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는 동생과 남편은 기분 좋게 술을 한잔하고 오랜만에 노래방을 찾았단다, 그런데 가사를 읽어줘야 할 남편이 술에 취해 자꾸 한 박자 늦게 가사를 불러 주더란다.
웅얼웅얼 노래를 부르던 동생은 이까짓 가사 한 줄이 뭐라고 내가 이걸 보지 못해 노래 한 곡을 맘대로 부를 수 없나 싶어 마이크를 내던지고 엉엉 울어 버렸단다.
그러자 정신이 번쩍 든 남편이 누가 보면 우리 헤어지는 줄 알겠다고 그만 울라며 겨우겨우 달래 집으로 데려갔고, 이후론 노래방을 가지 않게 되었다 한다.
어제저녁, 혼자 집에서 드라마 한 편과 함께 캔맥주를 홀짝이고 있었다. 방이 어느 정도 뜨끈해져 보일러의 외출 버튼을 누르고 드라마에 집중했다.
그런데 바닥이 점점 더 뜨거워져 왔다. 다시 가 외출 버튼을 눌렀다. 그러기를 여러 차례, 버튼을 잘못 건드렸는지 방은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아예 전원 버튼을 눌러 보일러를 꺼 버렸다.
잠들기 전, 양치를 하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갔다, 전원을 꺼 둔 상태여서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냥 찬물로 양치를 하고 거실로 나와 보일러의 전원 버튼을 다시 눌렀다.
그런데 외출로 설정이 되어 있는지, 난방으로 되어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났다. 서글픔과 비참함. 그리고 억울함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어버렸다. 그러다 동생이 했던 말이 다시 생각났다.
“언니, 그 가사 한 줄 보는 거 그게 뭐라고 내가 그까짓 거 하나를 못 해서 지금 이러고 있나 싶고 너무 서글퍼서 눈물이 막 나더라고요….”
정말이었다, 고작 글자 하나 읽을 수 있는 그게 무라고 그거 하나를 못 한다는 게 서글퍼 눈물이 줄줄 흘렀다.
할 수 없이 마지막 수단인 나의 눈이 되어 줘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한 뒤 자원봉사자에게 전화 걸기 버튼을 눌러 영상통화를 걸었다. 그러고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울어본 적 없는 사람처럼 말간 목소리로 통화를 시작했다. 이름 모를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설정을 바꿔 놓은 뒤 전화를 끊었다. 참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감사하다고 해서 내 장애가 줄어들거나 옅어지거나 괜찮아지는 것은 아니다.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른다, 세상 참 살기 좋아졌다고 살만하다고, 너는 그런 좋은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 왜 매일을 불평불만 투성이냐고. 하지만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지 못한다, 장애라는 것이 얼마나 잦은 간격으로 자신이 무력하고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인지 잔인하게 상기시켜 주는 것인지를.
장애란 이런 것이다, 휘청휘청 위태롭게 걸어가다 시도 때도 없이 무릎이 푹 꺾이고 발목에 힘이 빠져 주저앉아 버리고 마는 그런 거지 같은 것. 그래서 장애를 극복했다는 말은 더욱더 거지 같고 있을 수 없는 헛소리 대잔치일 뿐이다. 오늘은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나의 눈이 되어 달라는 전화를 걸지 않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