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지마 공원과 커피
아침이다. 호텔에서 1박을 보냈다. 늦장 부리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일어나 커다란 커튼을 걷어 밖을 본다. 여행이니만큼, 특히 운 좋게 고층에 머물게 된 만큼 더더욱 부지런하게 아침을 맞이해야 한다. 창은 동쪽을 향해 있었기에 저 멀리서 해가 뜨는 것이 보인다. 항상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던 해가 이번만큼은 눈높이가 맞았다. 신기해라.
구름이 옆으로 넓게 퍼져있고 그 위로 붉은 해가 떠오른다. 진한 붉은빛이 가로로 번지며 세상을 밝힌다. 건물 뒤편은 기다란 그림자가 생겨 해가 뜨는 쪽은 확연한 대비를 이룬다. 침대에 걸터앉아 멍하니 바라보기. 낯선 장소와 낯선 풍경. 해 뜨는 것을 보는 건 얼마만이더라, 나에겐 일출도 여행인가 보다.
아침 공원을 산책하고 싶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난다. 준비할 것이 많지 않아서 30분이면 충분하다. 아침 청소도 하지 않아도 되고, 고양이들 밥도 주지 않아도 되는 아침이다. 오롯이 나를 위한 날. 오늘은 눈이 내리지 않는다. 그래서 조금 멀리까지 가 보기로 한다. 먼저, 눈 내린 공원 산책과 따뜻한 커피가 필요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공원 옆의 숙소에서 머물기로 한 것이 가장 만족스러웠다. 삿포로에 여행을 온다고 하면 반드시 나카지마 공원 근처에서 묵으라고 권하고 싶다. 물론, 그 사람이 산책을 좋아하길.
공원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공원을 가로질러 출근을 하고 있다. 어느덧 눈이 많이 녹은 공원의 큰길로. 나는 일부러 작은 길을 걷는다. 눈이 녹지 않은 길의 눈을 밟는다. 뽀드득뽀드득.
11월의 삿포로는 아직 가을의 색이 남아있다. 나무 가지엔 노란 잎, 갈색 잎, 붉은 잎이 달려있다. 앙상한 가지의 눈 내리는 겨울만 만났는데, 늦가을에 만나는 겨울이 참 신기하다. 무슨 기척이 보여 들여다보니 오리가 눈을 파고 있다. 아니, 거기 뭐가 있는데. 푸드덕 고개를 좌우로 흔들더니 뒤뚱뒤뚱 걸어간다. 살금살금 뒤를 밟아 따라가 보니 작은 개울이 나온다. 오리 입수. 반대편에선 몇 마리의 오리들이 유유자적 아침 헤엄을 하며 다가온다. 여기에 오리가 살고 있을 줄이야.
공원엔 커다란 연못이 있다. 공원을 둘러싼 나무들과 높은 빌딩들이 물에 비친다. 멍하니 일렁이는 못을 바라본다. 아침부터 마음이 일렁일렁. 저 멀리 나와 같은 모습으로 연못을 바라보는 이가 있다. 작은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 여행자 이신가요, 어디서 오셨나요, 사진을 좋아하시나요, 찍은 사진을 보여 줄 수 있으세요.
공원 근처, 아침에 여는 카페가 있다. 아침 커피를 마시기 위해 그곳으로 향한다. 인도 곳곳이 얼어서 자꾸 미끄러질뻔한다. 천천히 발과 배에 힘들 주고 걷는다. 어느새 다다른 카페 입구에도 눈이 조금 쌓여있었고 그 위엔 강아지 발자국이 찍혀 있다. 방금 다녀갔을까. 남겨놓은 모습이 퍽 귀여워 사진 한 장.
문을 열고 들어간 곳엔, 밝게 인사하는 한 직원이 있다. 부드럽고 선한 외모로 밝게 인사를 해주니 기분이 좋다. 나도 인사를 한다. 낯선 언어로 수줍게. 오늘 처음으로 나누는 대화. 아침마다 늘 커피를 내려 두유에 섞어 마신다. 이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하루를 시작할 수 없는데, 몇 년째 이어온 습관이다. 삿포로에 와서도 나의 작은 습관을 하나 지킨다. 오늘 공기가 맑고 하늘이 더 예쁘게 느껴지는 것은 어제 눈이 와서 그런 걸까. 나카지마 공원과 카페 사이에 도로로 많은 차들이 달리고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다. 모두가 바쁜 아침이다. 하트가 그려진 따뜻한 라테를 받았다. 거품이 꽤 둥실. 뭉게구름을 닮은 하트 거품이 있다. 삿포로로 오는 하늘에서 본 구름이 생각난다. 유난히 크고 뚱뚱한 뭉게구름들. 구름을 베어 물면 어떤 기분일까, 생각하며 작은 하트 구름을 삼켰다.
하늘이 맑아서, 공원에서 만난 오리가 귀여워서, 눈을 밟아서, 구름을 닮은 하트 거품을 마셔서, 어쩐지 오늘은 참 마음이 둥실 떠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