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기숙사

인간을 믿지 못하게 된

by 알이




두 번째 학기는 학교에서 운영하는 기숙사가 없어져서 민자 기숙사로 들어가야 했다. 바라지도 않았는데 너무 너무 고맙게도 직영 기숙사에 있던 학생들은 자동으로 민자 기숙사로 배정되었다. 놀고먹던 방학 생활을 청산하고 배정된 방으로 들어갔다. 2인 1실이었는데 룸메이트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새 건물이어서 모든 것이 깨끗했고 방 안에 화장실도 있어서 이제 씻으러 갈 때 바구니를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겠구나 생각했다. 그전보다 상황이 나아졌으니 조금은 좋아할 만도 했는데 기분은 그저 그랬다. 3월에 처음 기숙사 방을 배정받았을 때 내가 원해서 집을 떠나왔으면서도 며칠 동안 잠들기 전에 울기도 했다. 한번 겪었으니 익숙할 줄 알았는데 여전히 모든 것이 낯설었다.


짐이랄 것도 없는 것들을 정리하고 낮잠을 잤는데 일어나니 해가 져서 어둑했다. 갑자기 모든 것이 너무 막막하게 느껴져서 왠지 서러웠다. 그 와중에 배는 또 고파서 컵라면을 사러 1층 편의점으로 내려갔다. 간 김에 둘러보니 분식집도 있었고 미용실도 있었고 만화책 대여점도 있었다. 미용실은 왜 있는지 의문이었고 만화책 대여점으로 들어가서 책들을 구경했다. 중학교 때 빌려보던 만화책이나 인터넷 소설 같은 것들이 많았다. 새로운 것들도 많았지만 중학교 때 빌려봤던 책들을 주로 빌려보게 됐다. 괜히 어색하고 서러운 기숙사 침대에 누워서 만화들을 읽고 있으면 꼭 그 시절 내방의 침대 같았다.


통금은 다행히 1시로 늘어났고 들어가지 않는다고 벌점을 주거나 그런 일은 없었다. 단지 1시부터 5시까지 기숙사에 들어갈 수 없을 뿐. 그래서 전 학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밤을 새워야 하는 일은 줄었다. 그토록 나를 고통스럽게 하던 통금이 어느 정도 해결되니 다른 부분이 괴로웠다.


민자 기숙사는 1달에 30만 원이었고 식비는 별도로 삼천 원쯤이었던 것 같다. 식비 가격은 쌌지만 맛은 그저 그랬고 식사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거의 먹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의무로 한 달에 몇 끼 이상 구매를 해야 했다. 돈이 아까웠다. 세탁도 유료였다. 1층에 셀프빨래방이 있었다. 처음에는 돈이 아까워서 빨래를 우드락 봉지에 꽉 차게 모아 어깨에 짊어지고 갔다. 빨래를 꾹꾹 밀어 넣었다. 다 되고 나서 꺼내보니 아예 물이 젖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빨래가 너무 많으면 잘 안 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직접 겪어보고서야 깨달았다. 직영 기숙사일 때는 압도적으로 싼 가격 때문에 그 모든 불편을 감수하고 입을 다물고 살 가치가 있었지만 민자 기숙사는 불편이 감수하기에는 가격이 비싸게 느껴졌다.


공용 냉장고가 층마다 있어서 처음에는 좀 설렜다. 아이스크림이나 과일 같은 것을 둘 수 있을까 하고. 그런데 냉장고에 있는 음식을 몰래 훔쳐 먹는 인간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열어 보면 음식마다 눈금을 표시해 두었다거나 개수를 세어 두었다는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황당했지만 더 황당한 도둑도 있었다. 어느 날 술을 너무 적당히 마시는 바람에 잠은 들지 않고 머리가 너무 아파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룸메이트가 들어오는 소리가 났지만 아는 척하기 귀찮아 자는 척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 머리맡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고 룸메이트는 밖으로 나갔다. 눈을 떠보니 머리맡에 뒀던 핸드폰이 없어져 있었다. 밖으로 나가보니 룸메이트가 내 전화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머리가 아파 만사가 귀찮았고 아무 말 없이 전화기를 받아 들어와서 누웠다.


지금이야 무제한 요금이니까 전화 좀 쓰는 것 상관없을 수도 있지만 그때는 무려 알을 다 쓰면 발신을 할 수 없는 청소년 요금제를 쓰고 있어서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 전에도 그렇게 친하게 지내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 뒤로 우리는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들어올 때는 2인실이 당연히 3인실보다 더 좋다고 생각했지만 그러고 나니 2인실은 너무 숨 막히는 곳이 되어버렸다. 기숙사는 들어가고 싶지 않은 곳이 되어버렸고 그렇다고 딱히 갈 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디도 편히 쉴 곳이 없었던 건데 그걸 제대로 알지도 못한 상태였던 것 같다. 그냥 기숙사에 대한 환상만 박살 났다고 생각했고 다음 학기는 절대 기숙사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는 마음뿐이었다.


그렇게 비싼 가격에도 다음 학기 기숙사를 다시 신청하려면 면접을 봐야 한다는 사실이 정말 어이가 없었다. 여태까지 본 면접 중에 조금도 떨지 않은 면접은 이 면접이 유일했고 유일할 것이다. 기숙사 살아보니 어땠냐는 면접자의 물음에 나는 시사 고발 프로에 나온 사람처럼 단점들을 줄줄 읊었다. 심지어 기숙사 살지 않는 학생도 학생증 카드만 대면 들어올 수 있다는 허점을 나도 이용해서 친구들을 기숙사로 들어오게 했으면서도 그것까지도 말했다. 마지막으로 가까운 곳에 사는 친척이 있냐고 해서 지하철로 3 정거장 거리에 삼촌이 산다고 말했다. 그 학기 성적이 내 평생 다시 없을 장학금까지 받은 성적이었기 때문에 나는 기숙사에서 나오기 위해 최선을 다해 헛소리를 해댈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내가 원하는 대로 기숙사에서 떨어졌고 엄마 아빠는 크게 당황했다. 집도 멀고 성적도 잘 나왔는데 대체 기숙사에서 왜 떨어진 거냐고. 나도 당황한 척하고 싶었지만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드디어 내가 원하는 대로 자취할 수 있다는 상상만으로 너무 기뻤다. 그런데 아빠는 절대 자취는 안 된다고 반대했다. 여러 가지로 위험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안전의 문제라면 위험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문제들은 이미 자취랑은 상관없는 문제였는데 아빠는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같으면 당당히 말했겠지만 그때는 아직 아빠의 충격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좀 더 우기고 싶었지만 이미 나는 타지로 나와 쓸 필요 없는 돈을 쓰게 만든 미안한 자식이었다. 부모님 뜻대로 해야 했다. 부모님의 다음 대책은 하숙이었다.


*애 - 방 안에 있는 화장실

*증 - 가격

*박살난 로망 - 한 번 더 기대했던 절친 같은 룸메이트

*총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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