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너는 안돼.

by moonrightsea

며칠을 보내고 원장선생님이 전화가 왔다.


" 너 학원에서 강사로 일해볼 생각 없어?"

" 제가요?"

" 너라면 충분하지. 화실에서도 곧잘 애들 잘 가르쳐 줬잖아. "


원장선생님의 권유로 그렇게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식 날.

" 미소야. 오늘 애들 뒤풀이한대."

정림의 전화였다.


" 누구?"

" 누구긴 누구야. 동아리 애들이지. 너 꼭 데리고 오래. 가자. "




" 이야 오랜만이야. 다들 잘 지냈어?"

" 잘 지냈지. 축하해. 이제 드디어 성인이네. "

" 우리 성인 된 기념으로 오늘 찐하게 한잔하는 거다."


오랜만에 만난 권익은 잔뜩 신이나 있었다. 입가로 차가운 겨울 공기와 맞물려 연기가 나왔다. 졸업을 해서 그런지 제법 머리도 자랐고 어느새 갈색으로 염색을 하고 새로산 흰색 패딩이 더 멋져 보였다.


" 야 민증 지나야 가능하거든."

어느새 어깨까지 머리가 기른 정림은 회색렌즈를 끼고 검은 미니스커트를 예쁘게 입고 떡복이 모양의 단추가 장식된 귀여운 코트를 입고 둥근 밍크털 장식이 달린 장갑을 끼고 손을 연신 감싸고 있었다. 이런 정림을 바라보다 내가 조금은 걱정어린 눈으로 두리번 거리자, 권익이 자신 있는 표정으로


" 걱정 마. 다 방법이 있지. 따라와. "


그렇게 오랜만에 뭉친 동아리 애들은 삼삼오오 모여 노래방으로 향했고 사장님께 인사를 했다.

" 어머니 신고식 하러 왔습니다. "


" 이놈 시키. 그만 좀 데려와. 6번 방으로 가. 얌전히 있다가 가는 거다 알았지?"

" 어머니 감사합니다. 맛있는 서비스 많이 주세요. 사랑합니다"

애교를 부리며 돌아서는 권익이의 손에 이끌려 방에 들어서며,




" 어머니랑 어떻게 아는 사이야?"

" 아 민재 어머니시잖아. 우리끼리 종종 어머니께 허락 맡고 여기서 먹거든. 오늘은 특별히 부탁드렸지. 앉아. 안주 뭐시킬까? 음. 일단 어묵탕이랑... 과일이랑...마른 안주 시키고. "


" 민재는?"

" 민재 알바중이라서 좀다 온대. 자, 니들은 술 꺼내봐. "

언제 준비했는지 말이 끝나길 무섭게 두텁던 점퍼 품 안에서 집집마다 숨겨두었던 양주며, 소주며, 맥주를 남자아이들이 꺼내 놓았다. 그러자 놀란 토끼눈을 하고 정림이,


" 뭐야. 이건? 언제 준비한거야? 이거 정말 니들이 다 먹을 거야?"

" 무슨 말씀. 일단 먹어 보고 남으면 여기 킵 해두는 거지. "

" 야 대단하다. 니들."

" 자 잔을 돌리시오."


그렇게 애들은 종이컵을 돌리고 술을 먹었다. 그리고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흥이 오를 때로 오르고 분위기에 취해 취기도 오르자, 권익이


" 야 우리 진실게임할까? 지목당하는 사람이 진실을 말하고 말 못 하면 마시기."


그러자 정림이 손을 들더니 말했다.

" 그래. 그럼 나부터. 지목할게. "

" 권익이 첫 키스 언제 했어?"




" 어 이거 너무 쉬운데? 유치원 때? 이건 내가 답하면 술을 못 먹잖아. 우 씨. 일단 한잔 마시고. 다음. 정림이"

" 나?"

" 응. 그래 정림이에게 질문."

" 음. 내가 질문 할게. "


아린이 갑자기 나섰다.

" 너 진우오빠랑 사귀어?"

갑자기 정림이 술을 한잔 들이키며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러자 아린이 아리 송한 표정으로 술잔을 비웠다. 마주보던 정림이 웃으며 다시 잔을 들어 술잔을 비웠다. 다들 이야 하며 탄성을 자아냈지만 아린의 표정이 좋지 만은 않았다. 그사이 민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 뭐야. 나 없는 데 벌써 이까지 진도 나간거야? 뭐하고 있었어?진실게임 중이야?"

그러자 정림이 대뜸,

" 그럼 내 차례. 민재. 너 꿈이 뭐야?"


"... 에이씨."

그러자 민재가 연신 두 잔을 받아 마셨다. 그러고는

" 그런 어려운 건 질문 좀 하지 마. 내 차례지? 지순 너 권익이 아직도 사랑하냐?"


" 어. 응? 아니?"

순간 지순이 놀라 대답을 하고는


" 아냐. 권익이. "

" 뭐야. 그럼 다른 사람이야? "

옆에서 저마다 누군데 라며 지순을 졸라댔다 그러자, 지순은 고개를 숙이며 손으로 경윤을 가리켰다.




그러자 경윤이 놀란 나머지 '나?'라는 제스처를 보이며 나를 바라봤다.

" 그럼 경윤이 차례네. 지목당했으니. 경윤이는 이 방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 응"

" 뭐야. 우와 대박. 뭐지 이 핑크빛 기류는? 누구야?"

친구들이 묻자 경윤은 술을 한잔 마셨다.


