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했는데 좋아졌습니다.

당근라페를 아시나요?

by Nari

아직 무더위가 시작되기 전인 5월. 낮엔 조금 덥다가도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기분이 좋은 계절이다. 그런 요즘 빠져 있는 것은 바로 당근으로 만든 샐러드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이십여 년 전 동네의 치킨 집에선 야채를 아주 크게 썰어 넣은 찜닭을 팔았는데, 그 속에 든 크고 푹 익은 당근을 먹은 후 당근 싫어! 를 외치며 한동안 당근을 거부했다. 그런 내가 당근을 다시 좋아하게 된 것은 아무래도 이 당근라페라고 하는 샐러드 덕이다.


당근은 흔한 식재료지만 딱히 당근이 메인이 되는 음식을 생각하기는 힘들다. 부재료로써 큰 역할을 하며 김밥이나 잡채에 들어가기도 하고 장식용으로 잘려 색감을 더하기도 한다. 그런 당근을 누가 샐러드로 만들 생각을 했는지 참 감사한 일이다. 당근 라페는 오독오독한 식감과 어느 요리에도 잘 어울리며, 특히 지금 같이 살랑살랑 선선한 바람이 부는 요즘에 만들어 먹으면 식감과 맛 모두 잘 느낄 수 있다.


당근을 채칼이나 칼을 이용해 얇게 썬다. 난 치즈 그레이터를 이용해 채칼보다 더 얇게 채 써는 것을 좋아한다. 얇으면 소스가 더 잘 배어드는 듯하다. 메인이 되는 소스는 레몬즙이나 화이트 와인 식초, 올리브 오일, 소금이다. 여기에 꿀이나 설탕, 홀그레인 머스터드, 후추를 추가로 넣는다. 취향에 따라 오렌지나 레몬필을 넣어 더 상큼하고 예쁘게 만들 수도 있다. 당근 라페에 가장 중요한 부분은 채 썬 당근을 전자레인지에 1-2분 정도 데우는 것이다. 그렇게 하므로 당근 특유의 냄새를 조금 날린다고 한다. 데워진 당근은 물이 생기는데 이 물을 버리고 만들면 먹기도 편하고 수분이 적어 샌드위치에 넣기도 편하다. 만든 후엔 잠시 냉장고에서 차갑게 하며 두고 난 전날 만들어서 다음 날 먹는다. 그러면 소스들이 당근에 더 잘 배어 있는 듯한 맛이 든다.


처음 당근 라페를 만들었던 것은 SNS에 당근 라페 샌드위치를 본 후이다. 그 샌드위치는 식빵 사이에 계란과 당근 라페로 만든 샌드위치였다. 처음 보는 샌드위치에 그만 넋을 놓고 만들어 먹은 후 당근 라페에 빠져버렸다. 유리 공병에 가득 만들어 두고 아침에 빵을 먹을 때 항상 접시에 조금씩 덜어 먹으며 브런치를 먹는 기분을 느끼곤 했다. 당시 나는 샐러드라 하면 초록잎의 샐러드만 생각했었는데, 여름엔 야채 값이 올라 샐러드 먹는 것을 머뭇거리고 있었다. 우연히 알게 된 당근 라페는 너무 저렴하고 쉽고 맛있는, 최고의 요리였다.


당근 라페는 당근만으로도 맛있다. 빵을 구워 그 위에 가득 올려 먹으면 건강하고 맛있는 오픈 샌드위치가 된다. 오믈렛이나 참치 샐러드를 만들어 빵 사이에 넣어도 좋으며 최근엔 치즈와 사과를 함께 넣어 짭조름하고 상큼한 맛에 먹기도 했다. 그래도 역시 초록 잎의 샐러드가 좋다면, 치아바타 빵 사이에 루꼴라를 듬뿍 넣어 먹는 것을 추천한다. 다른 식감이 추가되어 맛있고 가벼운 샌드위치가 완성된다. 저녁엔 크래커 위에 크림치즈와 당근 라페를 얹어 와인이나 맥주 안주로도 참 잘 어울린다. 야채 챙겨 먹는 것이 일이라 생각될 때, 당근 라페 샌드위치를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두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으니, 이번 주말 브런치로 당근 라페를 추천한다. 당근 싫어! 를 외치던 몇몇 사람들도 이 샌드위치를 먹고 새로운 당근의 매력을 알게 되어 당근을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


성인이 되고 난 후, 꽤 많은 싫어하는 것들이 좋아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한 면만 보고 싫다고 하기엔 음식이든 사물이든 사람이든 너무 다양한 면이 존재한다. 이제 함부로 싫어한다 하지 말아야지, 결심을 한다. 처음에 싫어했던 당근이 당근 라페로 먹으며 당근을 좋아하게 된 것처럼 다음엔 또 어떤 당근 요리를 만날지 기대된다. 작은 만남이 또 다른 설렘과 기대를 준다는 것을 이 당근 라페로 알게 되었다. 참 대단한 당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