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의 역사

시작하며

by 알이




20살에 집을 떠나와서 27살까지 대략 9번 정도 이사라고 이름 붙이기가 민망할 정도로 적은 짐을 옮기며 공간을 이동했다. 그 이야기를 하려고 예전에 살던 공간들을 지금 다시 떠올려보니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소리를 크게 내서는 안 되는 공간들이 대부분이었고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았다. 그리고 짧은 기간 안에 떠나야 하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그때마다 나는 그 공간에서 가장 큰 불편함만을 해결하기 위해 다음 공간을 선택했고 또 그다음의 큰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다음 공간을 선택했다. 그러는 동안 조금씩 마음이 좀먹고 있었던 것을 몰랐다. 그 불편함을 신경 쓰고 다음에는 그나마 더 나은 환경으로 가기 위해 머리를 굴리던 에너지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면 나는 인생의 다른 부분에서 좀 더 괜찮은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주거환경은 인간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말이고 그 당시에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전공은 건축이었고 수업내용에 공간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들이 나오니까. 그런데 그런 내용들을 내가 전공에 관련된 일을 하면 해야 할 것, 또는 내가 돈을 벌게 되면 만들고 싶은 공간이라고 생각하며 뒤로 미뤘다. 그래서 당장 내가 먹고 자고 쉬는 공간이 내가 들어가고 싶은 공간이 전혀 아니어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물론 모든 주거 형태에는 장단점이 있다. 완벽히 내 마음에 드는 공간을 갖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어느 정도 마음을 편하게 해 줄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내 대학생활은 조금 더 괜찮았을까 글을 쓰면서 처음으로 생각해 봤다. 언젠가 네이트 판 같은 고민을 올리는 곳에 새로운 직장을 구해서 집을 구하려는 사람이 고민이라며 올린 글을 본 적이 있다. 가격이 아주 싸고 시설이 별로 좋지 않은 원룸과 가격이 조금 비싸고 환경이 좋은 곳 중에 어디로 가야 할지 의견을 묻고 있었다. 나는 그때도 초반에는 싼 곳에서 돈을 모아서 좋은 데로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대부분의 댓글들은 일을 하게 되면 잘 쉬는 것도 중요하니 좋은 환경에서 시작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물론 돈을 벌지 않는 대학생은 부모님의 의견을 대부분 따를 수밖에 없었지만 내가 그 당시에 이 중요함을 알고 있었다면 조금 더 좋은 환경의 공간에서 지내고 싶다고 부모님께 부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혀 깨닫지 못했다. 금전적인 문제만 중요했다. 최대한 가성비가 좋은 것만 따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본능적으로 그렇게는 오래 살 수 없다는 걸 알았지만 이미 그때는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진 뒤였다. 혼자서 살아야 하는 사람은 특히 금전적인 부분에 맞춰 자신의 공간을 아무렇게나 방치하기 쉽다. 하지만 오히려 혼자 살아야 하는 사람일수록 사회생활을 제외하고 가장 오래 보내는 공간을 편하게 쉴 수 있도록 신경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여전히 엄마는 가구 같은 것을 사겠다고 하면 또 이사 갈 건데 짐을 늘리지 말라고 한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이사 왔을 때 창문이 너무 커서 잠들 때 뭔가 모르게 불안했다. 그래서 커튼을 사려고 했을 때도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대학생일 때는 엄마의 의견에 나도 순순히 동의했다. 짐은 최대한 줄이고 불필요한 것은 절대 사지 않았다. 본가에서 오래 써서 쓰다 버려도 되는 물건들을 받아서 썼다. 어느 순간부터 의문이 들었다. 언제까지 미완성인 인생처럼 곧 떠날 사람처럼 살아야 하나. 그래서 커튼을 사서 달았고 덕분에 조금 편하게 잠들 수 있었다.


이제야 기간과 상관없이 공간은 사는 사람이 편히 쉴 수 있는 상태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아마 내가 결혼할 때까지 나를 미완성인 떠돌이 취급할 것이다. 하지만 나 스스로는 떠돌이가 아니라 본가보다 더 편한 내 공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타인이 나의 공간을 어떻게 취급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물론 우와 너네 집 좋다며 부러워하는 집도 좋겠지만 그것보다는 타인과 상관없이 내가 내 공간을 편하게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제일 중요하다. 그걸 그 무수한 이사를 거치고 나서 이제야 어렴풋이 깨닫는다.


이제 연재할 글들은 내가 가지고 있던 쓸데없던 로망들, 예를 들면 2층 침대를 써 본다거나 드라마나 시트콤에 나오는 내용처럼 기숙사나 하숙에서 화기애애하게 지내는 그런 로망들이 박살이기도 하고 내 주관이 가득 들어간 1인 가구의 여러 가지 주거형태의 장단점들의 나열이자 애증의 기록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