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신고식

by moonrightsea

" 못 보던 얼굴인데? 너도 미술과야?"

" 누구시죠?"


귀에 꽂은 이어폰을 뺏은 무례한 사람을 올려다 보자 두 남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한 명은 조금 키가 크고 한 명은 170cm 정도의 보통 키. 그럼 그 옆에는 178cm 정도 되겠네. 보아하니 건들거리는 다리 하며 외이브 진 머리. 홋눈거플에 한쪽 어깨에 올려 멘 통기타. 야구멘투멘 점퍼, 청바지. 나이는 대학교 3학년 아마도 복학생 정도.


다른 한 명은 키 170cm 저 사람. 옆에서 내가 미대냐고 안 물어봤으니 우리 단대는 아니고 아마도 다른 단대 일 텐데 그렇다면 둘은 친구사이일 텐데... 짙은 검은 머리에 짙은 검은 일자 눈썹 뚜렷하고 날렵한 눈매. 눈가가 뚜렷한 건 속눈썹이 길고 짙어서 일거고 코가 높고 뭉특하고 턱이 제법 각이 지고 턱 근육이 발달된 걸로 보아 그는 제법 말꽤나 하는 어문 계열의 전공이겠네.


갸우뚱한 고개로 나는 한참 고개를 요리 조리 돌려가며 그들을 바라봤다. 내가 미술과인지는 내 어깨에 메어진 화구통을 보고 알았을 거고 노랗게 염색한 머리에 희게 브리지를 넣은 스타일. 거기에 약간의 거만한 내 태도가 눈에 거슬렸겠지. 그중의 한 명이 못마땅하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 요즘 새내기들은 선배를 보면 인사도 안 하네. 너 새터도 안 갔다 왔어? 인사하는 법 몰라?"

" 새터가 뭐죠?"




내 말에 그들은 순간 어깨동무한 팔을 내리며 빵 터졌다. 그러더니 둘이는 서로 파이파이브를 하면서 막 웃었다.

" 진짜 대박이다. 천연기념물인데?"


" 야. 너네 과에 명물 들어왔네. 어떻게 널 모르냐?"

" 에헴. 난 미대 단대 학회장 정영석이야. 너 미대 신입생환영회 안 왔지?"


" 뒷조사하고 다녀요?"

" 와 얘는 말할수록 어이가 없네? 나 니네과 선배래도?"


" 그래서요?"

" 너 이름이 뭐야?"

" 이미소예요."


" 야 이미소 똑바로 안 해? 어딜 하늘 같은 대선배를 보고 눈을 똑바로 뜨고."

옆에서 지켜보던 그 짜리 몽땅한 남학생이 버럭 화를 냈다. 그러자 영석이


" 뭘 그래서야. 너 안 되겠다. 나참 어이가 없어서. 너 지금 어디가?"

" 집에 가는데요?"

" 집? 헐. 대학생이 지금 집에 가? 오후 3시인데?"


" 네."

" 너 일단 따라와. "




그렇게 두 사람에게 붙들려 나는 교문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불현듯 학교 아래 늘어선 가게들을 지나 지하에 자리 잡은 '모래시계'라는 간판이 달린 호프집으로 들어갔다.

쾌쾌한 냄새가 날 것만 같은 그곳은 의외로 유화냄새가 진동했고 벽면은 온통 여자 누드화로 가득했다. 요즘 같은 여성학생부가 있는 시대에 저런 그림은 너무나 성모순적인 것이었지만 의외로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홀자리는 제법 꽉 차 있었고 바에 남은 자리가 겨우 있었다.


가게 입구에서 빙 둘러보고 섰는데 양주병이 가득 찬 벽면을 뒤로하고 바 앞에 서 계신 사장님을 향해 다가간 영석은 넙적 인사를 하며 내 머리도 조아리게 만들었다.

" 안녕하세요. 선배님."


인사를 건네자 그제야 사장님은 수건으로 유리잔을 닦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우리를 보았다. 그리고 하던 일을 계속하면서

" 어 영석이 오늘도 왔네. 옆에는 누구?"

" 야야. 못 보셨잖아. 다시 인사드려. 이 친구가 새터를 안 와서 기본이 안되어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

" 이미소입니다. "


" 풉. 귀여워. "

" 죄송합니다. 선배님. 야 다시 인사해야지. 안녕하세요. 선배님 몇 학번 새내기 00입니다. 이렇게 다시. "

나는 못 이긴 척 영석이 시키는 대로 다시 인사를 했다.

그러자, 여사장은 웃으며 못 이긴 척,

" 야. 그만해. 순진한 애 잡겠다. "


그러면서 500cc 2잔에 빨대를 꽂아 주었다.




