적 경험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뿐이며, 아마 이런 끊임없는 좌절과 극복의 반복을 통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키워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우리가 덤덤하게 이전의 불안했던 기억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건, 그 일은 이미 지나갔으며, 나에게 벌어졌던- 나의 삶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한 부분이라는 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닐까요?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모두가 자신을 아주 잘 알고 그것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솔직한 '나'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저는 새삼 굉장한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술과 약과 자살의 방법이 아닌, 긍정과 부정의 이야기를 모두 나눌 줄 아는 친구들과 대화하는 일은 인간이 위로받을 수 있는 참 건강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독서모임에서 저를 온전히 드러내면서, 또 똑같이 온전히 드러내 주는 여러분을 보면서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체득하고 있습니다. 설사 요조의 요리코가 무너졌듯이, 나의 큰 믿음이나 목표가 흔들린다 해도, 이렇게 쌓아온 기억들을 기둥 삼아 다시 일어날 수 있으리라 믿어봅니다.


실격의 반대는 합격보다는 적격이 아닐까 싶은데요.

나날이 좀 더 인간다워지고 있는 저인 것 같습니다.



*위 글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에서 발췌한 구절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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