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신입생 환영회 2
예술가가 된다는 것의 고충
by moonrightsea May 31. 2023
" 저 미친놈들 또 시작이네. 선배 우리는 어떻게 해요?"
야외조각장에서는 오늘 오후에 있을 신입생 환영회를 맞아 학년별 얼차려가 행해지고 있었다. 처음 보는 광경에 눈이 휘둥그레진 것도 잠시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에 귀를 귀 울렸다.
" 잘 기억해라. 지금 받는 고통의 순간은 잠시다.
하지만 니들이 방심하는 순간 저 기계에 손가락이 날아가고 니들 팔이 날아가고 학교가 날아가고 학우들이 다치기도 하고 니들 부모님 두 눈에 피눈물이 나기도 하고 니들 미래에 평생 병신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닐 수도 있다. 그러니 오늘의 이 고통을 잘 기억하고 항상 실기 준비할 때는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셋째도 안전이다. 알았나?"
" 네"
" 목소리 봐라. 퍽."
" 자 따라 한다. 안전."
" 안전. 제일"
" 안전. 제일"
" 꺼진 불도 다시 보자."
" 꺼진 불도 다시 보자."
살벌한 얼차려 현장 마치 TV에서 나오는 군대의 얼차려 장면에서나 볼법한 현장을 나는 눈앞에서 똑똑히 보고 있었고 그런 우리 뒤로 우리 과 3학년 선배들은 우리들을 어떻게 할지 살벌하게 상의하고 지나갔다.
아직 2학년에 얼차려가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이번에는 애들이 강의실 앞으로 우르르 달려갔다. 아이들을 따라가니 이번에는 음대였다. 정장을 곱게 차려입은 1학년 신입생들이 긴 줄을 한 채 오리걸음으로 귀를 잡고는 단대 앞마당을 뒤뚱뒤뚱 걷고 있었다. 어제 체대에 간 친구가 얼차려로 입원을 했다는 친구의 말을 들었는데 그 말이 남 말은 아니었나 보다.
" 자 1학년 모여. "
드디어 우리 차례인가.
우리는 삼삼 오오 쭈뼛거리며 모여들기 시작했고 1층에 복도에 집합한 우리는 어디선가 흐느끼기 시작한 울음소리에 연이어 울음소리가 물결이 번져가듯 흐흐흑 번져가기 시작했다.
" 열중쉬어!"
" 차렷! 엎드려 뻗쳐!"
" 왜 울어!.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이것들이 정신 안차렷!"
" 이제 너희는 사회인이다. 이 험난한 세상에 나와 스스로 알을 깨고 나가는 예술인으로 어떠한 고통과 고난이 와도 맞서야 한다. 부모님 손에 곱게 자라 고통이란 맛보지 못한 세대로 나약하게 살다가는 뒤쳐질 뿐이며 그렇게 지내다가는 도태될 뿐이다. 왜 울어. 정신 안차렷!"
3학년 미술과 대가 큰 소리로 고함을 치듯 훈육을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중후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이제 이쯤에서 그만하지. 세대도 바뀌었고 시대도 바뀌었는데. "
4학년에 재학 중인 민혁 선배였다.
" 미술 과대 그만하면 된 거 같아. 1학년들이 뭘 알겠어. 본 것만으로도 저렇게 놀라는데 안 그래?"
" 선배님. 저희 때는."
" 그러니까. 이제 우리 세대는 이러지 말자고. 자 일어나 1학년. "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민혁선배는 한 명 한 명 손을 다정히 잡고 악수를 건네며,
" 반가워. 환영해. "
그렇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선배들은 그런 민혁선배의 뒤를 따라 저마다 인사를 건네왔다. 그리고, 민혁 선배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조용히 말했다.
" 자 다들 3층 실기실로 이동."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일사불란하게 줄을 맞춰 3층으로 자리를 옮겼다. 문을 열고 실기실로 들어서자, 향긋한 족발향이 코를 찔렀다. 눈앞에 족발에 피자에 통닭이... 둥글게 놓여 있었다.
" 다들 고생했다. 우리 이제 1학년 신입생 환영회 시작해 볼까? 미술 과대?"
" 네 선배님. 자 다들 주목. 이렇게 모두 모인 것을 축하한다. 지금부터 여기 보이는 이 신발에 제조한 술을 부울 것이다. 그러면 순번대로 돌아가면서 전공과 이름을 소개하고 소감을 말하고 원샷한다. 알겠나?"
" 네!"
그 어느 때보다도 우렁찬 기합이 나왔다.
흔히 말하는 군기 바짝 든 군인 마냥. 우리는 잔뜩 긴장해 있었다. 미술 과대의 손에 들린 건 그 말로만 듣던 실기실 귀퉁이 돌아다니던 작업화였다. 흔히 군대나 작업장에서 쓰는 갈색 신발로 철근이 떨어져도 구멍이 안 뚫린다고 했다.