" 마셔. 이건 새내기 와서 주는 특별 서비스. 이제 더는 안돼. 알았지?"

" 선배님 감사합니다. "

이것들 봐라. 선배랍시고 나 팔아서 술 공짜로 먹으러 다니는 건가?


" 야. 너 고마운 줄 알아. 다 이 선배님 덕분에 이런 곳도 오고 말이야. 네가 진작에 새터 왔으면 우리가 이렇게 너를 데리고 다니면서 새내기 교육시킬 일이 없을 거 아니야?"


" 요즘은 새내기 교육을 선배 삥 뜯으며 하나 봐요?"


순간 둘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더니 나를 보더니 열심히 빨고 있던 빨대를 풋 하고 내뿜었다.


" 더럽게..."

나도 모르게 입에서 나온말.


" 와 강적이다. 어떻게 하지?"

" 와 너 진짜 연구대상이다. 오늘 재미있겠는데?"

" 그쪽은 왜 이름 안 알려줘요? 그리고 왜 초면부터 자꾸 반말이세요? 저도 말 놓을까요?"


" 헐"

" 얘 뭐래냐?"

" 또 반말이시네."

" 야. 정말 귀엽지 않냐. 인제 너네 사대 다 뒤졌다. 아싸."

" 에헴. 무슨 소리. 야 반갑다. 나 사회대 학회장 사학과 3학년 김명민이야. 소개 늦었다."




" 초면에 싹수없게 굴어서 미안해요. 미술대 미술과 서양화 1학년 이미소입니다. "

" 자자 소개는 집어 치고 인제 통성명한 거다. 건배."


" 근데 저 이 빨대는 왜 주는 거죠?"

" 이걸로 아껴서 먹으라고. "

" 이걸 아껴 먹어야 해요?"


" 그럼 술이 얼마나 귀한데 급하게 먹으면 아깝잖아. 날도 밝은데."

" 그건 먹어봐야 알죠. "


" 야 배짱하나 멋지네. 가보자. "


와 이 인간들이 내 승부욕을 자극하네. 나 딱 지기 싫은데.


그렇게 시작된 술자리는 밤 10시까지 이어졌다. 어느새 둘은 술이 곤드레만드레 취해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고 나는 적당히 먹으며 적당히 버리며 요령을 피워가며 잘도 버텨냈다.


"선배 집이 어디예요?"

" 아 내.... 내... 내 집은 학교."

" 뭐래. 집이 어디냐고요. "


" 아... 사ㅏ랑도... 무디히ㅏ머 없이..... ㅇ님아히 사무쳐... "

" 뭐라고 노래 부르는 거야. 그냥 여기 두고 가요? 정신 안 차려요?"


너무 화가 나 돌아서려는데 내 손을 잡았다.

" 태 태택 시..."



그렇게 택시를 불러 오징어처럼 늘어진 둘을 낑낑거리며 태워서는 학교아래 주택가 언저리에 차를 세워 근근이 내려놓자, 지갑을 열더니 택시비를 꺼내놓는다.

" 됐어요. 제 돈은 제가 내요. "


그렇게 말하고 나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서는 학교 간 첫날부터 술 먹고 들어왔다고 한바탕 난리가 났고 그렇게 나의 신입생 환영회는 끝이 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시작이었다.


"안녕. 너 못 봤는데 새터에 안 왔었나 보다. 나 문주야. "

"응. 안녕. 미소야. 나도 잘 부탁해. "


동기 중 처음으로 먼저 와서 말을 걸어준 문주. 새터에 함께 참여한 다른 사람들은 벌써 말을 트고 함께 수다를 떨며 어울리고 있었는데 나 혼자 외떨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 않게 다가왔다. 그런 문주의 밝음에 반가워 나는 진심으로 인사했다. 그런데,


" 근데 너 영석 선배는 어떻게 아는 사이야?"

" 응? 누구?"

" 학회장. 영석선배. 너 잘 부탁한다던데?"

" 나를?"


" 응. "

" 언제?"

" 방금 오다 만났는데 너 잘 모를 거라고 잘 부탁한다고. 그래서 좀 놀랐지. 그 선배가 누구 부탁하는 사람은 아닌데 더욱이 고작 학교 온 지 2일이잖아. 우리. 안 그래?"


나는 좀 전의 친근함도 잠시 순진한 얼굴로 나를 보며 해맑게 웃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애는 뭐지? ' 이런 생각에 바라보고 있는데,


" 기초 대생수업 들어가야겠다. 늦겠어. 가자. 미소야. "

그러며 나를 끌고 2층 실기실로 들어갔다.
















이전 04화3-4. 너는 안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