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길을 떠나며

미련을 버리다

by 알이





내가 느닷없이 찾아가 하던 것들을 그만 두기로 했다고 더듬거리며 말했을 때

갑자기 꺼내는 두서없는 이야기도 언제나 따스히 들어주는 당신은 부엌으로 가서 따뜻한 핫초코와 스콘을 내어 놓으며 말을 이었죠.



방금 구운 거야. 초코칩이랑 호두도 콕콕 박혀 있어서 아주 맛있을 거야. 어떻게 완성될 시간을 딱 맞춰서 왔어? 그래. 너를 얽매고 있던 계획을 날려 버린 느낌이 어때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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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해요. 허전하고. 좋기도 해요. 근데 진짜 이상하네요. 하고 싶은 것을 외면하고 싶어서, 미루고 싶어서 그 많은 것들을 만들어서 스스로 앞을 막아 둔 게. 조금씩 막는 방향으로 틀고 있었나 봐요.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까 방향이 달라져 있었어요. 아무리 봐도 이 쪽으로 가는 건 아닌 것 같았는데 가던 길이라 계속 걸었어요. 길치들의 특징이잖아요.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계속 가는 거. 그러면서 내가 어디로 가려고 했는지 조차도 잊어버렸나 봐요.


어느 날 잠깐 멈췄어요.

내가 지금 어디를 가고 있는 거지?

그랬더니 애초에 생각도 하지 않은 이상한 길을 가고 있더라구요. 게다가 쓸데 없는 큰 돌까지 밀면서.

이게 뭐지? 언제부터 이런 거지?


돌을 버리고 그냥 왔던 길 반대로 등을 돌렸죠. 그런데 막상 반대로 가려니까 뭔가 허전한 거예요.

저 놈의 돌. 필요도 없는데.

모래주머니 차고 걷다가 빼고 걸으면 가볍기도 하지만 어색하잖아요. 그런 기분이 들었어요. 그런다고 굳이 다시 돌을 밀면서 갈 필요가 없다는 건 아니까 등 뒤에 두고 가려고 하는데 약간 허전한 거예요. 마지막 아주 작은 한 가닥 의심도 들고.

저게 혹시 돌이 아니고 금이면 어쩌지.

사실 금 아닌 건 애초에 알았는데 밀다 보니 정들었나 봐요. 적당히 무거워서 밀 만 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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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만 보고 가다 허리 펴고 보니까 탁 트여 있고 좋아요. 그런데 어디로 걸어가야 되는지를 모르겠어요. 무서운 건 아니에요. 그저 허전해요. 이걸 느끼기 싫어서 돌을 밀었나 봐요.


왜 가져가야 하는지 어디로 가져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눈에 보이는 것 잡히는 것.

사람들이 볼 때 열심히 하네 이렇게 볼 만한 것을 하려고 했나 봐요.

세상에 발을 딛고 살지 못하고 붕 떠서 날아가 버릴까 봐 돌을 밀었나 봐요.

돌이 나를 잡아 주기도 했던 거죠. 이제는 알아요. 날아 가버려도 좋을 거라는 것. 내가 원할 때 땅을 디딜 수 있을 거라는 것. 그리고 그냥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이리저리 돌아다녀도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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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남는 막막한 감정들은 느껴보니까 또 나름대로 괜찮아요. 엄청 최악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네요. 누가 그러는데 어차피 사는 건 막막함과 부담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하는 시간들의 연속이래요. 계속 이런 일들의 반복이라면 그냥 둘 다 안아 버리는 게 좋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제 가볍게 출발해 보려 해요. 돌 미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던 하늘도 보고 변해가는 계절도 느껴보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인사도 하고 예쁜 꽃 예쁜 집들도 구경하면서 끙끙대지 않고 여유롭게 가보려고요.


당신 덕분에 이렇게 출발할 수 있었어요.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