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기숙사

수도 없이 밤새게 만든

by 알이




대학을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오면서 자취를 하고 싶었지만 비용이 압도적으로 싼 학교 기숙사가 있어서 내 바람을 강력하게 주장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신청서를 내고 나니 면접을 보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학교 입학할 때도 면접을 안 봤는데 들어가고 싶지도 않은 기숙사를 면접까지 봐야 하다니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하필 면접일이 가족들과 강원도 스키장에 가기로 되어 있던 날이라 가족들은 콘도에 남고 엄마와 나는 스키장 버스를 타고 서울로 나와 학교에 면접을 보러 갔다. 그 날 내가 다닐 학교를 처음 봤다. 눈이 너무도 많이 와 얼어붙은 호수에 쌓여 있었는데 그때는 그게 운동장인 줄 알았다. 학교에서 운영하는 기숙사라 인원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해서 탈락하지 않을까 일말의 기대를 했었다. 그러려면 면접에서 적당히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어야 했는데 나는 너무도 따스한 사감의 말투에 성심성의껏 대답을 했고 결국 3인실로 배정을 받게 되었다.


처음 방 호수를 확인하고 들어가니 방학 동안 먼저 그 방을 쓰고 있던 2학년 선배가 빈자리를 안내해주었다. 2층 침대 윗자리였고 방문 앞의 책상이었다. 2층 침대에 대한 로망은 한 학기 동안 쓰면서 서서히 박살 났는데 특히나 불이 환히 켜진 상태에서 누워 있으면 형광등 백 개를 켜놓은 듯 눈부심을 느낄 수 있었고 술을 마셨거나 과한 신체활동을 한 다음날이면 에베레스트산을 하산하는 사람처럼 마음을 다잡고 계단을 내려가야 했다.


방안에는 화장실이 없었고 각층마다 양 끝에 화장실과 수돗가 같은 수도꼭지가 7~8개쯤 달린 세면대가 있어 매일 수련회를 온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세면대는 수압이 어찌나 좋은지 그때 드림렌즈를 쓰고 있었는데 기숙사 들어간 지 채 두 달이 되지 않아 다 물속으로 떠나보내야 했다. 샤워를 하려면 지하에 공중목욕탕 같은 시설로 내려가야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시설은 꽤 좋은 편이었다. 습식 사우나도 있고 온탕도 있었다. 다만 가끔 벌레가 출몰했고 수건을 깜빡하고 내려오면 대형 선풍기 앞에서 몸이 다 마를 때까지 서 있다가 배앓이를 할 수도 있다는 점 정도가 단점이라 할까.


식당은 1층에 있었고 밥이 정말 잘 나왔다. 맛있기도 했고 양이 부족한 적이 없었다. 참외 같은 건 그냥 통째로 하나를 주고 깎아먹으라고 과도를 두기도 했다. 그리고 시험기간에는 방마다 치킨이나 보쌈을 줬다. 룸메이트들과 친했다면 정말 좋았을 제도였지만 우리는 과도 달랐고 너나 할 것 없이 번갈아가면서 방에 들어오지를 않으니 거의 일주일에 한 번 만나고, 시험기간에 한 번 만났다. 어릴 때 시트콤을 보며 꿈꾸던 기숙사 룸메이트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런 것들은 다 나름 기숙사 생활의 재미라고 느낄 때도 있고 싫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딱 하나 통금은 조금도 재밌지가 않았다. 통금은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였고 월요일마다 점호를 하고 그 외 요일에는 불시점검을 했다. 월요일에는 모두가 들어와서 대청소를 하고 층마다 층장을 하는 선배가 인원을 체크했고 그 외 요일은 운에 맡길 수밖에 없었는데 만약 불시점검을 해서 방에 없으면 벌점이 부과되고 벌점이 얼마 이상 되면 기숙사를 나가야 했다. 기숙사에 살고 있던 같은 과 선배는 술자리에서 내게 꿀팁이라며 12시에 들어가서 점검이 끝나면 창문을 넘어서 비상계단으로 나오는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 선배는 몇 달 전 그렇게 창문을 넘다 다쳐서 발목에 깁스를 한 적이 있었다. 나는 깁스까지 해가면서 술을 마시고 싶지는 않았다.


어차피 살고 싶지도 않았으니 벌점이 쌓이면 쫓겨나겠다는 굳은 다짐으로 술자리가 있으면 4시까지 버티다 기숙사로 들어갔다. 이런 쪽으로는 운이 아주 없는 편이라 10번 중에 6~7번 정도 불시점검에 걸렸고 2달 만에 정말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심지어 한 번은 엄마에게 걸린 적도 있었다. 중간고사 시험 기간이었는데 그날 월드컵 예선 경기가 새벽에 있었고 학교 공연장에 모여서 응원을 했다. 아침 7시쯤 기숙사로 돌아가 자려고 하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와서 어디냐고 물었다. 이상했지만 기숙사라고 했다. 그건 사실이니까. 그러자 엄마는 축구 보고 이제 들어온 거냐고 물었다.


알고 보니 응원하는 장면을 아침 뉴스 자료화면에 쓰려고 방송사에서 촬영을 해갔고 아침 뉴스에 화면 가득 송출되는 내 얼굴을 보고 너무 놀란 엄마가 전화를 걸었던 것이었다. 그 사건 자체는 재밌어서 친구들에게 자랑? 하기도 했지만 통금은 너무 짜증 나는 것이었다. 너무 친절하게도 그런 학생들에게는 벌점을 깎을 수 있는 제도가 있었다. 있는지도 몰랐는데 친절하게도 층장 선배가 찾아와서 기숙사 축제에 참가도 하고 복도 청소를 하라고 권유인지 강제인지 알 수 없는 안내를 했고 벌점을 깎았다. 그 덕에 쫓겨나지 않고 한 학기를 보내고 여름방학이 되었다. 어서 본가로 돌아가고 싶었다. 짐을 싸니 박스 하나면 충분했다. 알 수 없는 허무함이 느껴졌다. 짐을 택배로 보내고 본가로 돌아갔다.


*애 - 맛있는 밥

*증 - 통금

*박살난 로망 - 가족같은 룸메이트

*총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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