" 사귀라. 사귀라. "

옆에서 정림이 자꾸 누구냐고 묻자, 경윤이 목을 가다듬으며,


" 이제 내 차례지? 내가 지목하면 되지? 미소. 너 좋아하는 사람 있어?"

" 나? 없어 그딴 거."

" 에이. 뭐야. 시시하게. 에라 벌주다. 너 마셔. "


" 마셔라. 마셔라."

나는 친구들이 권한 술을 연거푸 들이마시고 다시 다른 이들에게 질문을 넘겼다. 하지만 궁금증은 항상 해결을 하고 싶은 게 사람의 본능인 법 질문은 돌고 돌아 다시 경윤에게로 갔다.




" 야. 경윤 그래서 너 이 방에 누구를 좋아하는 거야? 세 번째다. 이번에도 피하면 너 답할 때까지 먹일 거야."

" 나.. 음...."

경윤은 술잔을 비웠다.

" 야. 멀 고민 해. 여기 여자 몇 없는데 그냥 막 골라. "

" 지순."

" 와 사귀어라. 사귀어라. "


" 자 커플 탄생이요. 야 다들 자리 비켜. 비켜. "

일순간 권익이 일어나고 이리저리 자리를 옮긴 뒤 경윤옆에 지순이 앉았다. 그리고 친구들의 환호 속에 러브샷을 마셨다. 그런 그들을 나는 물끄러미 바라봤다. 좋을 때다.


한참 취기가 오르고 다들 2차를 외치는데

" 나 내일 알바 특강 있어서 가야 해. 재미나게 놀다 와. "


" 야 이런 날은 좀 끝까지 놀자. 미소야. "

" 미안 정림아. 아침부터 특강이라서... 술도 깰 겸. 먼저 갈게. 잘 놀다 조심히 들어가. "


못내 아쉬워하는 정림을 뒤로한 채, 한참을 걷다 보니 기다란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새 경윤이 따라 걷고 있었다.

" 야. 너 언제부터 따라왔어?"




" 한참 되었는데?"

" 몰라서 미안해. 내가 오늘은 기분이 좀 그래서..."

" 사실은 말이야. 속상한 일이 좀 있거든. 내 이야기 좀 들어줄래?"


어쩌면 이 녀석이라면 아무 말 없는 이 녀석이라면 술김에 내 속상함을 말해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대학 입시이야기를 횡설수설하며 해나갔다.

" 그렇게 됐네. 용을 쓰고 발악을 해도 그 자리인 거 같아. 난. "


" 뭐 그 선택이 나쁘지는 않은 거 같은데?"

" 뭐가. 너는 서울에 대학 붙었잖아. 가면 되지."

" 그거야 너도 마찬가지잖아. 근데 네가 선택해서 안 가는 거잖아."


" 그럼 넌 어디 가는데?"

" 나? 너랑 같은데."

" 응? 왜? 니 실력에?"

" 뭐가 달라?"

" 그래도 넌 갈 수 있잖아. "




" 아 난 대학가서도 나름 계획이 있어서 여기서 다니려고. "

" 아 그럼 우리 학교 가서 보겠네?"

" 그렇지. "


" 근데 너 지순이한테 가봐야 하는 거 아냐? 그렇게 혼자 두고 나오면 어떻게? 오늘부터 1일인데"

" 권익이 있잖아. 그 자식은... 뭐. 그냥. 오늘 일은 그래. 별거 아냐. "

" 별거 아니라니. 아까 러브샷도 먹은 주제에."


" 그건 그냥 두면 지순이 안되었잖아. 권익이 향한 마음 아는데. 더 상처받게 두기는 좀 그렇고 어차피 게임인데..."

" 야. 니들은 참 쿨하다. "

" 뭐 쿨하기보다는 오래된 사이들이라고 해두지."


" 좋을 때다. 많이 해라. 연애. "

그들의 청춘이 내일은 아닌 것처럼 느껴져 푸하고 한숨을 내쉬자, 경윤이 물었다.

" 넌 진짜 좋아하는 사람 없어?"




" 난 난... 그냥. 지금은 누군가를 만날 때가 아닌 거 같아. 그러기에는 너무 부족한 거 같아. "

" 네가? 어딜 봐서? 왜 그렇게 생각해?"


" 그냥. 그냥 좀 답답해. 누군가 다가오면 밀어내기 바쁘거든. 다른 사람 감정도 외면하기 바쁘고 내가 마음의 여유가 없나 봐. "

경윤은 조용히 내 이야기를 들으며 연신 음 음 소리를 내며 휘청이는 나를 부축했다. 제법 긴 시간이 지났고 달은 밝았다.


" 그래서 넌 어떤 남자가 좋은데? 아니 어떤 남자여야 네 마음이 움직이는 건데?"

"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적어도 나한테 한 선물을 받고 내가 그 사람의 마음이 부담스럽지 않아야겠지? 그리고 내가 존경하고 싶은 사람?"


" 너무 어려운데? "

" 너무 어리면 그렇잖아. 내가 늘 돌봐줘야 하고 또 돈이 너무 많으면 왠지 내가 비굴해지고 너무 잘 생기면 여자들이 너무 따라다녀서 안돼. 음. 어디 보자."


나는 경윤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고는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러자 연신 달빛에 희미하게 빛친 경윤의 두 볼에 열이 오르기 시작하더니 이마까지 붉게 변했다. 그런 경윤의 얼굴을 밀치며,


" 안 되겠다. 너는 안돼. "


" 왜?"

" 칫 너무 잘생겼어. 재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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