그래서 선배들은 종종 저 신발을 신고 작업을 했고 그 신발은 작업실 여기저기를 굴러다녀 온갖 더러운 흙이며, 먼지, 석고 가루, 물감을 뒤집어쓰여 있었고 무엇보다 오랜 선배들의 착용감으로 인한 발 분비물은... 상상만으로도 구토를 유발하기 충분했다. 그런 그 신발에, 막걸리, 사이다, 소주를 넣고 선배들이 손수 휘휘 저어 만든 저 제조주를 넣고 돌리다니. 그걸 또 나름 원샷하라니.
'저걸 누가 먹어?'
라는 생각이 들지만 상황이 닿으면 막상 그 장소 그 시간 그곳에 가면 다 먹게 되어 있더라. 신기하게도 바로 내 옆에 와서까지도 나는 절대 못 먹습니다 하고 벌떡 일어날 줄 알았다. 하지만,
" 서양화 이미소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
라고 말하며 두 눈을 질끈 감고 한 손으로는 코를 잡고 한 손으로는 신발의 바닥을 잡은 채 반을 넘게 질질 흘리며 그렇게 단숨에 마셨다.
물론 모든 학생들이 나와 같지는 않았다. 먹다가 중간에 토하거나, 울며 손사래를 치다 결국 다시 먹고 토하기를 반복하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신입생 전부 저 술잔을 마지막 주자까지 다 둘러 마시는데 1시간 반이 걸렸다.
마지막 주자가 그 신발 잔을 다 비우고 머리에 털자, 다들 안도의 한숨과 눈물로 박수를 치며 고함을 질렀다.
" 자. 어때? 저 더러운 신발도 술을 담으면 귀한 술잔이 된다.
여러분이 못 마실 것만 같던 그 신발도 삼키지 못할 거 같던 그 오물들도 결국에는 인생의 쓰디쓴 좌절도 넘기고 나면 다 추억이 된다. 예술이란 그런 것이다. 누군가 손가락질하고 돈도 되지 않고 어느 실기실 구석에 처박혀서 나뒹굴고 쓸모없는 양 취급되더라도 누군가에게는 평생에 남을 추억거리가 되고 역작이 되어 후세에 명작이 되기도 하는 게 예술이고 예술가의 삶이야. 우리는 오늘 고흐의 압생트를 마신다. 건배!"
" 건배!"
금요일 밤이 깊어 갔다. 귀뚜라미 소리에 잠시 귀 기울이며 막 오른 술기운을 달래려 밖에 나왔는데, 영석 선배가 내 등을 쓸어내렸다.
" 괜찮아? 할 수 있겠어?"
" 괜찮아요. "
" 그래. 들어가자."
선배는 기타를 옆으로 메고는 비틀거리는 내 어깨를 붙잡고는 계단을 올라 하얀 단상에 올랐다. 단상 위에는 의자가 놓여 있었다. 선배는 거기에 앉으며,
" 안녕하세요. 신입생 여러분. 또보네요. 저 기억나시죠? 제가 누구라고요?"
" 학생회장요."
" 다들 기억하시네요. 오늘은 여러분들 환영의 뜻에서 노래를 준비했어요. 요즘 시대에는 조금 생소하지만 학생회 취지와 어쩌면 민주주의 취지와 잘 맞는 곡이니 부담 갖지 말고 들어주세요. 제목 '임을 위한 행진곡."
그는 제목을 말하고는 담담히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고 그런 선배 곁에서 나는 악보를 보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고요한 밤.
청아하게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와 기타 반주. 다소 생뚱맞은 음악은 희한하게도 대학교정과 묘하게 어울린다. 밤공기를 타고 은은하게 울려 퍼진다. 그렇게 곡을 끝냈을 때 모두 박수를 쳤다.
그러자 영석이 말했다.
" 학생회는 항상 국민을 생각하는 민주주의에 기본을 두고 그 바탕 위에 학생을 위해 일하는 곳입니다. 관심 있는 신입생들은 언제나 환영이니 언제든 놀러 오세요. 1층 동편 복도 끝에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항상 문이 열려 있습니다. "
몇몇 여학생들은 눈을 반짝이며 선배를 바라보았고 감동을 받은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껏 보아온 그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무대에 오른 그는 멋졌고 목소리는 분명하고 또렷하게 가슴에 와닿아 심금을 울리고 있었다.
뒷정리를 마치고 한참을 내려오는데 대학 정문 근처 잔디 공원에는 아직도 다른 과 신입생 환영회가 한창이었다. 둥글게 모여 앉아 박수를 치고 노래를 부르거나 소개를 하는지 이야기를 하는지 모를 그들을 보며 오늘 보낸 우리 과의 신입생환영회가 떠올랐다.
미리 알았다면 어땠을까? 그들이 전하고자 한 마음이 전해졌을까? 방법이 달랐다면 어땠을까.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진심이 제대로 전해졌을까?